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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경 Jan 17. 2019

영원회귀와 죽음체험

■천경의 니체 읽기 칼럼

만약 어떤 악마가 당신에게 와서 이렇게 속삭인다면 어떨까?    


“지금 삶에 만족하는가? 만족하든 안 하든 당신은 지금과 꼭 같은 삶을 다음 생에도 그대로 살 것이다. 그다음 생에도 그다음 생에도, 무한히 반복해서. 당신은 지금과 동일한 삶을 영겁처럼 거푸 살아야 한다”    


당신은 행복하신가? 이 삶을 영원히 반복해서 살아야 한다고 하면 어떨까? 뭐? 이 처 죽일 놈의 자식아!라고  소리칠 것인가? 우와! 이대로 천 번 만 번 산다고? 죽지도 않고 지금처럼 산다고? 좋아 아주 좋아!라고 말할 것인가?    


<즐거운 학문> 341절에서 니체는 질문한다. 너는 이 삶을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원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기뻐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어떠냐고? 나는 악마 놈의 머리통을 날려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좋아!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사람이 바로 위버멘쉬가 아닐까? 영원회귀 사유를 긍정하고 동일한 것이 반복되는 이 삶을 긍정하는 자가 위버멘쉬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 이 사유는 기막힌 ‘도발’ 일 수 있다. 죽음조차도 해결할 수 없는, 동일한 것의 영원한 회귀를 생각해 보라! 끔찍하지 않은가? 우리는 흔히 감당할 수 없는 절망 앞에서 ‘죽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 해결된다고 믿는다. 최악의 순간 꺼낼 선택지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죽을 자유도 없이, 이 지긋지긋한 삶을 영원히 살아야 한다면? 이런 말을 하는 악마부터 요절내야 하지 않을까?    


니체의 영원회귀 사유는 이 물음에서 시작된다.     


“보라. 여기 순간이라는 것을! 나는 말을 이어갔다. 여기 순간이라는 성문을 가로질러 나 있는 길로부터 길고 영원한 골목길 하나가 뒤로 내달리고 있다. 우리 뒤에 하나의 영원이 놓여 있는 것이다. 

만물 가운데 달릴 줄 아는 것이라면 필히, 이미 언젠가 이 골목길을 달렸을 것이 아닌가? 만물 가운데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필히, 이미 언젠가 일어났고, 행해졌고, 지나가버렸을 것이 아닌가? 

(...)

그리고 달빛 속에서 기어가고 있는 이 더딘 거미와 이 달빛 자체, 함께 속삭이며, 영원한 사물들에 대해 속삭이며 성문을 가로질러 나 있는 길에 앉아 있는 나와 너, 우리 모두는 이미 존재했음에 틀림없지 않은가?  그리고 되돌아와 우리 앞에 있는 또 다른 저 골목길 , 그 길고도  소름 끼치는 골목길을 달려 나가야 하지 않는가. 우리는 영원히 되돌아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3부 2장> 중       


니체는 영원회귀를 긍정하게 될 때, 그는 ‘변화한 자’ ‘빛으로 감싸인 자’가 되어 웃는다고 말한다. 이 웃음은 이전에는 웃어본 적이 없는 웃음이다. 이 웃음은  ‘사람의 웃음소리’가 아닌 위버멘쉬의 웃음일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 웃음에 대한 동경이’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고 말한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유는 매 순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순간이 영원이며 이 순간이 전부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순간을 긍정하면서 살면 된다. 이 순간은 영원으로 이어지는 영원이다. 이 순간은 축복이다. 필연이다. 이 순간이 축복이 아니라면 삶은 두렵고 황폐한 사막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이 순간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다. 이 순간이 영원이 회귀한다!     


