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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하시는 선배선생님의 아우라

by 소망이

오늘 영어과 최고 고참 선배선생님의 정년퇴임식이 있었습니다.

츤데레 스타일이셔서 대화할 때 미소를 띠시기보다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시니컬한 농담을 던지시던 분이셨는데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미소로 계셨습니다.

말이 부드러워도 마음이 차가운 사람이 있고, 말이 차도 마음이 한없이 따뜻한 사람이 있더라고요.


엑셀을 이렇게 못하는데 어떻게 교사를 하냐는 소리도 들어봤고,

뭐 힘든 일을 했길래 입병이 났냐는 소리도 들었지만,

언제나 영어교사로서 수업에, 평가에 진심으로 열정과 최선을 다해 마지막 순간까지 바르게 서계셨던 선생님이셨어요.


어제 마지막 작별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갔는데 시험범위 진도 나가신 것을 표로 깔끔하게 정리해 보내주셨어요.

정말 많이 배웠고 감사했습니다 인사드렸더니 다음과 같이 답장이 왔습니다.


몸 잘 챙기고

릴랙스 하시고

이것저것 많이 도와줘서 감사했어요.


거의 선생님께 처음 받아보는 감사인사였습니다.


작년에 아프고 힘들었던 것, 평소 성격이 예민해 작은 일에도 소심해지는 저에게 자기 몸 먼저 잘 챙기고, 어차피 잘 흘러가게 되어 있으니 조금 더 릴랙스 하며 살아가라고 말씀해 주시는 그 말씀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마지막 교단을 내려가는 길에 제일 첫 제자부터 기수별로 많은 제자들이 아쉬워하고, 감사해하는 모습을 뵈며 정년퇴직은 정말 명예로운 일이구나, 영어교사로서 마음이 다른 길로 새지 않고 꿋꿋이 날마다의 수업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존귀한 일이구나라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30년을 교사로 근무하시고 정년퇴직하시는 선배 선생님께 저는 오늘 ‘미래를 미리 보고 소망하게 됨‘이라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다시 출근해 영어 수업을 하고 계실 것 같이 그렇게 하루하루 주어진 수업을 최선을 다하여하고, 만나는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관심으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선생님처럼 저도 저 16년 후 정년퇴직 날짜만을 바라보며 그 안을 힘들게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닌, 오늘 하루 제가 만나는 학생과 수업에 집중해 가며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러갔나 깜짝 놀라듯이 정년퇴임의 명예를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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