선인장 / 에피톤 프로젝트 (vocal 심규선)
예전에 다육이를 키운 적이 있어요.
저는 사람이나 식물이나 깊은 곁을 내어주는 건 극히 일부지만, 한번 마음을 주면 뭐든 듬뿍듬뿍 쏟아주고, 애정하는 성격인데, 다육이를 키울 땐 조금 참고, 기다리고, 지켜봐 주는 것이 중요하더라고요.
옹기종기 모여 좁은 화분에서도 잘도 자라는 다육이들이 기특하고 어여뻐서 너무 과하게 물을 주면 오히려 뿌리가 썩고, 해를 보여주겠다고 직사광선에 빛을 오래 쬐면 다육이 잎이 타버려요.
다육이 식물에 속하는 선인장은 또 어떻고요, 너무 가까이 가다가면 가시에 찔리고 박혀 손가락이 마치 부풀어오른 복어가 되기 십상이죠.
그렇게 다육이를 키우던 시절, 다육이는 초보 식집사였던 제게 적당한 거리에서, 절제하고, 인내하고, 지켜보는 연습을 시켜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육이뿐이던가요.
아기새(딸)를 키우면서 느낀 건 사랑한다고, 아낀다고 뭐든 다해주고, 뭐든 대신해주는 건 결코 아이를 위한 게 아니란 것도 배웠어요.
아기새가 어릴 때 책도 엄청 열심히 읽어주고, 교감도 엄청 잘되었는데, 이상하게 말이 늦는 거예요. 말을 하면 다 알아듣는 것 같고, 머리도 좋아서 뭐든 곧잘 학습하는데, 또래 아이들이 말을 종알종알하기 시작하는데, 모든 게 빨랐던 딸아이가 말을 안 하니 제 가슴이 얼마나 애가 타고 답답했겠어요?
전문가 선생님께 상담을 했는데, 그야말로 충격이었죠.
아기새는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 말을 안 하고 있다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아기새가 어릴 때 그때도 저는 직장생활을 했으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낮엔 아이를 케어해 주셨고, 저녁과 주말은 엄마 아빠가 케어를 하며 외동딸로 사랑을 듬뿍 받았죠. 게다가 조금 귀하게 얻은 아이여서 할머니, 할아버지는 비가 오면 젖은 땅에 발이 젖을까 안고 다니고, 저 역시 아이와 교감이 잘되었으니 눈빛만 봐도, 표정만 봐도 목이 마른 지, 뭐가 필요한지 눈치 백 단 캐치를 하니, 말하기 전에 척척 앞에 대령을 해주었지요.
그런데 그렇게 과도한 관심과 사랑이 문제였어요.
선생님께서 아기새는 말을 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너무 다 자기 맘을 알아주고, 척척 다해주니, 말을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게다가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말을 하기 전에 열심히 뇌에 입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 성향은 둘째 치고, 가족들의 과도한 관심이 부른 육아방식이 아이의 말이 늦는 원인이었다니요. 뭔가 뒤통수를 세게 맞은듯한 느낌이었어요. 그때부터 가족들끼리 모두 모여 의논을 했어요.
아기새가 의사표현을 할 때 도와주고, 해주기로
그런데 그렇게 어른들의 노력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번 더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아니 다른 아이들이 말을 할 때 안 해서 속상했는데, 다른 아이들이 "엄마, 물" "아빠, 딸기"하고 말하던 시기에 한번 입이 터지니.. 문장을 구사하며 말을 하는 거 아니겠어요? (내 새끼 천잰가...ㅎㅎ)
"엄마, 물" "할머니, 책" 시기를 통째로 건너뛰고 18개월도 안된 아이가 큰 언니처럼 "엄마 물 주세요" "할머니 책 읽어주세요"하는데 얼마나 놀랍고 감동스러웠는지.
(그땐 몰랐죠. 입이 터지면 이렇게 시끄러워지고 질문이 많아질지는,,,ㅎㅎㅎㅎ)
그렇게 배웠어요.
아, 모든 건 너무 넘치지 않게, 너무 가깝지 않게, 너무 뜨겁지 않게 그렇게 조심스럽게 기다려주고,
그렇게 변함없이 응원하며, 지켜봐 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그런데 "사랑"앞에서 참 쉽지 않잖아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히 마음을 조절한다는 것이.
모든 걸 알고 싶고, 늘 함께하고 싶고, 봐도 봐도 또 보고 싶고,
사랑은 그렇게 늘 목마르고, 사랑은 언제나 늘 과잉이죠. 나답지 않게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고 오버페이스.
그래놓고선 그걸 몰라주는 상대에게 서운하다가, 또 돌아서선 왜 그랬을까 자책하기도 하고, 그런데 또 마음먹은 대로 안되고....