그런데 가만! 동일한 이 순간이 영원히 되돌아온다니? 동일한 것이 어떻게 되돌아온단 말인가? 동일한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세상 만물은 한순간도 동일하지 않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그런데 동일한 것이 되돌아온다니? 들뢰즈라면 차이만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말할 것이다. 니체에게서 동일한 것이란 힘에의 의지의 되돌아옴, 힘들의 되돌아옴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이 똑같이 동일하게 반복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다만 지금 글을 쓰는 나, 지금 밥을 먹는 너, 웃고 있는 저 아기, 즉 세상과 인간 모두가 힘에의 의지의 현현일 뿐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나의 힘의지들, 지금 너의 힘의지들은 매번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니체는 말한다. 세상 모든 만물이 힘에의 의지라고. 우주는 그 자체로 목적이 없으며 혼돈의 반복이다. 즉 힘들의 힘들이 운동하는 반복이다. 니체는 세계의 총체적 본질을 영원한 혼돈으로 본다. 해서 인류에게 위버멘쉬라는 목표를 가질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살 경우 영원한 혼돈의 반복 속에 머무를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회귀의 사유는 혼돈에서 도약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차이를 생성하는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의 남편이 임종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그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남편은 사는 것이 재미없다며 술 마시는 낙으로 살다가 이 체험을 했다고 한다. 영정사진 찍고, 수의 입고 관속에서 10여분 누워있는 가상 죽음의 체험은 그를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그는 관속에서 나와 대성통곡을 했고 그 후 가족에게 매우 잘한다고 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살아온 날에 대한 후회와 회한으로. 지금까지  잘못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죽음이 두렵고 께름칙해서 저 아래로 밀어버린 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일 것이다. 그런데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마주했을 때 내가 지금 잘못 살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그때부터 변한다. 지금과 다른 삶을 살려고 노력하게 된다. 해서 이 체험은 사람들을 놀랍게 변화시킨다고 한다. 죽음에 직면했을 때, 최선을 다해 살았고, 행복했고, 다시 동일한 삶이 주어져도 지금처럼 살 것이라는 마음으로 이 순간을 맞는다면 그는 성공한 사람이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유는 임종체험과 비슷한  충격을 준다. 지금 나의 삶이 앞으로도 영원히 동일하게 회귀한다고 하면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영원회귀 사유를 받아들이는 순간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묻게 된다. 이것이 내가 매 순간 계속되기를 원하는 삶인가? 이제 결단하게 된다.    


나는 오늘 얼굴을 찌푸리며 화가 났는가? 사는 것이 왜 이 모양일까? 온 세상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었는가? 착한 고양이에게 화를 내고 말하지 못하는 창문들에게, 냉장고에게, 벽들에게, 오후의 나른한 공기에게, 나쁜 태양에게 화를 냈는가? 영원회귀? 지랄. 잠자는 곰인형에게 화를 냈는가?  뭐 이런 개 같은 세상이 다 있나? 분노가 불끈불끈 솟구쳤는가? 그런 자신이 가엾어 보였는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화를 낼 수 없다. 그들은 착하지 않다. 이유 없는 나의 화를 받아줄 리 없다. 해서 가만히 있는 의자를 발로 차고 벽에 이마를 찧었는가? 집안의 물건들에게 화를 냈는가? 그러지 말 일이다. TV를 보면 연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니체는 도덕주의자들을 혐오한다. 해서 니체는 자신을 비도덕 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비도덕 주의자라는 말은 아무렇게나 살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과 다른 차원의 윤리적 실천을 요구하는 위버멘쉬의 삶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질적으로 다른 인간 유형을 요구하는 것이며, 새로운 윤리적 지평을 여는 사유다. 말하자면 자기를 극복한 인간을 제시한다. 그것은 새로운 무엇이며 비도덕이며 선악의 저편의 사유다.     


현재의 도덕은 ‘인간말종’의 도덕이며 자기기만에 불과하다는 것이 니체의 일갈이다

.

나의 시 한 편을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나는 노래하는 까치에게 화를 낸다

착한 강아지에게 화를 내고 고양이에게 소리 지른다

되는 일도 없고 우울이 깊어 가는 날

나는 나무에게 화를 낸다

나무보다 멍청한 하늘에게 하늘보다 멍청한

키 작은 회양목에게 화를 낸다

회양목보다 더 작은 민들레에게

민들레보다 더 못생긴 잡풀들에게 화가 나서

소리친다

이 못난 것들아 이 바보 천지들아

집에 돌아보면 먼지를 싸안고 온 외출복에게,

지저분한 신발에게

백치 거울에게 눈 치뜨고 화를 낸다

그리고 나에게 화가 난다

화가 난 나를 보면 슬퍼지고 나는 착한 것들에게만

화를 낸다

추운 것들, 힘없는 것들에게만 화가 난다

                                   

-천경 시 <화를 낸다> 전문(全文) , 시집 <고독 혹은 빨강색에 대하여>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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