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 첫날 정신건강의학과가 아닌 한의원에 갔다.
진단서를 받으면서 3일 치 정도 약을 처방받았지만 크기도 크고 여러 개인데 심지어 색까지 주황색, 연두색 이렇게 화려한 약을 보니 먹을 수가 없었다. 두려웠다. 한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될 것 같기도 하고, 약의 부작용도 무서웠다. 우울증이 걸린 학생들에게는 약 먹으면 치료된다고 상담했으면서도 정작 나는 먹지를 못했다.
대신 엄청 느린 걸음으로 동네 한의원에 갔다. 20여분 정도밖에 안 걸었는데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벽에 기대앉아 있는 내 모습이 낯설었고 처량해 보였다. 카운터에 있는 간호사 선생님들도 걱정되는지 조금만 기다리면 바로 한의사 선생님 진료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워낙 환자가 많은 한의원이라 그래도 거의 1시간 기다린 후에 한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진맥을 짚은 후 한의사 선생님과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오셨어요?'
"제가 과도한 스트레스로 잠을 못 자서 맥박이 130 정도로 낮이고 밤이고 계속 뛰고, 정신건강의학과 가서 적응장애 판정을 받았어요. 그런데 병원 약은 못 먹겠다는 마음에 여기로 왔어요."
"정말 잘하셨어요. 병원 약은 중독이 돼서 안돼요. 한약 먹고 침치료 하면 나아요."
아~ 역시 한의원으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45만 원어치 한약을 지었고, 머리부터 발목까지 침을 맞았다. 자기 전에 먹는 불면환도 처방받았다. 병원약과는 다르게 중독성이 전혀 없고 금단현상이 없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침을 맞고 나니 맥박이 확실히 느려지고 숨쉬기가 편안해졌다.
"저 다시 괜찮아져서 학교로 복귀할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 걸릴까요?"
"3주면 됩니다. 당연히 괜찮아져요."
아~ 이제 한약 먹으면 매일매일 맥박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지고 힘이 나겠구나라는 확신이 생겼다. 매일매일 한약을 꼬박꼬박 잘 챙겨 먹었다. 자기 전에는 불면환을 물과 함께 삼켰다.
맥박이 점차 안정되고 잠도 잘 자니 살 것 같았다.
이렇게 금방 회복되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