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쉬운 점은 그대로, 바뀐 점은 물음표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후기 (2)

by 한성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러시아 배경에서 K-감성의 여성 서사를 만나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가 주는 아주 강력한 위로의 메시지는 우리의 닫혀있던 마음까지 열지만, 공연 내용에서 아쉬운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초연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왔던 비판이지만, 라흐마니노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아픔인 그의 누나 '옐레나' 서사는 너무나 K-감성이다. 엄마의 역할을 대신해주고(라흐마니노프가 밥을 먹어야만 밥을 먹고, 학교에 먼저 보내 놓고 나서야 학교에 가고(...)) 아버지의 폭력을 막아주던 누나가 병에 걸린 후에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원 입학을 위해 끝끝내 희생했다는 이야기. 실제로 라흐마니노프가 누나 옐레나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누나의 죽음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극에서 나오는 만큼 옐레나가 라흐마니노프를 위해 희생했다는 사실은 픽션이다.

옐레나의 존재와 이야기가 이 공연에서 사라졌다가는 내용 자체가 어그러질 수 있는 건 이해한다. 그래도 3번이나 공연된 데다가 여기서 꾸준히 비판이 나오고 있다면 어느 정도의 수정은 해야 하지 않았을까. 예를 들자면, 라흐마니노프가 옐레나를 잊어버린 이유에 서사를 덧붙인다거나 아니면 라흐마니노프가 음악원을 포기했다 하더라도 옐레나가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거나.


사실 여기서 이번 <라흐마니노프>의 제일 큰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다. 창작진이 너무 과거의 향수에 기댔다는 것.(마치 차이코프스키처럼?) 다시 말하자면 초연/앵콜/재연 너무 그대로 가져왔다.


달라진 공연장, 똑같은 세트와 전체적 동선


2017년 초에 이 공연을 본 게 마지막이었는데, 2020년 3월에 <라흐마니노프>의 공연장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감정은 똑같다(!)였다. 세트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 문제는 공연장이 작아졌다는 것이다. 라흐마니노프의 세트는 왼쪽에 달이 머무는 방, 오른쪽에 라흐의 방, 중간에 통로가 있는데 그 통로가 라흐마니노프의 마음을 상징한다. 그 통로의 제일 끝에는 기억 가장 깊은 곳에 묻혀있었던 옐레나를 상징하는 램프와 소파가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달과의 치료 때마다 이 통로로 들어서서 자신의 기억을 돌아본다. 따라서 공연 내내 라흐마니노프가 이 통로를 아주 자주 많이 돌아다닌다.

(출처: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1806050162H/ HJ컬처 공식 트위터 계정)

(왼쪽이 2018년 재연 무대, 오른쪽이 2020년 3연 무대. 무대 좌측에 있는 피아노를 기준으로 2018년 재연 무대가 더 깊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단 2018년 재연 무대 사진에서는 피아노가 보이지도 않는다.)

이전에 라흐마니노프가 공연되었던 공연장은 지금의 공연장(yes24 stage 1관)보다 가로 세로로 넓어서, 통로가 '걸어 다닐' 만한 길이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문제는 이번 공연장은 위로는 높지만 가로 세로는 다른 공연장에 비해 길지 않다는 것. 그런데도 세트를 그대로 가져왔고, 내용의 전체적인 흐름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더 좁아진 공간에서 배우들이 때워야 할 시간은 길어졌다. 그래서 한 두 걸음이면 도달할만한 거리를 일부러 지그재그로 돌아다니기도 하고, 다음 대사나 행동이 나오기 전까지 통로를 배회하기도 한다. 물론 무대적 허용(...)으로 이해할 수야 있지만 지금까지 모두 비슷비슷하게 왔으니 한번 확, 바꿔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클래식 곡에 수두룩 빽빽하게 채워 넣어진 멜로디와 가사


