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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스토리 Sep 27. 2020

동양인 인종차별

가장 끔찍했던 여행지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할 수만 있다면 머릿속에서 도려내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아픈 기억은 좋은 기억보다 더 오래 저장된다.



 동양 여자


코소보의 수도인 프로슈티나에 도착해 호스텔에서 지내며 밥을 먹으러 갈 때 우리를 보며 웃고 소리 지르는 어린 10대들을 종종 보았다. 안전지대라고 느낀 호스텔에서 벗어나기가 싫어 남편에게 식사 포장을 부탁하거나 아예 먹지 않았다. 남편은 이런 작은 일에 의기소침해하는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 듯했다. 이럴 때 일 수록 더 당당해야 한다고 했다. 프로슈티나에는 딱히 볼 것이 없었다. 그래서 2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프리즈렌이란 곳을 가보기로 했는데 하필, 공휴일이었던 그날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동양인은 유일하게 우리 부부뿐이었는데 동양인을 처음 보는지 노인부터 꼬마들까지 우리를 신기한다는 듯 뚫어지게 보았다. 그 불편한 시선들은 프리즈랜 요새로 올라가면서 거세졌다.



요새로 올라가는 길에 내려오는 사람은 어김없이 우리를 보고 요란한 웃음소리로 웃어대고, 핸드폰을 들고 대놓고 사진을 찍어댔다. 내가 하는 한국말을 어설프게 따라 하기도 했다. 동물원에 갇힌 원숭이가 이런 느낌을 받으려나? 요새까지 다 올라와 사진 찍기 바쁜 남편과 떨어져 혼자 우울한 기분을 달래고 있을 땐 남자 무리 몇 명이 와서 'I Love you'라고 귓가에 속삭였다. 


내 인생 최고로 불편하고 불쾌하고 불행했던 코소보. 1분 1초도 머물고 싶지 않아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듯 도망쳐 나왔다.

내가 처음으로 인종차별을 겪은 곳이 아제르바이잔이 아니라 이곳 '코소보' 였다면 길에서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저 처음이 아니었음에 감사하고 다음에 당할 인종차별에 조금은 담담해졌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이것도 경험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어 본다.




생각해보면 남들이 웃던 말던 내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던 내가 무시하면 그만이다. 신경 써봐야 나만 불편할 테니 무시하면 그만인데 나는 성격 상 그걸 무시할 줄 모른다.


 돌이켜보면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의 삶을 살아갈 때도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었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가 중요한 문제였다. 그만둔 지 한참 된 음악을 다시 시작할까 했을 때도 나는 주변의 반응을 살폈다. 이 사람이 나를 응원해줄 것인지, 그만두라는 조언을 해줄 것인지... 실제로 다시 시작하려고 했을 때 나의 음악세계에 있어서 꽤 영향력을 주는 지인에게 안 하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역시 난 안되는구나' 생각하고 포기해버렸다. 


유렵 여행을 하면서 인생을 자기 멋대로 사는 멋진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특히 길에서 버스킹을 하는 연주자들은 나한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래, 나도 하고 싶은 것 다 할래'라고 마음먹었는데 다시 한국에 돌아오니 다시 남의 눈치 보느라 바쁜 내가 되었다.


가장 끔찍한 기억으로 남은 여행지 코소보가 생각해보니 내 성격 탓에 그랬던 것 같다. 안 좋은 일이 있었어도 내가 생각하기 나름일 테고 그렇게까지 최악의 여행지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때의 미성숙한 내가 그날의 최악을 만들었다.



눈에 색안경을 끼고 나를 본 사람들,  
마음에 색안경을 낀 나.

도. 긴. 개. 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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