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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꽃이 녹고, 진짜 꽃을 피울 시간

필연적이고 아름다운 아픔의 순간을 응원하며!

by 레몬트리 Mar 19. 2025
지난 1월 지방으로 출발하기 전,  운전대 앞에서 발견한 예쁜 성에지난 1월 지방으로 출발하기 전,  운전대 앞에서 발견한 예쁜 성에


성에 : 기온이 영하일 때 유리나 벽 따위에 수증기가 허옇게 얼어붙은 서릿발.


1월이니 벌써 두 달 전

한겨울의 어느 날, 지방으로 바다 보러 가던 날 아침, 차에 탔는데 눈앞에 펼쳐진 예쁜 성에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현격히 다른 온도 차이로 인해 생기는

급속의 승화현상으로 만들어진 - 성에. (찬공기와 더운 공기 급히 만나 만들어짐)



바깥에 있던 물이 영하의 온도에 서서히 얼어서 생기는 고드름이나 얼음과는 다르다.

얼음은 물이 그저 온도가 낮아지면 상태변화를 일으키는 것인데,

성에는 서로 다른 공기가 서로 만나고 부딪치면서  급격히 기체가 고체가 되는 현상이다.


이렇게 과거 어느 기억의 순간은 또 다른 날의 힘이 되기도 하기에이렇게 과거 어느 기억의 순간은 또 다른 날의 힘이 되기도 하기에


이 날, 성에가 너무 예뻐서 알아서 녹을 때까지 저렇게 얼음꽃을 보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도로를 달렸던 기억이 난다.


사랑을 불꽃에 비유를 많이 하는 이유는 어둠을 밝히고, 추위를 녹이고, 뜨거워서 델 것만 같은 그 성질이 사랑과 비슷해서일 터.

내 세상을 밝혀주고, 내 외로움을 따스히 위로하고, 때론 그 격정적이고 감당할 수 없는 감정에 델 것 같기에 '타오르는 사랑' '식지 않는 사랑'을 이야기할 때 불같은 사랑, 불꽃같은 사랑이라는 표현을 많이 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이날 아주 미세한 조각까지 섬세한 결정체의 창백하리만큼 차가운 얼음꽃 - 성에를 바라보며 이 역시 우리 사랑의 모습과 참 닮아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서로 다른 세계의 너와 내가 만나,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사랑에 빠지지만 불꽃같은 사랑의 이면에는 분명 서로 다름이 존재한다.

살아온 과거가 다르고, 생각하는 가치관이 다르고, 마음의 온도도, 속도도 다르다. 하다못해 습관과 식성도 알고 보면 같은 것보다 다른 것이 더 많고 그것이 당연할 터.  

결국 그렇게 철저히 다른 두 사람이 각각 만나 부딪히고, 마주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사랑'이다.


철저히 달라 서로의 매력에 순식간에 빠져들고 뜨거워지며, 불꽃처럼 사랑하게 되지만,

철저히 달라 서로의 모난 곳에 어느 순간 냉정해지기도 하고, 그 차가움에 당황하게 되기도 한다.

얼음꽃처럼 냉정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보통의 연인은 이 불꽃과 얼음꽃의 사이에서 더 뜨거운 불꽃으로 얼음꽃을 녹이고 하나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얼음꽃으로 불꽃마저 싸늘해져 결국 등을 돌리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성에는 필연적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었다.

서로 다른 공기처럼 서로 다른 우리가 마주했을 때  처음의 불같은 면도 있겠지만, 분명 이면엔 서로 다른 둘이 만나 만들어내는 삐그덕거림 - 불협화음같이 서로의 마음속에 비수처럼 꽂히기도 하고, 그 차가움에 옴짝달싹 못할 것 같은, 차갑고 날 선 성에조각이 생기기도 하겠지.


나와 다른 너와의 인연, 나의 세계와 너의 세계가 만나는 접점!

그래서 사랑은 기적 같고 아름다운 것

 

날카롭고 차가운 얼음조각을 억지로 박박 긁어내서나 떼어내려다간 오히려 앞 유리창이 긁히고 상처 나기 십상, 창문을 살짝 열어 두 세계의 공기가 통하게 온도 습도, 발란스를 맞춰주면 언제 그랬냐는 그 서서히 녹아내리는 것이 성에이다.  


우리 둘 사이, 성에가 생기는 순간은 피하고 싶은 아픔과 상처를 주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두 사람을 가장 나답게 유지하며 자연스레 서로에게 젖어들고 스며들게 하는 필연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의 과정인 것이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천천히 녹이고 달래서, 언제 그랬냐는 듯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고, 너의 세계에 내가 한걸음, 나의 세계에 네가 한걸음.

그렇게 녹아내린 성에가 이전의 조각조각 경계가 없는 물이 되어 합쳐지듯,

그렇게 서로 다른 나와 너는 "우리"라는 모습으로 또 다른 우리의 세계를 만들고, 오로지 둘만이 그 세계의 주인이 된다.  


그러니, 부디

사랑하는 사람의 불꽃만 보다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얼음꽃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놀라지 말고, 상처받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성에를 녹여낸 공기의 흐름처럼

두 사람의 각기 다른 세계가 조화롭게 섞여서

햇살 같은 서로의 유일한 "꽃"을 함께 피워내길.

향기도, 꽃씨도 우리의 일상에 가득 흩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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