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za
이전까지는 일을 하면서 도태되지 않으려 열심히 배우고 경쟁하며 살기 바빴던 내가 심신이 지칠 때로 지칠 때쯤 나도 한 번쯤은 경치 좋은 조용한 여행지에 가서 아무 걱정 없이 편하게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회초년생이다 보니 안정적인 상황도 아니었고 뭔가 계속 발전해서 어디 위치까지는 가야겠다는 강박 같은 게 있어서 매일매일이 힘들었다. 그땐 매일밤 내일이 오는 게 싫었다. 뭐라 하는 사람 하나 없는데 나 스스로를 어느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채찍질을 많이 해댔으니까. 그냥 마음이 늘 촉박했다. 심적 여유가 없었다. 언니는 공부를 오래 하고 있었고 그때의 난 결혼생각이 없었어서 더욱이 일을 놓아선 안된다는 생각을 지금보다 더 짙게 했었다. 그리고 빨리 나라도 자리를 잡아서 부모님이 이전과는 다르게 마음 편히 취미처럼 일하시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 당시에는 나 자신에게도 누구에게도 어디 하나 맘 편히 기댈 곳이 없어 참 힘들었다. 독립적인 집안 분위기 속에 자란 나는 누군가에게 기댄다는 것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학생도 아니고 이제 성인인데 그런다는 건 더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근데 시간이 지나 보니 조금은 기대도 보고 그렇게 살아도 됐을걸 왜 그렇게 꼿꼿하게 살았을까 싶기도 하다.
괜찮아 사랑이야 드라마 속에서 공효진의 대사 중에
난 있잖아 다시 태어나면 여행가가 될 거야
세계일주하는
마음대로 훨훨 어디든 가는
누구의 간섭도 없는 곳에서
누구를 걱정하지도 않고
오롯이 나 혼자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누구를 걱정하지도 않고 오롯이 나 혼자' 막연하게 그곳에 가서 편하게 쉬고 싶어서. 그 모습을 보니 뭔가 공감이 갔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가고 싶었을까? 오키나와를?
드라마를 본 후, 틈틈이 오키나와를 검색하게 되었고 그러다 우연히 배우 고현정 님이 다녀가셨다는 숙소를 보게 되는데 그게 바로 카이자(Kaiza)라는 곳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투박하고 소소해 보일 수 있는 숙소였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편안해 보이고 가보고 싶은 숙소였다. 난 그런 이 숙소가 참 마음에 들었다. 아침에 침대로 떨어지는 햇살이 따뜻하고 조용한 모닝콜이 되어 깨우줄 것만 같았고 작게 보이는 창문이 가끔씩 보는 '한국기행'이라는 프로그램만큼이나 무해하게 하루종일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늘 그렇게 상상만 해오다 어느 날 보니 내가 이곳에 진짜로 와있었다. 어쩌다 보니 정말로 첫 해외여행을 오키나와로, 그리고 첫 숙소를 이곳 카이자에서 묵게 된 것이다.
오키나와에서 다른 명소들보다도 이 숙소를 꼭 오고 싶었는데 내가 정말 오고 싶었던 곳에 와서 실제로 그 공간에 들어와 있으니 기분이 참 묘했다. 고민거리들과 내가 분리되어 어느 외딴섬에 떨어진 기분이랄까? 처음으로 느껴보는 그 느낌이 나쁘지 않게 묘한 해방감도 주는 것 같았다. 이때 난 깨달았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는구나!'라고
숙소 내부는 창이 총 3개가 있는데 창이 마치 액자처럼 절묘한 위치에 있다. 특히 침대에 누워서 천장 쪽 모서리를 보면 그쪽에 창이 길게 있는데, 그 창이 너무 탐났다. 나중에 주택을 짓게 되면 저런 창 하나를 내고 싶다는 생각을 이곳에서 처음 했던 것 같다. 그 창 너머로 푸른 나무가 보이는 게 너무 좋았다. 침대에 누워서 저 나무만 하루종일 보고 있으라고 해도 행복할 것 같았다. 몰디브나 하와이 같은 고급 휴양지의 리조트는 아니었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어느 곳보다도 근사한 휴양지 같았던 곳이 바로 이곳 카이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