스무 살 첫사랑 때도 사십 대가 된 지금도 사랑은 늘 처음처럼 서툴고, 욕심내고, 이기적이에요.
미워할 수 없는 투정과 떼를 쓰는 아이가 됩니다.
하지만 다육이를 키우며 느낀 것처럼, 아기새를 키우며 깨달았던 것처럼
"보고 싶어"를 "퇴근했니? 밥 먹었니" "먼저 끊어"로 에둘러 표현하는 방법,
맛있는 음식을 먼저 앞에 놓아주거나, 구두 속 모래를 털어주거나, 헤어지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졸린 눈을 비비며 같이 기다려준다거나 하며 아닌 척, 생색내지 않는 다정한 행동으로 "사랑해"를 들려주지 않고 보여주는 것들을요...
그래서 드디어 뜨겁진 않지만 온기를 잃지 않는 방법, 늘 함께일 순 없지만 평온한 마음을 느끼는 법
넘치지 않지만 부족하지 않게, 그립고 그립지만 목마르지 않게,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를 약속하진 않지만, 소박한 밥상을 차려주겠노라 약속하는 그런 '어른의 사랑'을요.
그래서 이십 대가 보여주는 사랑과 여든 노부부가 보여주는 사랑은 그 본질은 같아도 표현하는 방법, 보여주는 모습, 분위기는 다르겠지요. 노부부의 사장은 보기만 해도 안정감 있고, 따뜻하고, 묵직하잖아요?
저 앞에 노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면 뭔가 존경스럽고 성스러워보이기까지 하고요.
저도 중년이 짙어져 가니 뚝배기처럼 오래 은근한 그런 '정'이 그립고 그런 '사랑'이 점점 소중해지는 것 같아요.
아, 사실은 점점 자기의 삶을 향해 거리가 생기는 아기새를 보면서, 마음과 달리 거리가 느껴지는 귀요미를 머리로 이해하면서 가슴으로 서운하던 그때,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듯 여전히 딱 붙어있고 싶고, 여전히 나만 봐줬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은 상대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려던 찰나
그래, 적당히, 적당히를 되새기며 성시경의 '선인장' 노래를 찾다가 이 보석 같은 곡을 찾아냈지 뭐예요.
오늘의 곡은 에피톤 프로젝트(심규선)의 '선인장'이에요.
그 어느 날 밤 이 곡이 제게 얼마나 큰 위로와 기쁨이 되어주었는지요.
너무 가까워서 상처와 슬픔이 되는 성시경의 '선인장'도 절절하고 좋지만,
물방울 소리와 기타 소리가 함께 울려 퍼지며,
한 달에 한 번만 날 잊지 않더라도, 차갑고 무심해 보이더라도 곁에서 예쁜 꽃을 피운데요.
네가 슬플 땐 내 머리 위로 눈물을 떨구면, 조용히 지켜봐 주며 그 눈물 머금고 있다가,
나중에 나중에 이별의 앞에 다다르더라도,
도망가거나 사라지는 게 아닌, 그 옛날 간직했었던 너의 눈물을 안고 다시 '봄'에 서있겠데요.
찌르고, 아프고, 시들고, 죽는 것이 아니라, '봄'에 서서 변함없이 너를 기다리고 있겠데요.
한 달에 단, 한 번만 잊지 않아주더라도요.
아! 소박하고 귀한 마음
너무 찡하고, 예뻐서 하루종일 이 노래를 들었던 밤엔, 노래 때문인지 한겨울의 밤공기도 왠지 따뜻하게 느껴졌었어요.
이 곡을 찬찬히 음미해보시면
곧 다가올 봄, 많은 꽃들이 피고 지겠지만,
그저 내 눈물을 머금고 기다려줄 선인장이 더 기다려지는 오늘이 될지도요.
숨은 보석 같은 곡을 오늘, 소개해요!!
에피톤 프로젝트(심규선)의 '선인장'입니다.
햇볕이 잘 드는 그 어느 곳이든 잘 놓아두고서
한 달에 한 번만 잊지 말아 줘 물은 모자란 듯하게만 주고
차가운 모습에 무심해 보이고 가시가 돋아서 어둡게 보여도
걱정하지 마 이내 예쁜 꽃을 피울 테니까
언젠가 마음이 다치는 날 있다거나 이유 없는 눈물이 흐를 때면
나를 기억해 그대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줄게
내 머리 위로 눈물을 떨궈 속상했던 마음들 까지도
웃는 모습이 비칠 때까지 소리 없이 머금고 있을게
그때가 우리 함께 했었던 날 그때가 다시는 올 수 없는 날이 되면
간직했었던 그대의 눈물 안고 봄에 서 있을게
※원곡을 들으시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