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익숙해진 차박
노상방뇨 적응기
원래 밤 중에 화장실을 자주 가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꼬리뼈에 금이 간 이후로 화장실에 자주 가고 싶게 되었다. 특히 야간뇨를 참지 못하게 된 나는 밤중에 심하면 5-6번 보통은 3-4번의 화장실을 가야 한다.
때문에 차박과 노상은 땔레야 땔 수 없는 관계였다. 나의 첫 노상은 첫 차박을 했던 순간부터 맞닥뜨린 문제였다. 잠을 자기 전에 반드시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나와야지 잠에 드는 나는 자기 전 차에서 살짝 나와 문 옆에 쉬를 하고 다시 누웠다. 첫 노상... 쭈그리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며 급히 볼일을 봤다. 눈에 띄지 않게 얼른 싸고 다시 차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긴장돼서 쉽게 나오지 않았다.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몇 초를 기다려야 나왔다. 그렇게 어렵게 첫 노상방뇨를 하고 차로 돌아와 잠을 청하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마려웠다. 아마도 긴장해서 제대로 싸지 못해서 그런 것이겠지.
나는 소변 때문에 늘 애를 먹었다. 화장실이 있어도 벌레가 많거나, 너무 멀거나, 무섭거나 하는 이유로 자주 노상을 했다. 노상은 반드시 내가 편해져야만 하는 일이었고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그렇게 유럽여행을 하며 곳곳에 영역표시를 하게 되었다. 노상에 익숙해지니 낮에도 몰래 싸고 금방 차에 올라타는 대범함까지 생겼다. 예전처럼 잔뇨가 남지도 않고 오히려 밤에 엉덩이를 밖에 두고 풀냄새를 맡으며 쪼그리고 있으면 기분이 상쾌하단 느낌까지 들었다.
언젠가부터 화장실이 있어도
노상이 편하더라.
도둑 캠핑
오랜 시간 이동을 하고 저녁에나 캠핑장에 들어가는 우린 저녁에 텐트를 치고 이른 아침에 이동하기 위해 또 텐트를 접어야 한다. 보통 외국의 캠핑장 입장 시간은 11:00 정도로 한국의 캠핑장보다 빠르다. 11시 전에 도착하면 대부분 일찍 입장을 시켜준다. 우리 입장에서는 늦게 도착하고 캠핑장의 돈을 다 지불하는 게 아까운 부분이었다. 늘 그분이 불만이었는데 어느 날은 너무 늦게 도착해서 캠핑장에 체크인을 해 줄 직원이 퇴근하고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캠핑장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잠을 잤다. 다음날 이른 오전에 체크인을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괜찮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의 깨우침으로 우린 캠핑장에 일부로 늦게 들어가거나 캠핑장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자는 날이 많아졌다. 몰래 캠핑장의 화장실을 쓸 수 있었고 다음날 일찍 체크인을 하면 1박의 캠핑장 비용을 아끼는 기분이 들어 기분까지 상쾌해졌다. 그러다 이젠 굳이 체크인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밤에 화장실만 몰래 쓰고 차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직원이 출근하기 전에 자리를 떴다. 한 번은 캠핑장 주차장에서 몰래 차박을 했는데 씻지 않은지 3일이 넘어 꼭 씻고 싶었다. 이른 아침이라 직원이 출근하지 않은 상태라 몰래 도둑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향했다. 샤워를 마치고 다시 차로 돌아가려는데 립셉션에 직원이 출근을 한 상태였다. 차 안에서 기다리는 남편에게 신호를 보내 남편이 립셉션으로 가 직원의 눈길을 돌리고 나는 재빨리 캠핑장을 빠져나왔다. 심장이 쿵쾅쿵쾅 빠르게 뛰었다. 그렇게까지 아끼다 보니 우리의 목적은 여행에서 어느 순간 돈 아끼기가 되어있었다. 더 즐거운 여행을 위한 투자인지 더 긴 여행을 위한 수단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둘 다 돈 아끼는 것에 미쳐 최선을 다해 아끼고 아끼고 아꼈다.
