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조(법인의 불법행위능력) ①법인은 이사 기타 대표자가 그 직무에 관하여 타인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사 기타 대표자는 이로 인하여 자기의 손해배상책임을 면하지 못한다.
②법인의 목적범위외의 행위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그 사항의 의결에 찬성하거나 그 의결을 집행한 사원, 이사 및 기타 대표자가 연대하여 배상하여야 한다.
오늘은 법인의 불법행위능력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불법행위능력'이란 도대체 뭘까요? 민법에서 처음 등장하는 개념입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불법행위의 개념을 먼저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민법 제750조는 불법행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불법행위란,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를 저질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고의란 여러분이 아는 대로입니다. 일부러 그랬다는 것이지요. 어려운 말로는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타인에게 위법한 침해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뻔히 알면서도 저지른다는 겁니다.
한편 과실이란, 고의까지는 아닌데 그 실수를 저지른 데에 책임이 있는 겁니다. 과실이란 부주의로 말미암아 타인에게 위법한 침해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어떤 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말합니다(김준호, 2017; 1735면). 고의와 과실의 구체적인 개념 정의와 그에 관한 학설의 논의는 생략하고 여기서는 이 정도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불법행위능력이란, 이러한 불법행위를 저지른 데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으로서 책임능력이라고도 합니다. 불법행위능력이 없는 자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해도 그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아니합니다. 그런 부당한 일이 어디 있겠냐고 할 수 있겠지만, 예를 들어 8살 된 꼬마 아이가 다른 사람의 밭에 있는 수박을 막대기로 부쉈다고 합시다. 8살 꼬마 아이에게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하는 것이 타당할까요? 이 아이는 자신이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한 변식 능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밭주인은 억울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대신 우리 민법은 8살 꼬마 아이 말고 그 부모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장치를 두고 있어서 아주 억울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어차피 8살 꼬마는 부순 수박을 물어낼 돈이 없거든요. 밭주인 입장에서도 아이보다는 부모를 상대로 돈을 받는 게 더 좋은 일이겠지요.
서론이 길었지만, 민법 제35조는 제75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불법행위 중에서도 특히 '법인'에 대하여 특칙을 정하고 있습니다. 법인도 불법행위를 저지를 수 있고, 당연히 그에 따른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민법의 태도인 겁니다.
그런데 이런 궁금함이 생길 수 있습니다. "법인은 팔다리가 없는데 어떻게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그렇습니다. 법인은 그 스스로는 어차피 어떤 물리적인 행위를 할 수가 없고 결국에는 자연인의 물리적인 행위를 통해서 그 사무를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민법 제35조제1항은 이에 대하여 이사 기타 대표자가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서 법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35조제1항에 따라 법인이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되기 위한 요건을 하나씩 뜯어봅시다.
여기서 이사 기타 대표자라고 하고 있는데 이사는 말 그대로 법인의 이사입니다(이사가 누구인지는 추후에 또 설명하겠습니다).
대표자에 대해서는 우리 판례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법인의 대표자’에는 그 명칭이나 직위 여하, 또는 대표자로 등기되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당해 법인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법인을 사실상 대표하여 법인의 사무를 집행하는 사람을 포함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 구체적인 사안에서 이러한 사람에 해당하는지는 법인과의 관계에서 그 지위와 역할, 법인의 사무 집행 절차와 방법, 대내적·대외적 명칭을 비롯하여 법인 내부자와 거래 상대방에게 법인의 대표행위로 인식되는지 여부, 공부상 대표자와의 관계 및 공부상 대표자가 법인의 사무를 집행하는지 여부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1. 04. 28. 선고 2008다15438 판결)"라고 하고 있습니다.
즉, 명칭을 뭐라고 부르건(보스건, 사장님이건, 상관없습니다) 실질적으로 법인을 대표하는 사람을 말한다는 거지요.
따라서 이사 기타 대표자가 아니라 그냥 아르바이트생이 한 불법행위는 제35조에 따라 법인이 책임져야 하는 사례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럼 대표자급이 아니면 다른 직원은 무슨 짓을 해도 법인은 나 몰라라 한다는 건가요?" 이렇게 항변하실 수 있습니다. 제35조에 따른 법인의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지 다른 책임도 다 인정 안된다고는 안 했습니다. 특히 민법 제756조는 사용자의 배상책임을 정하고 있어서, 피해를 받은 사람은 어떻게든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두었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35조는 명확하게 "직무에 관하여"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직무와 무관한 이사 또는 기타 대표자의 행위는 법인이 손해배상책임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어디까지의 범위가 '직무와 관련된' 행위인 걸까요? 이에 대해서 우리 판례는 "행위의 외형상 법인의 대표자의 직무행위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면 설사 그것이 대표자 개인의 사리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거나 혹은 법령의 규정에 위배된 것이었다 하더라도 위의 직무에 관한 행위에 해당한다"라고 합니다(대법원 1969. 8. 26., 선고, 68다2320, 판결).
즉 그 행위를 제3자가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볼 때 '아, 저 사람은 저 법인의 대표자이니까 저 행위는 직무상의 행위라고 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되면 직무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판례의 견해를 외형이론이라고 합니다.
이사 기타 대표자가 그 직무에 관하여 행위를 아무리 하였어도 누군가에게 손해가 발생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건 그냥 적법한 직무행위입니다.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할 여지가 없겠지요?
지금까지 제35조제1항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제1항 후단은 무슨 말일까요? "이사 기타 대표자는 이로 인하여 자기의 손해배상책임을 면하지 못한다".
이 말은, 비록 법인이 손해배상책임을 지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 행위를 한 자연인, 이사 기타 대표자 스스로도 책임을 지기는 져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A라는 법인의 대표자 철수가 직무에 관한 불법행위를 저질러 민수에게 1억 원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합시다. A법인은 철수를 대신해 피해자 민수에게 1억 원을 갚았습니다. 민수는 그럼 이제 손해배상을 다 받았으므로 만족했습니다. 이제 불만족한 건 A법인입니다. 철수 때문에 1억 원을 냈으니까요. 이에 A법인은 제35조제1항 후단의 규정을 들어 철수에게 여전히 책임이 있음을 주장하고, 철수에게 1억 원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누군가를 대신해 채무를 갚은 경우 본래 책임을 졌어야 할 그 '누군가'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을 법률용어로 구상(求償)이라고 합니다. 어려운 말로는 제35조제1항에 따라 A법인은 대표기관인 철수에 대하여 구상권을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A법인과 철수의 채무는 부진정연대채무로 본다는 복잡한 이론이 있습니다만, 구상이니 부진정연대채무니 모두 신경쓰지 마시고, 여기서는 하나만 기억합시다. "제35조제1항 후단에 따르면 실제로 불법행위를 한 사람도 무사할 수 없다."
이제 제2항을 볼까요? 제35조제2항은 제1항과는 구조가 완전히 다릅니다. 여기서는 "법인의 목적범위외의 행위"를 다루고 있습니다. 법인의 목적범위에 대해서는 제34조에서 다루었던 바 있습니다. 즉 법인의 목적범위 외의 행위라서 제1항에 따른 법인의 불법행위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그 사항의 의결에 찬성하거나 그 의결을 집행한 사원, 이사 및 그 밖의 대표자가 배상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연대'라는 어려운 표현이 나오는데 일단 무시합시다.
오늘은 법인의 불법행위능력에 대하여 공부했습니다. 내용이 복잡하고 어려웠는데요, 내일부터는 좀 더 쉬운 내용이 나올 겁니다.
*참고문헌
김준호, "민법강의", 법문사, 제23판,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