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의 니체 읽기 칼럼
오늘, 가을 위에 갑자기 겨울이 내려앉았다. 찬바람 쌩쌩 부는 거리에 은행잎이 먼지처럼 날리고 아파트 옆 산책로에는 낙엽이 수북하다.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오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개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개 주인 들은 개에게 무척 온정적이다. 용변을 보려 하면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고, 주변을 킁킁거리며 탐색하면 어린 자식 보듯 흐뭇해한다. 쌓인 낙엽 아래는 개들이 싼 똥들이 굴러다닌다. 지금은 낙엽이 똥을 덮었지만 산책을 하다가 개똥을 밟을 때가 있다.
개똥을 밟은 어느 여름 낮, 개와 산책하는 사람을 만났다. 온화한 미소를 띤 주인은 사랑스러운 개를 자랑하고 싶은가 보다. 나도 모르게 한마디 했다.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서.
“혹시 개가 길에 똥 싸면 아래쪽으로 좀 치워주세요”
“우리 개가 싼 똥은 제가 다 치우고 다니거든요”
주인은 금세 안색이 바뀐다.
그 후 실험 삼아 같은 말을 해봤더니 10명 중 1-2명 정도만 “그럼요.”라고 심상한 어조로 말한다. 대부분은 기분 나쁘다는 투로 “우리 개는 여기 똥 안 싸는 데요”라고 대꾸한다.
산책로에는 항상 개똥이 널브러져 있는데 그 거리를 산책하는 개 주인 들은 ‘우리 개는 절대로 똥을 안 싸며, 똥을 싸더라도 다 치우고 다닌다’고 불쾌한 심기를 드러낸다. 심상한 어조로 ‘알겠다’고 하는 예의 바른 개 주인 역시 ‘우리 개는 범인이 아니다’라는 요지의 말을 꼭 덧붙인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 혹은 다른 나라의 개들이 매번 똥을 싸놓고 줄행랑친 걸까?
지난여름 산책을 할 때 만났던 개와 개 주인 들은 추운 날씨 탓인지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들의 옷은 어느새 다른 색깔과 다른 모양으로 바뀌어 있다. 가을 위에 갑자기 내려앉은 겨울은 거리의 풍경을 바꾸고 산책로의 개 주인과 개를 감추었다. 맞은편 인도에 나타난 호떡 장수와 뜨거운 어묵을 파는 노점을 보면서 거리의 변화를 감지한다. 오늘은 나도 두툼한 외투를 입고 있다. 익숙하던 거리에 다른 분위기 다른 냄새 다른 색깔 다른 공기가 도착해 있다.
안녕! 반가워 이렇게 다시 만나서 참 좋네.
이 소읍에서 나는 돌연 여행자가 된다. 방금 열대의 사막을 횡단하다가 돌아온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엊그제 태양이 펄펄 끓었는데, 정말 엊그제 가을이 고즈넉해서 그 안에서 정신을 놓고 있었는데 하루 사이에 겨울이 와 있다. 여행자는 신기한 눈으로,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가을 위에 겨울이 느닷없이 와 있네! 나는 느닷없는 손님을 보며 잠시 멈칫한다. 이 겨울은 앞으로 다양한 영상을 선물하리라. 펑펑 솟아지는 함박눈, 꽝꽝 언 빙판길, 눈싸움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스케이트장, 썰매 타는 풍경, 잿빛 하늘, 웅크린 사람들의 어깨, 목도리로 쭈그렁 얼굴을 잔뜩 동여맨 노인들의 잰걸음과 어여쁜 처녀들의 추운 종아리를... 이 소읍에서의 하루가, 이 삶이 여행이구나. 수시로 변하는 무대 배경처럼 자연은 순간들을 영화처럼 보여준다. 바빠서 내가 놓친 풍경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들은 마치 동물처럼 미련하게 땀을 흘리며 산을 올라간다; 도중에 아름다운 전망들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그들에게 말해주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Ⅱ,202>
우리는 산을 올라가는 데만 정신을 팔고 있어서 아름다운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최대한 빨리 도착하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살면서 혹 내가 놓친 것들의 이름을 생각해 본다. 내가 봐주지 않아서 화가 났을 사람이 있을까? 토라진 마음이 있을까? 삐쭉 입을 내밀고 사라진 꽃잎이 있을까? 잊혀진 항구의 바람소리, 안개와 빗방울들이 있을까? 산길에서 맨발로 걷다가 무심히 밟아버린 개똥, 화가 난 내가 모든 개들을 미워할 때 무구한 개들은 섭섭해했을까? 개가 똥 싸는 것은 개 잘못이 아닌 것을.
다른 느낌과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응시하자.
여름이 방금 내 옆에 있었는데 가을인가 하면, 어느새 겨울이다. 인생이 참 빠르다. 인생이 여행이다. 여행을 할 때 우리는 흥분한다. 모르는 것을 만나는 것은 설렘이다. 다른 내가 되는 경험을 한다. 나의 신체와 사유는 다른 사물과 세계와 접촉해서 다른 것이 된다. 하지만 내 옆에 새롭게 생성중인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는데 못 보는 것이다. 사는 것에 시큰둥해진 때문이다.
니체는 ‘오늘날 사람들은 체험은 너무 많이 하면서 숙고하는 일은 너무 적게 한다’고 지적한다. 그토록 경험의 폭을 넓히기 위해 많은 여행과 체험을 하고서도 정작 숙고는 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체험하지 못했다’고 말한다고.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새로운 경험’을 강조하는 19세기 낭만주의 신화와 20세기 소비자주의 신화의 결합이 오늘날 ‘해외여행’ 욕망을 탄생시켰는데 이 욕망은 ‘상상의 질서’에 의해 프로그램된 것이라고 말한다. ‘나의 시야를 넓히고 내 인생을 바꾸는 여행’에 대한 신화는 ‘만들어진 것’이다. 즉 ‘상상의 질서’가 우리의 욕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굳이 해외여행이 아니면 어떠랴. 일상에는 신비하고 비의적인 삶의 암호들이 숨어 있다. 이 하루 안에는 놀라운 생성과 소멸의 순간이 출렁이고 있다. 땀 뻘뻘 흘리며 정상에 올라가는 일에만 열중하지 말자. 정상에 당도하는 순간은 소멸의 순간이며 무의 순간이다. 삶의 무의미성을 확인하는 그 행렬 속에서 우리 다른 것을 보자. 어느새 찾아온 손님, 겨울에게 인사를 하자. 지금, 이 순간과 접촉하고 어울리자. 놓친 것들에게 다가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