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의 봄, 일요일 아침에 나는 교회에 가고 있었다. 작은 언덕을 내려가면 학교 담장을 따라 쭉 뻗은 길 왼편으로 자동차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었다. 나는 서 있는 차들 가까이에서 걸었다. 볕이 포근하고 개나리가 무성했다.
자동차 사이에서 누군가 불쑥 튀어나왔다. 놀랄 새도 없어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느닷없이 나타난 자는 앞을 가로막은 뒤 돈을 달라고 했고 나는 주머니에 있던 천 원을 얼른 내밀었다. 엄마가 일요일마다 챙겨주던 헌금이었다. 그는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돈을 주었는데도 가지 않고 기분 나쁘게 웃으며 날 내려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우악스럽게 내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놀라고 아파서 이번엔 아,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우와, 얘 가슴 있네~” 그자는 그렇게 말하며 낄낄대고는 서둘지도 않고 느긋하게 돌아서 걸어갔다. 그는 멀어지는데 나는 점점 더 겁이 나고 숨이 막혔다. 한참 동안 날카로운 것에 찔리기라고 한 것처럼 몸을 오므려 가슴을 감싸고 앉아 있었다.
그것은 모르는 자의 악질적인 범죄고 나에게는 지금도 멈칫할 정도의 공포스러운 기억이다. 나는 오래도록 ‘가슴 있네’라는 웃음 섞인 말을 기억했다. 막 가슴이 봉긋해져 엄마가 사다 주고 언니가 입는 걸 가르쳐 준 브래지어가 불편하고 어색하던 때였다. 엄마가 이제 나도 여자가 되는 거라고 말해서 쑥스러우면서도 자못 뿌듯했다. 그러나 여자가 되는 일은 또한 범죄의 대상이 되는 일이기도 하며 누군가는 내가 여자가 되는 것을 음흉하게 반기고 있는지도 모르는 끔찍한 일이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유독 가슴 발육이 빠른 편이었던 나는 중학교 때 체육 시간을 싫어했고 그중 달리기 수업을 가장 싫어했다. 운동장에 그려진 트랙을 따라 앉아 있는 아이들 사이로 뛰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큰 가슴은 더 문제였다. 뛰게 되면 가슴의 흔들림을 아이들이 볼 것 같았다. 그러면 내 가슴이 다른 애들보다 좀 더 크고 그래서 나는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될 것 같았다. 어쩐지 부끄러운 약점을 가진 것 같았다. 나는 양팔을 몸에 딱 붙이고 나무토막처럼 뛰었다. 모습도 웃기고 속도도 느렸다. 100미터에 22초가 넘어가자 체육 선생님은 내가 예쁜 척하느라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며 오리걸음을 시켰다.
나를 무섭게 하고 창피하게 하고 벌 받게 했던 가슴이 도리어 자랑스러워진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였다. 대학 시절에 술에 잔뜩 취한 후배가 누나는 가슴이 참 예쁜 것 같다며 한번 만져봐도 되냐고 물었을 때 나는 화를 냈다. 정신이 맑아진 후 그에게 사과를 받았고 나는 실수라고 생각하고 없던 일로 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불쾌감이 지나가자 나는 내 가슴이 예쁜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매력적인 여자가 되는 데에 유용할지 몰랐다. 한창 연애에 관심과 의욕을 보이던 나는 좋은 아이템 하나를 획득한 기분이었다.
커다란 가슴이 수치가 아니라 자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자 내 가슴과 몸매에 대한 무례한 이야기도 칭찬이나 관심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조금만 깊이 파이거나 달라붙는 옷을 입으면 선배들이 한 마디씩 하는 것도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다. 가끔은, 도대체 남자들이란 덧붙여진 살덩이에 불과하며 아이를 낳으면 그 애를 먹이려는 목적 외에는 쓸모도 없이 너무 오래 기능하지 못하는 신체 부위가 어째서 그토록 좋다는 건지 의아했다가, 대다수의 남성은 여성의 가슴에서 모성과 욕구를 느끼는 본능이 있다는 원초적인 이야기에 딱함과 우월감이 들다가, 그러한 이들의 호감을 사기에 유리한 점이 있다는 것에 만족스러워졌다가, 그걸 좋아라 하는 나 또한 다름없이 열등하게 느껴지고는 했다.
