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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Dec 28. 2023

원상복구

멀고도 험난한 자영업자의 길

  

연휴이자 일요일이었던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일을 했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도 일을 했다. 오후에 송년회 모임이 잡혀 있었지만, 오죽 급하면 연락을 했을까 싶어서 남편과 함께 서둘러서 해결해 주고 약속 장소로 넘어가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방문해 보니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꽤나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일이었고, 전문 장비도 동원해야 했다. 역시나 변수가 생겨서 작업이 길어졌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소통을 하다 보면 추가로 다른 것도 더 봐달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서로 기분 좋게 산타의 마음으로, 산타의 선물 같은 가격으로 마무리까지 깔끔하고 완벽하게 해내고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네고 흩어진 장비들을 챙겨 나왔다.      


그런데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기분이 울적해졌다. 크리스마스에 (일이 있는 건 물론 감사한 일이지만) 그래도 이게 뭐야. 부부가 같이 일을 하면서 안 싸운다면 거짓말이다. 작업을 보조해주다 보면 당연히 핀잔을 듣는다. 이거 말고 저거! 그렇게 말고 이렇게요! 척하면 척이지, 그걸 몰라요! 점점 더 잔소리가 많아진다. 존댓말로 곱게 하는 잔소리에 뭐라 대꾸는 못하고 심통이 쌓여간다. 못한다고 구박하는 게 아니라 더 잘 배워두라고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한다. 싸움까지는 아니지만 몹시 서운하다. 아니, 이 정도로 이만큼 잘 보조해 주는 건 뭐 당연한 거야? 칭찬을 해 줘도 모자랄 판에 말이야. 게다가 휴일도 없이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일을 시킬 거면 추가수당을 줘도 시원찮을 판에 센스 없다고 타박이나 하고 말이야. 벌써 월말인데 월급은 언제 줄 건데? 아무리 ‘내 꺼도 내 꺼, 니 꺼도 내 꺼!’라고는 하지만 통장에 직접 꽂아 줘야지. 속물이래도 할 수 없다. 꿀꿀할 때는 금융치료가 최고다.      

    



새롭게 구한 거점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가상의 원을 그려본다. 주변 대단지 아파트들로 전체가 꽉 찬다. 상가가 큰 도로 바로 앞에 위치해서 접근성이 좋고, 주차도 까다롭지 않다. 1층에는 편의점이 새로 입점공사를 하고 있고, 무인카페도 있다. 큰길 건너에는 중학교가 있고, 같은 단지 내 후문도 가까워서 인근 아파트로의 접근도 편리해 보였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입지 아닌가.    


한 달 가까이 여유를 두고 계약서를 쓰긴 했지만, 아직 기존 임차인이 짐을 빼지 않은 상태이고 통으로 쓰던 세 칸을 다시 나눠서 원상복구를 해야 하는 공사가 남아 있었다. 천정 조명이나 가벽도 워낙 오래돼서 손 볼 곳이 많았고, 세 곳의 전기를 끌어다 하나로 합쳐 놓아서 분전반을 다시 분리하는 공사도 꽤 복잡해 보였다. 생각보다 갈 길이 멀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다. 원상복구 공사를 알아보던 건물주가 전기공사까지 포함하니 예상보다 너무 높은 비용에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우리가 집수리를 한다고 하니 혹시 공사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우리는 소소한 집수리를 위주로 하고 덩치가 큰 건은 가능한 한 맡지 않으려고 했다. 요즘 가장 무서운 것이 인건비라서 당일에 끝내기 어렵거나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작업은 자칫 잘못하면 배보다 배꼽이 커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건물주는 가능하다면 견적을 뽑아달라고 요청해 왔고, 우리 역시 당장 보증금도 마련해야 하고 다른 곳도 아닌 우리가 들어가서 직접 사용할 공간을 공사하는 셈이니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기로 했다.

      

원상복구는 주로 철거 작업이다. 인테리어 흔적을 모두 지우고 기본만 남겨 처음 순백의 도화지 상태로 공간을 되돌려 놓는 것까지라고 할 수 있다. 철거 후 어마어마한 폐기물 처리가 가장 큰 관건이다. 게다가 전기공사는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의 손을 빌려야 한다. 다행히 남편은 동료들과의 협업을 통해 경험이 있기도 했고, 믿고 부탁할 전기 기술자도 있었다. 공부 삼아서 턴키(Turn-Key)로 작업을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우리는 이번 공사를 맡기로 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더니 어쩌다 우리는 보증금의 일부를 정말 몸으로 때우게 된 셈이다. 자본금이 넉넉했다면 처음부터 이런 곳을 구할 일도,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이런 사서 하는 고생을 할 일은 더더욱 없었겠지만 언젠가 이 또한 삶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좀 더 고생스럽기야 하겠지만 가게를 얻음과 동시에 일도 얻었으니 고마운 일이고 초심자의 행운으로서 좋은 신호라고 믿고 싶다. 당장에는 이렇게 글감이 되고 있지 않은가?

  

아직 구체적인 조율도 남아 있고 갈 길이 쉽지만은 않아 보이지만, 그래서 왠지 재미있을 것 같다. 이걸 또 한다고? 고생길이 훤한데 재미있다니 나도 참 큰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멀고도 험난한 자영업자의 길......



 * 턴키 Turn-Key 작업 : 프로젝트 자체를 한 업체에 통으로 위임하여 맡기는 것. 구매자가 돈만 주고 납품을 받으면 열쇠만 돌려서 바로 사용하는 것에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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