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조(물건의 정의) 본법에서 물건이라 함은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말한다.
오늘부터는 '물건'에 대하여 배웁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물건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런데 민법에서 말하는 물건의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민법에서는 왜 물건이라는 단어를 '하필' 지금 이 시점에 알아두라고 하는 것일까요?
잠시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한번 보고 옵시다. 우리가 제일 처음 무엇을 배웠었나요? 민법의 법원과 신의성실의 원칙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다음 나오는 제2장이 바로 [인],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람에 대해 배우면서 권리능력과 행위능력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다음에 배운 것이 바로 [법인]입니다. 네, 우리는 민법의 가장 기초가 되는 조문을 먼저 배운 후, 권리능력의 가장 기본적인 주체가 되는 '사람'과 '법인'에 대해 공부한 겁니다.
그러면 이제는? 권리능력의 '객체'에 대해서 공부할 시간이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소유권이라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권리주체)가 있다면, 그 소유권의 대상이 되는 것(권리객체)도 있지 않겠습니까? 철수가 볼펜을 소유하고 있다면, 볼펜은 철수의 소유권에 대한 객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물건'에 대해 공부할 겁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자, 그러면 무엇이 법학에서 말하는 '물건'일까요? 제98조를 찬찬히 해석해 보겠습니다.
제98조는 물건에 대하여 유체물 및 전기, 그 밖에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보통 전기(electricity)를 물건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전기라고 하지요. 그래서 그런지 약간 생소합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2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형체가 있는 것이고(고체나 기체 등), 다른 하나는 형체가 없는 것(소리, 빛, 에너지 등)이라고 하겠습니다. 전자를 유체물이라고 하고, 후자를 무체물이라고 합니다.
제98조에 따른 물건은 크게 2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모든 유체물.
둘째, 전기와 그밖에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
첫 번째의 경우는 이해하기 쉽습니다. 두 번째의 경우는 무체물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관리할 수 있는'이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맥상 조금 애매하기는 한데, 제98조는 유체물이건 무체물이건 모두 '관리할 수 있는 것'이어야 물건이라고 해석됩니다.
예를 들어, 저 하늘의 태양을 볼까요? 분명 유체물입니다만, 인간이 배타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관리할 수 있는 것'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태양은 물건이 아닙니다. 반면 바다 위에 떠 있는 조그만 섬을 생각해 볼까요. 섬은 인간이 배타적으로 지배할 수 있으며, 사람이 가서 살 수도 있고 농사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부동산입니다. 따라서 섬은 물건입니다. 민법에서의 물건은 이처럼 관리가능성(배타적 지배가능성)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무체물도 인간이 관리 가능한 자연력에 한하여 물건으로 인정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기가 있습니다.
또한, 제98조에 따로 표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제한이 더 있습니다. 현대의 법학에서는 인격이란 절대적인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인간의 신체 일부에 대해서는 물건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철수의 몸은 철수와 인격과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인데, 철수가 자신의 오른쪽 다리만을 팔기로 하고 그 소유권을 영희에게 1억 원에 넘길 수 있을까요? 절대 안 됩니다.
물론 신체의 일부라고 하더라도 신체에서 분리되어 사람의 인격과 무관하게 된 때에는 물건으로 인정받을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돈이 없어 배가 고픈 김흥부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 장사꾼에게 팔았다고 합시다. 김흥부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내었을 때 그것은 김흥부의 신체로부터 떨어져 분리되었으며, 소유권의 객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머리카락을 잘라 팔던 사례를 생각해 보시면 될 것입니다.
유골이나 유체는 어떨까요? 이미 죽은 사람의 것이니까, 물건으로 보아 처리해도 괜찮을 걸까요?
이에 대해서는 유명한 판례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죽은 아버지의 유체(돌아가신 분의 시신)를 어디에 이장할 것인지를 두고 법정에서 다툰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유체와 유골에 대한 소유권을 놓고 법적인 분쟁이 있었던 사건입니다.
여기서 판례는 "사람의 유체·유골은 매장·관리·제사·공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유체물"이라고 하면서, "사람의 신체는 그의 본질적 속성이다. 그리고 신체는 가장 뚜렷한 ‘내 것’으로서, 내가 소유하는 어떠한 물건보다도 더욱 현저하게 나에게 속하며 나의 의사에 의하여 지배된다. 그런데 사람의 사망으로 생전에 신체가 속하던 그 ‘사람’은 사라지고, 유체의 처리는 살아 있는 자들의 일이 된다. 유체가 이제 ‘물건’이 되어서 그에 대하여 소유권이 성립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오로지 장례와 같은 사후처리, 나아가 제사·공양 등을 할 수 있는 권능, 또 그와 같은 의무가 따르는 특수한 객체임은 물론이다."(사실 이 부분은 판례의 다수의견이 아니라 반대의견이기는 하지만, 이 내용에 대하여 다수의견과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고 문장이 좋아서 가져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대법원 2008. 11. 20. 선고 2007다27670 전원합의체 판결).
판례의 말은 이렇습니다. 유체나 유골은 관리 가능한 유체물임에는 분명하고 물건(소유권의 객체)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물건과 똑같이 볼 수는 없고 단지 장례나 제사, 공양 등이 수반되는 특수한 객체라고 보는 것입니다.
제98조에 역시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물건은 독립성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볼펜을 하나 소유하고 있다고 해봅시다. 볼펜은 분명 1개의 물건입니다. 그런데 철수의 볼펜을 구성하고 있는 펜심도 따로 하나의 물건이라고 보면 사실 그건 2개의 물건이 아닐까요? 볼펜 뚜껑도 또 물건이라고 보면 사실 그건 3개의 물건인 걸까요? 그건 아니고, 펜심이나 볼펜 뚜껑은 단지 볼펜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을 뿐입니다. 독립하여 하나의 물건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솔직히 이런 식으로 인정해 주기 시작하면 볼펜은 1개의 물건이 아니라 한 100여 개 정도의 물건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분자 단위까지 따지면...
그러나 볼펜의 펜심을 리필용으로 만들어서 파는 경우에는, 펜심 그 자체가 하나의 물건이 됩니다. 이처럼 1개의 물건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물리적인 형태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고, 사회통념에 의하여 상황에 맞게 정해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물건의 개념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가장 기초가 되는 개념이어서 상세히 설명했는데요, 중요한 부분이니 꼼꼼히 읽으시길 부탁드립니다.
내일은 물건의 종류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