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연의 한 축은 죽음을 앞둔 허균이 누이인 허초희(이자 허난설헌)를 회상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을 쓰자면 액자식 구성. 현재(물론 우리 기준엔 과거지만 뭐 아무튼)-과거-현재 이렇게. 그런데 과거의 이야기에서도 허균이 가진 '화자'로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 공연의 대부분은 허균과 허초희가 함께 있을 때 벌어졌던 사건들로 전개된다. 둘이 있는 장면에서도 허초희의 생각이 오롯이 등장하는 순간이 많지 않고, 몇 안 되는 장면에도 허균이 이를 듣고 반응하며 평가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즉, 허균의 시선에서 허초희가 해석되어 관객들의 눈 앞에 보여진다.
허초희가 허균의 시선에서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조금 화가 나기 시작했는데(...) 갈수록 점점 내 예상과는 다른 내용들이 펼쳐졌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 공연에서 허초희는 허균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 쓰이는 서사적 도구였다. 공연의 중심적 내용은 집 안에만 갇혀있고 다른 사람 앞에 나서길 두려워하며, 개인이 사회적 변화를 만들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허균이 허초희와 이달로 인해 변화하는 과정이었다. ... 대체 제목은 왜 난설이었던 걸까...(...)
여성 성장을 위해 등장한, '희생하는 여성'
상상도 못 한 전개└ㅇ┐
그래도 허균의 시선에서라도 허초희의 이야기를 '꽤' 했고, 허초희가 허균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전달한 건 좋았다. 그리고 허초희에게 '주체적인 모습'을 넣으려고 애쓴 티도 보였고. 허초희가 이달과 함께 '의적' 활동을 했다는 장치는 상당히 신선했다. 기존의 지식으로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뭐, 이렇게까지 역사에서 어긋나도 되나 싶었지만 그건 창작자의 자유고 내용상으로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허초희가 각성하게 되는 계기가 또, 또(!!!!!!) 여성 인물의 희생이다. 이번엔 희생당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던 허초희와 허균의 하인인 끝단이.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드라마, 영화, 연극, 뮤지컬에서 남자 주인공의 성장을 위해 여성 인물들이 희생하는 걸 봐왔는데 내가 여자 주인공의 성장을 위해 이 장치가 쓰이는 걸 보게 될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했다. └ㅇ┐ 끝단이 설정이 나오고 내 심정은 딱 저 이모티콘이었다. 상상도 못 한 전개└ㅇ┐
결국 한 마디로 '난설'을 요약하자면, 여성 중심 서사인 척하는 남성 중심 서사다. 내용을 전개하기 위해 쓰이는 장치들마저도 기존의 활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창작자가 어떤 생각으로 '난설'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자는 여성 중심 서사라는 것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이야기 전개 상 기존에 있던 장치들을 이리저리 끼워 맞춰서 여성 중심 서사를 만들려다 결국 목적 달성에 실패한(...) 작품이라고 느껴졌다.
그런데 이렇게만 남기에는 너무 아까운 작품이기도 하다. 일단 소재가 매력적이고, 허난설헌의 시를 가지고 넘버를 만들었고, 여배우가 타이틀롤이 되어 무대 위에서 훨훨 날아다니는데.... 다음에 이 공연이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진짜 '허난설헌'의 이야기를 가지고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