차 안의 만능 주방
비싼 유럽 물가를 이겨내기 위해선 숙박료 말고도 식비 또한 아껴야 했다. 리스카 여행을 시작하기 전 프랑스에서 구매한 라면 한 박스와 짜파게티 한 박스는 거의 다 먹어 몇 개 남지 않았다. 아침 점심 저녁을 라면으로 먹거나 시리얼에 우유를 먹으며 여행한 우리. 그러니 누군가가 유럽 어느 지역의 전통음식을 묻는다며 입을 꾹 다물수밖에 없다.
내가 기억하는 건 시리얼을 먹고 세제 없이 빙하수로 씻었던 노르웨이와 공복 트레킹을 마친 후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차 안에서 콜록콜록 기침을 해가며 끓여먹었던 라면, 비교적 국물 버리기 간단해서 애용했던 짜파게티가 전부다. 차 안에서는 그렇게 간단하게 허기만 달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스트리아의 한 경치 좋은 곳에서 그 생각을 벗어났다. 우리 건너편에 주차된 캠핑카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남편은 허기진 배를 움켜잡았다. 눈치 없는 뱃속은 '꼬르륵' 소리 내면 낮은 천장을 가득 매웠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 종일 빵만 먹었던 우리였다.
돌이켜보면 내가 미안할 상황이 아니었는데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지 잠시 잊고 배를 움켜쥔 남편을 보자 미안한 감정이 밀려왔다. 요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차 안을 최대한 평평하게 만들고 가스버너를 올렸다. 쌀을 붓고 뭔지 모를 닭이 그려진 가루를 좀 넣고 아껴두었던 보크 라이스 수프를 하나 꺼내 휘휘 저어 죽으로 만들었다. 라면만 먹다 밥은 처음이었다. 둘 다 배고파서였을까 참 맛이 있었다. 앞 집 캠핑카가 부럽지 않다며 앞으로도 캠핑카는 필요 없겠다며 웃으며 이름 모를 죽을 한 그릇 다 비워냈다.
나는 또 이렇게 한 단계 나아간다. 생각도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도전해보고 생각을 하나씩 틔워간다.
유럽 리스카 여행은 나날이 힘들었지만 시간이 더해질수록 능숙해지고 익숙해져 갔다. 마치 수습기간을 마친 인턴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능력치는 발전했고 뛰어났다. 몸은 살기 위해 이겨내기 위해 닥친 상황에 적응해 나갔고 나는 생각보다 서바이벌에서 살아남기 좋은 강인한 캐릭터였다.
나조차 몰랐던 나를 알게 된 차박의 추억. 처음의 그 초보스러움과 어설픈 결정과 행동들이 어느새 노련해져 백전노장(百戰老將)이 다 되었다. 우리는 105일간 유럽을 자동차로 여행했다. 그중 차 박일수는 총 40일로 1일 숙박비를 5만 원으로 잡는다고 하면 200만 원이라는 여행경비를 아꼈다. '유럽 리스카 캠핑여행'이었던 이 여정은 사실은 고난과 역경의 시간이었고 좋은 걸 보고 다녔음에도 머릿속에는 못 먹고 못 씻고 차에서 잤던 힘든 기억만 가득하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내가 가장 많이 변하게 된 계기를 주는 아주 감사한 시간이었다.
이 글을 올리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기에 조심스럽다. 우리가 했던 행동들이 결코 좋은 모습이 아님을 알기에 키보드를 두드리는 지금도 망설여진다.
만일, 다시 여행을 간다면 우린 이런 식으로 여행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경험이었고 느낀 게 많은 여정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힘들다'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 베르사유 궁전도 갔고, 그라나다도 갔는데... 그곳에 대한 기억이 없다.
우리가 그렇게까지 아끼며 여행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은 점점 여행을 하면서 깨달았고 한국에 와서 생활을 하면서 더 절실히 느꼈다. 예를 들면 칠레를 여행하던 중 코로나사태가 남미까지 퍼지면서 갑자기 국경을 닫는다는 소식에 미리 예약한 비행기를 취소하고 가장 빠른 비행기를 다시 예약하느라 140만 원 정도의 금액을 손해 봐야 했다는 것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어차피 큰 마음먹고 세계여행을 나간다면 우리 부부처럼 아끼지 말고 여행의 질에 투자하라고.
멍청이 같아. 제일 후회돼.
금전적으로 아끼려고 아등바등 버텼던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