손가락과 발가락처럼 가슴도 내가 어쩌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자라나고 또다시 때가 되면 자신의 기능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보다 개인적으로 감각되는 부위이다. 저마다 가슴을, 몸의 맵시를 더해준다거나 이성에게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단지 ‘내 가슴이 나는 너무 마음에 들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반대로 너무 거추장스럽고 못마땅할 수도 있다. 아니면 가슴에 대해 도통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다. 모두 개인의 자신을 향한 견해이므로 어느 쪽도 가능하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내 몸에서 불거진 가슴에 대한 의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것은 범죄의 대상이 되어 끌어안고 주저앉아야 했던 것이었다가 놀림의 대상이었다가 부끄러운 대상이 되고 뒤이어 욕망과 성취의 대상이 되었다. 늘 대상이 되었다. 몸의 주체로서 나는 아무런 생각도 가지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고작 어떤 종류의 섭섭함, 안타까움 같은 것이었다.
두 사람의 마음이 마음을 관통하고 이끌 때, 아웃포커싱 된 시각으로 서로를 가장 선명하게 볼 때, 내 생각에 그때 우리는, 셔츠를 풀기 전까지는 눈을 보고 있었다. 움직이는 표정과 말을 따라잡고, 그 아래의 생각과 상상을 해석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언제나 연애의 절차 중 어느 지점에는 제안과 동의를 주고받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야 한다고 여겨) 지는 육체적 애정 행위가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이따금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마음으로 그 절차를 따랐다.
누군가 내 가슴에서 눈을 못 뗄 때, 나는 불안해져서 묻고는 했다. 나를 좋아하는 거야, 내 가슴을 좋아하는 거야? 그러면 그들은 모두 배운 듯 똑같이, 그러나 순간의 절박한 마음을 담아 오답을 당당하게 말했다. 네 가슴을 좋아하는 것도 너를 좋아하는 거지!
가슴이 곧 나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가슴과 엉덩이와 얼굴 말고 피부 안쪽에 한참 더 바닥 쪽에 보이지 않는 모양으로 존재하였다. 나는 내 가슴을 남자의 호감을 사는 도구로서 사용하고자 했고 그럴 수 있어서 기뻤지만, 정말로 우리의 연애가 가슴에서 출발하여 그 언저리에서 머물까 봐 겁이 났다. 그러나 그들은 내 마음에 드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을 위한 변명과 핑계는 내가 늘 마련해두었다. 어쨌거나 사랑한다는 말이니 괜찮아, 나는 사랑받고 싶어서 그들을 변호했다. 그러면서도 얼굴을 가슴에 파묻은 검은 머리를 바라볼 때마다 거기에는 내가 없는데,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에 나는 몸이 아니라 내 세계의 문을 열어두었으나 매번 몸으로 가는 문만 택한 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끝내 내가 와주었으면 하는 곳의 근처에도 오지 못했다.
가슴은 몇 년 후 마침내 태생적으로 부여된 일을 했다.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젖을 아기에게 먹일 때, 가슴은 또 한 번 도구이자 대상이 되었지만 그것은 최초의 기꺼운 일이었다. 아기는 본능에 충실할 때 아름다운 존재였고 내 젖을 열심히 빠는 아기는 홀리듯이 사랑스러웠다.
고작 육 개월 동안 모유를 만들어 낸 뒤 가슴은 이내 완전히 기력을 잃은 듯 찌그러지고 늘어졌다. 내 것은 유난히 더 흉물스러웠다. 그것은 마치 늙어서 죽은 것 같기도 했다. 거울을 볼 때마다 고개를 돌렸지만 분리할 수 없는 몸의 일부에 익숙해졌고,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 가슴을 더 이상 누구도 욕망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람 같은 건 못 피우겠군’ 나는 기쁜 농담처럼 그렇게 말했다.
sns에서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얇은 셔츠나 부드러운 면 티셔츠만을 입은 ‘노브라’ 여성들이 서슴없이 게시한 사진을 볼 때 나는 가슴이 아니라 그들을 들여다본다. 그들은 가뿐하고 자유로우며 지적으로 보인다. 마치 가슴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에게 가슴은 그들의 것으로 보인다. 개별적이지 않고 개인적인 것. 그러나 남의 속옷 착용 여부에 대해서 기어이 입을 대는 사람들, 청하지 않은 관여와 염려를 보태는 사람들이 있어서 완전히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기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나 또한 어쨌거나 그들을 보며 숨기지 않은 가슴에 대해 생각하니 마찬가지다. 가슴은 한 번도 아무것도 아닌 적이 없다. 열두 살 이후로 계속 서사와 비밀과 감정들을 빨아들인, 죄와 욕구와 기억을 담은 별개의 것이었다. 이제 의무를 다하고 회복 불가능의 상태로 망가져 더는 무엇의 대상도 될 만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자 나는 비로소 가슴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죽었다고 여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죽음은 해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