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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 오빠

좋은 어른

by 햇살나무 여운



어릴 적 엄마가 곁에 없을 때, 아버지의 장사를 도우러 사촌 오빠가 한동안 우리 집에 와서 지낸 적이 있었다. 언니랑 오빠는 공부를 하러 도시로 떠나고 없었을 때였고, 큰고모의 장남이었던 사촌 오빠는 정확히 몇 살 차이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 삼 남매보다 나이가 한참 더 많았다. 운전을 못 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새벽부터 일어나 트럭에 물건을 싣고 5일장을 다니며 일을 도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제대로 월급이나 받았을까 모르겠다.


올바르게 서지 못하는 어른은 항상 주변에 민폐를 끼친다. 가족과 친인척이 끊임없이 많은 부분을 감당하고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 완전히 버리지 않는 한.

할머니만큼 나이가 많았던 큰고모는 내가 혼자 힘으로 버스로 다닐 수 있을 만큼의 거리에 살고 계셨고, 나는 일찍부터 방학만 되면 큰고모 댁에 가서 지냈다. 그 당시에 아직 냇가에서 빨래가 가능했을 만큼 시골이었다. 집 주변으로 논밭이며 감나무와 농작물이 가득했고, 소를 여러 마리 키우셨다. 송아지의 눈망울과 속눈썹이 얼마나 이쁜지 나도 이다음에 소를 키워야지 했었던 기억이 난다. 8남매였던가? 사촌 언니 오빠들이 많았다.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큰고모는 우리 아버지와 친모가 다르셨다. 그 옛날 시골에서는 내가 모르는 할머니도 있고, 내가 모르는 삼촌이나 고모들도 있었다. 나의 친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재취로 들어오셔서 나의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고모 두 분을 얻으셨다.

큰고모는 외모나 성향도 많이 다르셨고 겉보기에는 투박하셨지만, 닮지 않은 게 다행일 만큼 그래도 가족들을 가장 많이 챙기고 어른다우셨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사촌 언니 오빠들도 착하고 다정했다. 어린 나를 데리고 뒷산에도 놀러 가고 나무 위에 오두막도 지어주고, 오빠들이 돌아가며 목말도 태워주곤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우리 집보다 그곳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좋았다.

큰고모는 가끔 우리 집에 들러 아버지와 우리 가족을 돌봐주려고 하셨지만, 아버지는 이유도 없이 큰고모를 멸시하며 함부로 대했다. 욕을 하거나 물을 뿌리며 내쫓기도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런 곳에 당신의 장남을 맡겨 두시다니. 그때 사촌 오빠는 너무 착해서 꽤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꾹 참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건넛방에 사촌 오빠가 있다는 사실이 무척 안심되었다. 크게 뭔가를 해주지는 않았어도 나를 챙겨주고 돌봐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시간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먼저 거쳐갔던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 집에서는, 그 밭에서는 다른 종자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일찍 알아버렸다.

그 사촌 오빠는 어린 나의 세계 안에서 가장 착했고, 나쁜 마음을 품지 않은 ‘유일한’ 좋은 남자 어른이었다. 시간이 한참 흘러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도 끝까지 참 선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일이 잘 풀리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부디 잘 살아서 착하고 성실하게 정당한 방법으로 살아도 괜찮다는 증거가 되어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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