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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스토리 Sep 27. 2020

사라진 택배

알바니아에 온 이유

우리가 알바니아에 온 이유는 단 한가지 이유, 바로 한국에서 보내주는 택배를 받기위함이다.

택배에는 곧 시작 될 유럽 캠핑여행을 위해 필요한 한식 재료들과 침낭, 트레킹화 등 꼭 필요한 물건들이였다.

어머님이 한국에서 보내주시는 물건이 언제 도착할지 모르기에 우린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에 일주일이라는 꽤 긴 시간을 머물기로 했고 긴 기간만큼 숙소도 저렴한 곳을 선택해야 했다.



사람보다 먼저 온 택배

일주일 동안 머물 숙소의 주소를 시댁 어른들께 알려드렸다. 과연 우리가 머문는 기간에 택배가 제때에 맞춰 도착할지 의문이였다. 의외로 택배는 굉장히 빨리 도착했다. 우리보다 먼저 알바니아에 도착한 택배를 받기 위해 숙소에 짐을 두자마자 우체국으로 향했다.


'너희 택배는 이미 배송이 완료되었어'


그 곳에 택배는 없었다. 우체국에서 우릴 기다려야할 택배는 우리의 숙소로 배달이 되었고 숙소 주인은 받은 적이 없다는데 우체국에는 받았다고 확인이 되어있다고 했다.



증발한 택배...해외에서 택배를 처음 받아보는 우린 혼란스러웠다. 택배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집주인은 안받았다는데 택배기사는 배송을 완료했다고 하는 어이없는 상황. 택배기사가 라면을 좋아해서 훔쳤을까? 숙소주인이 한식재료가 탐나서 가로챘나? 둘 중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와 남편과 택배안에 무엇이 있었을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추위 잘 타는 나를 배려해 50만원넘게 주고 산 값비싼 구스침낭, 우리 발에 익숙해진 트레킹화, 배고픔으로 부터 구원해줄 한식재료, 조리도구들...다시 돈을 주고 산다면 족히 100만원은 써야 할 것이며 돈 주고도 못 사는 엄마의 정성이 담긴 식재료들...


우린 뭐 하나 쉽게 풀리는게 없다. 처음하는 세계여행은 실수의 실수의 연속이고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거기에 1박에 1만원하는 저렴한 숙소는 창고를 개조한 방이라 습하고 눅눅하고 수시로 물이 나오지 않았고 인터넷도 없었다.


택배를 찾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택배 생각에 밥도 먹지 못하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이런 걱정은 늘 내 몫이다. 남편은 '찾을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택배를 떠올리지 않는 듯 보였다.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일까. 택배가 없다면 앞으로의 여행이 다 꼬이고 말텐데 이 상황에도 침착하고 마냥

'찾을 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 남편은 정말 이상하도록 긍정적인 사람 같다.




알바니아인


남편은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부탁해 택배사와 통화해줄 것을 부탁했다. 호스트가 택배사랑 통화 한 후 연락이 왔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택배는 임시보관소 같은 곳에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


진짜 우리 택배가 보관되어 있을까? 통화 전에는 택배를 못 찾을 것이라는 불안함에 속상해서 걱정되서 대책이 서질 않아 잠을 못자고 있었는데 이제는 택배를 보관하고 있다는 말에 설레여서, 그리고 긴장되고 조급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출근하기 전 호스트는 우리 숙소에 왔다. 같이 찾아주겠다고 한 호스트 덕분에 아침 일찍 문도 열리지 않은 건물 옆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렸다. 9시가 되자 우린 이상한 건물 안 사무실에서 "우체국택배"라고 적혀 있는 우리의 물건들을 무사히 찾을 수 있었다.


참 다행이게도 대부분의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은 친절하고 외국인에게 적대적이지 않다. 코소보에서 당한 인종차별에 멘탈이 나가버린 나에게 솔직히 알바니아는 머물고 싶은 곳이 아니였다. 코소보에 거주하는 90%가 알바니아계이기 때문에 알바니아 땅을 밟은 순간부터는 초초긴장에 극도로 예민해 있었다. 알바니아계 사람은 동양인을 우습게 보며 비하한다는 색안경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르는 척 할 수 있었던 호스트가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었다.



내가 도움을 받고서야 곪고 뒤엉켜 엉망이 된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는 듯했다. 그제서야 알바니아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 종일 비가 와서 나가기 싫다는 핑계로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지만 사실은 사람 만나기가 무섭고 알바니아가 미워서 그랬던 것이다. 날씨따윈 아무상관 없었다.


나를 동양인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봤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같은 알바니아계 사람이니 모두가 불친절하고 모두가 나쁠 것이라는 생각...잘못된 생각이고 말도 안되는 생각. 나도 색안경을 끼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한국에서 알바니아 사람을 만나면 내가 받은 불쾌함을 똑같이 느끼게 해줘야지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당했으니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해야하는 것을 어쩌다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라' 가 되었을까...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를 
외치며 참았던 내 자신을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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