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즐겨보았고
종종 다시 보는 ‘무한상사’ 콩트에서
후배와 상사 눈치를 보는 최고령
만년 과장 나이가 사십 대 중반이었다.
삼십 대 초반엔 무심코 웃으며 보던 장면인데
지금은 그 과장 나이가 되어버려서
마냥 웃으며 봐지지는 않는다.
그때는 사십 중반은
정말로 나와 다른 인류라고 생각했다.
십 년이 이렇게 금방인데 사람 앞일도 모르고
사십 대는 남일이라 생각했다.
“요즘 어찌 지내요? “
라고 누가 물으면
“겨우 출퇴근만 하고 살아요.”라고 대답하지만,
실은 마음이 늘 분주하다.
마흔 초반부터 준비한 이런저런 자격증과
뒤늦게 다시 시작한 영어 공부,
경제 기초 공부와 (얼마 되진 않지만) 자금 운용 고민 등등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럼에도 겨우 직장만 다닌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렇다 할 결실이-중간 정도의 결과물이라도-
전혀 없기 때문이며, 계속 노력한다 해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직장을 계속 다닐까?
아니 다닐 수 있을까?’
라는 사라지지 않는 고민을
매일 들숨 날숨에 달고 지내는
사십 대 대부분 마음이 나처럼 분주하지 않을까?
노후 대비와 이직 준비 어디쯤 바둑알 놓듯
딱 놓을 수 없는 어중간한 진로 고민을 한다.
실은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해보고 싶은 맘이 간절하다.
생계와 꿈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하는
다음 일을 찾는다면 가장 좋지만
젊음과 패기를 지닌 이십 대에도
이루지 못한 것을 사십 대에 이를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에 피씩 자조 섞인 웃음이 나오곤 한다.
오십이 되면 이런 고민도
어쩌면 사라질지 모른다.
헌데 그런 생각을 하면 후련하기보다 슬퍼진다.
칠순 노인이 되어도 꿈에 대한 미련을
사치로 여기며 살고 싶지는 않기에.
그래서 ‘더 늦기 전에’라는 말을 죽기 전까지
붙잡아 보고 싶다.
살아 있다면 희망이 있으니까.
올해엔 무어라도 작게 하나는 이루려 결심해 본다.
'내 나이가 이렇게 많아졌나?'
라는 생각을 올 해는 좀 잊고 지내기.
'아직 설레는 일을 할 수 있는 나이'
라고 자주 나에게 말해주기.
올해 내 작은 목표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