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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Dec 25. 2023

전환기의 끝

자영업자의 발아기


찾았다, 드디어!

우리 사무실을? 아니, 창고를!     


우리는 현재 우리의 상황, 주제와 분수를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부부가 나란히 꼬박 1년을 놀았다. 위기는 기회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주어진 이 시간을 다시없을 전환의 기회로 삼기로 했다.      


한동안은 실업급여로 살았고, 여름부터는 남아있는 저축을 까먹으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부양하고 있는 가족에게 ‘사건’이 생겨 그걸 해결하느라 빚까지 내었다.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우리는 재투자를 해서 이런저런 자격증도 취득하며 다음을 준비했다. 남편은 지게차로 드리프트까지 가능한 실력에 굴삭기운전기능사, 택시 운전사, 화물운송종사자 자격증까지 섭렵했다. 나는 직장을 다니며 들었던 이론을 마치고 더 늦기 전에 미뤄뒀던 실습을 거쳐 보육교사 2급 자격증을 따냈다. 그리고 부부가 나란히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따고 치매 전문교육까지 이수해 놓았다.      


반년 만에 이게 가능하냐고? 어찌하다 보니 그리 되었다. 우리가 도전을 좋아하고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남편은 몰라도 나는 아니다. 오히려 나는 변화보다는 안정을 더 좋아한다. 수입이 널뛰기하는 개인사업이나 프리랜서보다 크지는 않더라도 벽돌처럼 균일하고 규칙적인 수입이 들어오는 월급쟁이로 사는 것이 더 익숙했다. 창업은 나와는 먼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년의 위기가 조금 일찍 찾아왔고, 우리가 처한 환경이 너무나 변화무쌍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나아가는 길밖에는 물러설 곳이 없고 그만큼 절박해졌다. 이 모든 건 비빌 언덕이 전혀 없는 우리의 빈약한 노후 대비용이다.      


여름을 지나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해서 글을 썼고, 남편은 집수리를 창업했다. 그리고 또 그런 남편을 압박해서 함께 글을 써서 나란히 부부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이다. 백수가 과로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는 놀지 않았다. 놀 수 없었다. 사실상 ‘공치는 날’은 없는 셈이다. 이것이 우리의 2023년 올 한 해 진정한 연말 결산이다. 이것으로 우리의 전환기는 마침표를 찍는다. 마지막 후반부 자영업자로서의 발아기를 무사히 거쳐 이제는 ‘아주 심기’를 할 시기이다. 제2의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 참이다.      

 


   

자본금이 마이너스인 지금의 여건에서 우리가 찾는 건 번듯한 가게라기보다는 최소한의 창고 수준이다. 집 주변을 중심으로 인근 상가 임대를 계속 검색했다. ‘최저가’ 순으로 조건을 설정해 놓고서. 집 근처 부동산에 문의도 해보았다. 몇 곳을 보긴 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거나 층수가 너무 높았다. 점차 마음을 접고 또 접고 접다 못해 거의 완전히 비울 때쯤 우연히 하나가 눈에 띄었다. 계속 보다 보니 갓 올라온 매물을 일찍 보게 된 것이다.      


우선은 놀랍도록 저렴했다. 너무 저렴해서 의심이 갈 정도로. 걸어서 20분 정도로 거리도 가까웠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곧바로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1200세대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 상가에 속해 있었다. 임차인이 상가 세 칸을 통으로 쓰다가 계약기간보다 조금 일찍 나가게 되면서 다시 세 칸을 쪼개서 임대를 내어놓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 칸이라고 해도 그 가격에 그 정도면 생각보다 넓었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은 깨끗했고 건물주는 대화가 통하고 합리적이었다. 우리는 마침내 계약서를 쓰기로 했다. 이곳이 저렴한 진짜 이유는 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지하 1층이었다. 다행히 ‘출장 수리 중’ 일 때가 많은 집수리 업종의 특성상 예쁜 가게를 광고할 일도 없고 자리를 지키고 앉아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니 가능한 부분이기도 했다.      


괜찮아, 가깝고 싸고 넓잖아. 지하에 있지만.

괜찮아, 큰 아파트 상가 입주잖아. 지하면 어때.

괜찮아, 외풍도 없고 아늑하네. 지하에 있어서.

괜찮아, 안에서 뭘 하든 방해받지 않고 좋겠어. 지하에 있으니까.     


창고든 차고든 지하든 또 누가 알겠는가? 그곳이 창작의 공간이 되고, 창의성의 곳간이 될지도. 수많은 위대한 역사는 창고에서, 지하실에서 보이지 않게 이루어지지 않던가.      


인프제인 나는 개방된 넓은 공간보다 구석진 작은 공간을 좋아한다. 그리고 여전히 다락방의 로망을 품고 있다. 게다가 셀프 인테리어도 무척 좋아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몸으로 때울 준비가 되어 있다. 얼마든지!


“페인트칠은 내가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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