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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서사를 납득시킬 도구로 쓰이는 '부성애'

루나와 레온의 행복에 대하여 - 뮤지컬 <로빈> 후기 2

by 한성

아무것도 모르는 루나와 모든 걸 알고 있는 레온,

두 사람 중 누가 행복할까? 아니, 행복할 수 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J1UgQbb79PE&t=10s

사실 필자가 <로빈>을 보면서 불편했던 지점은 소재의 혼합도 소재의 낡음도 아니었다. 거칠게 말하면 인간의 이중성? 상세히 말하면 인간 로빈의 욕심으로 인한 뉴빈, 루나, 레온의 불행 때문에.

이 공연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들 모두 너무나 괴로운 삶을 살아간다. 뉴빈의 이야기는 1편에서 했고, 겉보기에는 로빈이자 뉴빈의 따뜻한 사랑 아래 있는 듯 보이는 루나, 레온도 마찬가지다. 특히 루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레온은 모든 걸 알고 있는, 완전히 상반된 상황에 있지만 말이다.(후기를 찾아보니 루나가 뉴빈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배우에 따라 다른 듯하다. 우선 필자가 본 루나 역의 배우는 모르는 것으로 표현한다고 느껴졌다. 근데 알고 있으면 더 불행한 거 아닐까ㅇ<-<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거니까.)

인간 로빈이 뉴빈으로 바뀌고, 뉴빈이 다시 뉴뉴빈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6살의 루나, 16살의 루나는 눈치를 채지 못했을지 몰라도 26살, 36살.... 나이를 먹게 되면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대부분 로빈이 복제인간 상태였다는 걸 말이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고통에서 루나를 보호하고 싶은 인간 로빈과 뉴빈의 마음은 너무 이해하지만, 그 고통도 결국 루나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영양분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차단해버리는 건 결국 루나가 아이로만 머물기를 바라는 인간 로빈의 욕심일 뿐이다.

그래서 공연을 보면서 계속 영화 <올드보이>의 강혜정이 맡았던 인물이 생각났다. <올드보이>도 결말이 조금 열려있는 편이지만 진실을 모른다고 가정하면, 과연 강혜정이 맡았던 그 인물이 영화가 끝난 후 가지게 될 행복은 '진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루나에게도 마찬가지다.

뮤지컬 로빈_영상캡처_유튜브.JPG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szRnMWL_hVw)

게다가 루나와 달리 레온은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인간 로빈이 레온에게 너도 내 아들이야, (정확한 대사가 생각나지는 않지만 이런 뉘앙스였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 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들이라면서 왜 루나와 다르게 취급해ㅍㅅㅍ 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뻥 뚫리는 고통을 루나에게 주고 싶지 않아 복제인간까지 만들면서 자기 아들과 같은 레온에게는 뉴빈에게 진실을 알릴 역할을 맡기고 자기는 죽는다니. 레온이 로봇이라서? 하지만 인간 로빈과 루나와의 기억으로 사랑을 느끼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인간 로빈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했건 간에, 결국 루나를 지켜주기 위한 수단으로써 레온을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뮤지컬 <로빈>에서는 '부성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1편에서 말했던, 인간 로빈이 뉴빈을 만든 이유도, 루나를 끝까지 속이는 이유도, 레온에게 나중에 뉴빈에게 진실을 알려줄 역할을 맡기는 이유도 전부 결국 루나를 사랑해서다. 물론 잘 알고 있다. 모성애와 부성애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에 대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기적인 행동을 무조건 납득할만한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로빈>이 캐치프라이즈로 내놓은 '난 이제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일을 하려 해, 너와 함께' 이 문장이 필자에게는 이중적이면서도 불편했다.


<로빈>을 보면서 이 공연을 사랑할만한 이유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 것 같았다. 사실 넘버가 너무 예쁘고 좋다. 제일 좋았던 넘버는 따로 있고 영상으로 박제도 되어 있지만 공연장에서 직접 보고 넘버의 감동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에서는 두 번째로 좋았던(?) 넘버 영상을 가지고 와봤다.

https://www.youtube.com/watch?v=TubZv-HBvTc

그리고 글이 1,2편으로 나뉠 만큼(...)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공연이라는 건 참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엔 생각할 게 많은 공연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도 물론 들어가 있다. 너무 단순하게 주제를 던져주기만 하면 공연을 곱씹을 만한 거리가 없어지니까. 사실 부성애와 복제인간이라는 두 소재를 섞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물론 자연스럽게 섞였다고 느껴지진 않지만(...) 그래서 조금 다듬어지거나 내용에 변화를 주면 더더, 좋은 공연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배우들도 너무 좋았고(연기, 노래 다 좋았다. 솔직히 이렇게 모든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가 공연 내내 좋다고 느낀 건 참 오랜만.) 넘버도 좋았지만 다시 보러 가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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