게다가 처음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를 접했을 때 이 공연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여겨졌던 건 바로 넘버였다. 물론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음 자체는 너무너무 좋지만, 기존에 있던 클래식에다가 가사를 덧붙이다 보니 조금은 음에다가 가사를 구겨 넣은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특히 라흐마니노프의 엄격한 선생님이었던 쯔베르프가 라흐마니노프를 가르칠 때 나오는 넘버는... 함께 보러 갔던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괴랄'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필자가 음알못이라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그 넘버는 기존 라흐마니노프의 곡이 아래에 깔리고 그 위에 새로운 멜로디가 덧입혀져 있는 것으로 들린다. 그런데 추가된 멜로디가 어색한 데다가 곡의 길이에 비해 전달하려는 내용이 많다 보니(쯔베르프의 가치관이나, 라흐마니노프에 대한 그의 생각이나 뭐 등등.) 랩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라흐마니노프>가 다시 온다고 했을 때 최소한 이 부분은 바뀌었을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다른 넘버들이 수정되었는데, 듣는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가 떴다.

(출처: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365014)

단점을 부각한 넘버의 변형,

의도는 좋았으나 결과는 나빴다


이번 라흐마니노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배우 제외!) '나는 왜'에서의 이중창이다. 원래는 라흐마니노프가 혼자 부르는 곡이었지만 니콜라이 달 역할의 배우도 참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왜 이렇게 바뀌었는지는 알겠다. 사실 '나는 왜' 넘버 직전에 라흐마니노프와 니콜라이 달이 싸우게 되는데, 그 이후에 라흐마니노프는 자기가 왜 곡을 쓰는지 고민하고 니콜라이 달은 자기가 왜 치료하려 하는지 고민하게 되니까. 결국 둘 다 '나는 왜'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라흐마니노프>의 타이틀롤이 라흐마니노프다 보니, 자연스레 니콜라이 달의 서사는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관객들에게 직관적으로 제시되는, 니콜라이 달의 이야기 중 하나는 사실 그가 꽤나 사적인(그리고 불온한?) 목적을 가지고 라흐마니노프에게 접근(?)했다는 거니까. '나는 왜' 넘버에서 니콜라이 달 파트를 넣으면서 그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설득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문제는 이중창으로 바뀌면서 어느 쪽도 잘 안 들린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했던, 가사를 구겨 넣은 듯한 문제의 연속선상에서 이를 이해할 수 있다. 가뜩이나 수두룩 빽빽하게 넣어진 가사 때문에 어색하게 들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두 사람이 같이 하니까. 필자는 <라흐마니노프>를 여러 번 보고 있는데도 사실 여전히 잘 안 들린다. 그렇다면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어떻겠는가.


이렇게 구구절절 아쉬운 점을 써놓았지만, 후기 1편에서 밝혔듯이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장점이 참 많은 공연이다. 장점과 단점이 확 나뉘는 공연에서 단점이 장점을 가려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다행히도 <라흐마니노프>는 장점이 우세하다. 위로의 메시지, 뛰어난 배우들,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까지. 창작 뮤지컬이 오래, 꾸준히 사랑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직격탄을 맞은 곳이 참 많지만, 그중에서 공연계가 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많은 공연들이 엎어지고, 취소되고 있다. 공연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게 느껴질지 안다. 필자도 무서우니까. 하지만 공연 제작사 나름대로 코로나에 대처하기 위해, 그리고 안전한 관람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공연장마다 열화상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관객들이 입장할 때마다 한 명 한 명 체온을 체크하기도 하고, 관객들은 문진표를 작성하고 마스크를 써야만 공연을 볼 수 있다.(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어셔가 찾아와 쓰기를 권유하기도 한다.)

혼란하고 불안한 시기. 위로가 필요하다면, (그리고 혹시라도 공연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뛰어난 클래식 연주까지 한 번에 보고 들을 수 있는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를 보는 건 어떨까.

keyword
이전 10화위로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