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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제8조, "영업의 허락"

by 법과의 만남
제8조(영업의 허락) ①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으로부터 허락을 얻은 특정한 영업에 관하여는 성년자와 동일한 행위능력이 있다.
②법정대리인은 전항의 허락을 취소 또는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컴퓨터를 못 사게 하는 아버지에게 실망한 철수는, 아예 인생의 진로를 바꾸어 자기가 직접 컴퓨터를 조립하고 판매할 생각을 합니다. 처음에는 맹렬히 반대하던 아버지도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철수의 컴퓨터 판매업을 허락합니다.


문제는 철수가 고작 15세라는 것이지요. 이제 '사업'을 해야 하는 철수는 수많은 어른들을 만나 납품도 하고, 부품도 받고 거래도 해야 하는데 그 모든 행위에 대해서 아버지의 동의를 구하다가는 동의만 받다가 하루가 다 가게 생겼습니다. 그런 경우를 위하여 제8조는 법정대리인이 특정한 '법률행위'가 아니라 '영업'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허락을 해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철수가 사업을 해도 좋다는 허락만 받으면, 그 사업에 딸린 법률행위들은 유효하게 성인처럼 할 수 있게 됩니다.


제8조제1항에서 말하는 '영업'은 상법상의 상업뿐 아니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독립적이고 계속적인 사업을 넓게 의미한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따라서 공업이나 농업도 포함이지요(지원림, 2013). 그런데 미성년자가 실제로 부모님의 동의를 받은 건지 아닌지 제3자는 알 길이 없겠지요? 그래서 '상법'에서는 아래와 같이 상업등기에다가 등기하도록 함으로써, 만천하에 그 사실을 알리도록 하고 있습니다(제3자 보호).

상법

제6조(미성년자의 영업과 등기) 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의 허락을 얻어 영업을 하는 때에는 등기를 하여야 한다.


이를 미성년자(상업)등기라고 하는데, 아래와 같은 서식을 작성하여 제출하여야 합니다. 아래에 자세히 보면 '법정대리인의 허락을 얻었음을 증명하는 서면'을 같이 첨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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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한민국 법원 인터넷등기소 - 등기신청양식


그런데 상업이 아닌 그 밖의 영업에서는 어떻게 할까요? 그때에는 상업등기에 의한 공시(널리 알리는 것) 제도를 활용할 수 없습니다. 상법상의 상업이 아니니까요. 그런 경우라면 나중에 미성년자의 법률행위가 문제 되어 소송이 걸렸을 때, 미성년자 측에서 자신이 적법한 허락을 받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서류건, 카톡 내용이건 무슨 수를 써서든요.


제1항에서 말하는 허락은 '특정한' 영업에 관한 허락입니다. 따라서 "아무 영업이나 해도 된다"라는 허락은 안됩니다. "컴퓨터 판매업이라는 영업은 해도 좋다"라고 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철수에게 컴퓨터 판매업의 영업 허락을 하는 순간, 철수는 컴퓨터 판매업이라는 영업에 관련된 법률행위에서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어지며, 철수의 컴퓨터 판매업 영업에 관한 아버지의 대리권도 소멸해 버립니다. 결국 적어도 '컴퓨터 판매업에 관한 한' 철수는 법적으로 성인으로 취급되는 것이지요.




자, 이제 제8조제2항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건 무슨 말일까요? 아버지는 철수에게 컴퓨터 판매업을 허락하기는 했지만, 영 내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제한을 둡니다. "너는 컴퓨터를 팔 수 있지만, 너무 어리니까 밤 9시 이후에는 팔지 마라." 철수도 알겠다고 합니다. 철수는 매일 밤 9시까지만 컴퓨터를 팝니다. 이처럼 법정대리인은 영업에 대하여 허락을 하되 그에 제한을 둘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철수가 사업 욕심이 생겨, 몰래 밤 9시 30분에 민수에게 컴퓨터를 팔아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알게 된 철수의 아버지가 컴퓨터를 판매한 행위를 취소할 수 있을까요? 안됩니다. 제8조제2항 단서에서는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라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학에서는 '선의'라는 말을 일상용어와는 좀 다르게 씁니다. 사람이 착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아니다가 아니라 '알았느냐, 몰랐냐'로 판단합니다. 알았으면 악의, 몰랐으면 선의가 되는 겁니다. 즉 이 상황에서는, "철수가 밤 9시 이후에는 컴퓨터를 팔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냐 몰랐느냐"가 관건이고, 민수가 이 사실을 몰랐다면 그는 '선의의 제3자'가 되는 겁니다.


‘대항’이라는 건 무슨 말일까요? 법률에서 굉장히 자주 쓰는 표현인데, 일상적으로는 생소한 말입니다. 법률에서 “대항하지 못한다”란, “다른 사람에게 그 효과를 주장하지 못한다”라는 의미입니다(법제처, 2018). 쉽게 말하면 상대방에 대하여 억울하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민수는 철수의 사정(철수가 밤 9시 이후로는 컴퓨터를 판매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었으므로, 철수의 아버지는 "나는 내 자식에게 밤 9시 이후로 컴퓨터 파는 걸 허락한 적 없어!"라고 민수에게 주장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민수는 유효하게 컴퓨터를 산 것이 됩니다.


지금까지 미성년자가 제한능력자임에도 불구하고 확정적으로 유효하게 할 수 있는 행위들을 공부해 보았습니다. 사실 그런 행위들은 몇 개 더 있습니다만, 조문이 너무 뒤에 있어서 여기서는 정리해서 나열하는 것으로만 보여 드리고 나중에 해당 조문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미성년자가 단독으로 유효하게 할 수 있는 법률행위의 종류
1. 권리만을 얻거나 의무만을 면하는 행위(제5조)
2. 처분을 허락받은 재산의 처분행위(제6조)
3. 영업의 허락을 받은 경우 그 영업에 관한 행위(제7조)
4. 대리행위(제117조)
5. 유언(제1062조)
6. 무한책임사원의 자격에서 한 행위(상법 제7조)
7. 근로계약의 체결 및 임금청구(근로기준법 제67조 및 제68조)


특히 근로계약의 경우에는 친권자 또는 후견인이 미성년자의 근로계약을 대리할 수는 없도록 되어 있으므로(민법상의 원칙에 대한 예외),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청소년 분들은 참고하세요. 근로기준법이 민법의 원칙에 대한 특례를 둔 것은, 친권남용의 가능성으로부터 임금수입으로 살아가야 할 미성년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사용자는 미성년자를 채용할 때에는 법정대리인과 근로계약을 체결하여서는 안 되고 직접 본인과 체결하여야 합니다. 이에 위반하면 그 계약은 무효가 되지요.

내일은 성년후견개시의 심판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법제처, 법제교육 기본교재, 2018, 48면.

지원림, 민법강의, 홍문사, 제11판, 2013, 7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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