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렬횡대

엔화 동전 처리하기

by 지애롭게

오키나와 여행을 할 땐 늘 북부로 쭉 올라가서 천천히 내려오며 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달리는 고속도로 위를 지나며 보이는 팻말 속 일본어는 하나도 제대로 읽을 줄도 모르면서 주변의 집들과 나무, 풍경들이 익숙한 게 웃기다며 둘이 키득거리며 북부로 올라갔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나가야 하는 톨게이트가 나올 때쯤 남편은 나에게 미션을 하나 준다. 제출할 잔돈을 미리 준비해 달라고 말이다. 우리 부부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암묵적으로 서로 잘하는 것에 대해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기가 막히게 분업화가 이루어졌다. 그중 하나가 여행에서의 돈관리인데, 직업적 특성도 그렇고 성격적으로 나보다 더 계획성 성격이 강한 남편이 늘 여행에서 돈관리를 도맡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실상 나는 해외에서 그 나라 돈을 만져 볼일이 거의 없다. 정말 한 번도 없던 적도 많아서 어떻게 생긴 지도 못 본 적도 많았다. 성격상 관심 없는 건 전혀 불편함 없이 살아가는 나라서 이게 그동안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사겠다고 남편에게 말하면 남편이 다 알아서 지불해 주는 시스템이었어서 나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전혀 불편함 없이 여행을 해오다 어느 날, 모리셔스에서 사건이 터졌지. 남편이 화장실에 간 사이 나 혼자서 과자를 하나 사는데 돈을 제대로 낸 건지.. 아닌지 도통 찜찜했던 날이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얼마를 낸 것 같다는 둥 잘못 낸 것 같다는 둥 하면서 나는 나 스스로를 자책을 했고 여행을 이렇게 다니는데 해외에서 돈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 거다. 그 뒤로 가끔씩 가볍게 그 나라 돈을 계산하는 일이나 내는 일을 하곤 하는데, 마치 어린아이들에게 지폐를 하나 던져주고 심부름을 시켜 돈개념을 심어주는 그런 비슷한 행위말이다. 그 행위 중 하나가 나에게 오키나와 톨게이트비를 미리 준비하는 일이었다.


사실 톨게이트비가 얼마인지 톨게이트 앞에 가야 전광판에 떠서 알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빨리 내려고 미리 동전들을 다 정리해 두는 거다. 10엔, 100엔을 가지런하게 일렬횡대로 손바닥 위에 줄을 세우는데 그 이유가 또 있다. 성격 급한 남편은 늘 계산할 때 지폐를 많이 내다보니 엔화동전이 늘 넘쳐나게 되는데 나는 그걸 늘 해결하려고 어디를 가도 동전으로 다 계산하려는 심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톨게이트에서도 그 심리가 발동되는 것인데, 사실 지폐를 내면 정말 편한 것을 그 수많은 동전들을 얼마가 나올지도 모를 상황을 대비해 줄지어 준비한다는 것은... 할 때마다 느끼지만 참으로 불필요한 행동이다. 그렇지만 어김없이 이날도 했지. 잘 정리해 둔 동전들을 가지고 톨게이트 앞에 도착해서 직원분에게 빠르게 제출하면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다니까!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