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접어들면서 새롭게 뽑힌 팀원도 있고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팀원도 있다. 옆 사무실 다른 팀으로 옮겨간 이도 있어서 팀과 팀 사이에 로테이션 근무를 한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남자 직원이 뽑힌 팀도 있어서 사회복무요원이 드디어 청일점에서 해방된 사실도 관찰을 통해 발견했다. 다들 무사히 빠르게 착착착 적응하는 듯 보인다. 긴 겨울방학을 끝내고 새학기를 시작하는 리듬에 발맞추듯 1, 2월의 갈무리와 준비기간을 지나 새로운 행진을 시작하는 3월답게 활기참도 느껴진다.
여기저기 자리 변동도 많았는데, 내 바로 옆자리에는 아이돌봄지원팀으로 새내기 막내 선생님이 찾아왔다. 98년생이란다. 우와! 난 98학번인데. 내 눈엔 애기(?) 같이 다 어여쁘고 챙겨주고 싶다.
"돌봄이 백숙을 이기네요."
새로운 팀원을 맞이하는 행사로 점심에 미리 식당까지 예약해서 백숙으로 거하게 몸보신을 하고 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두 시간도 채 안 되어 언제 뭘 먹기라도 했었냐는 듯이 카페인과 당을 급속충전해야 할 만큼 돌봄 업무의 쉼 없이 고된 일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웃픈 하소연이 들려온다.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돌봄은 정말 모든 걸 이기고도 남는다. 그들은 직장에서도 퇴근 후에도 멈출 수 없다. 돌봄이 그칠 일이 없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듦을 짜증이나 투덜거림이 아닌 유머로 승화시키는 그들의 내공과 여유가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제 식구들을 서로서로 정말 살뜰히 챙긴다. 그 다정함이 또한 돌봄 업무의 고됨을 이긴다는 걸 스스로들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덕분에 새내기 막내 또한 예쁨과 보살핌을 받으며 금세 잘 적응하고 제 역할을 꾸준히 해내는 모습이다.
솔직히 가끔은 팀원들 간의 그 챙김이 부럽기도 하다. 이곳에서 나는 공유 와이파이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까? 누구의 것도 아닌 모두의 것! 딱히 ‘우리팀’이라고 부르며 단톡방에 속하거나 연락처를 주고받을 일도 없고, 그들처럼 팀원들과 점심을 먹으러 나가거나 커피를 함께 배달시켜 먹을 일도 없다. - 나는 하는 것 없이 단톡방에 속해 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소모되는 성향이어서 그닥 반갑지는 않다. 커피나 간식 말고도 많은 것들이 공유될 테니까. 그리고 커피는 (물론 사무실에 있기도 하지만) 사서 마시지 않고 도시락과 함께 텀블러에 싸 와서 마신다. 교통비와 식비와 커피값까지 따지기 시작하면 이 일 오래 못 한다. - 그리고 때로는 누군가에게는 그냥 나는 이름 없는 보조쌤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름 소속은 기획운영팀이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나는 누가 뭐래도 우리 팀 쌤들이 제일 좋다. 정말 좋다.
그나저나 “우리 막내!”라고 불러주며 수시로 저렇게 세심하고 친절하게 일을 가르쳐주는 선배의 모습을 만나 본 적도 없다. 대신에 나도 그렇게 가르쳐 줄 자신은 있는데. - 나의 전생은 도대체 어느 지경이었길래! 아주 가끔 상상해보기도 한다. 20년 전으로 돌아가 첫 단추를 제대로 다시 잘 끼워보는 거다. 그러다 곧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싶어 얼른 접는다. 케케묵은 헌 옷은 얼른 수거함으로 보내버리고 지금 현재 이렇게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 되지. 이제 그 정도 지혜로움은 터득했으니. 나는 다시 한번 지금 이곳에서의 목적을 분명히 상기시킨다. 나의 잔존재능을 활용하고 유지하며 자기효능감을 회복한다. -
“서로 마음 다치지 않게!”
어느 날에는 옆자리에서 이 말이 또렷이 들려온다.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마음'이라는 단어를 듣는 일 자체가 생경했다. 새내기 막내에게 일을 가르쳐주는 베테랑 선생님은 처음에 원래 내 바로 옆자리에 있던 분으로 나 역시도 가끔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도 했고 틈틈이 도움과 챙김을 받았었다. 사회복지 업무라는 것이 이쪽과 저쪽을 연결시켜 주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서로 잘 맞아서 단번에 매칭이 성공하면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지만, 비록 일이 성사되지는 않더라도 양쪽 모두에게 혹시라도 마음 상하지 않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세는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해도 어려운데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헤아려 짚어줄 수 있으려면 얼마나 섬세해야 할까. 그런 명확한 직업의식과 책임감,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는 것도 그리고 그 마인드를 후배에게 전수하고 이끌어준다는 것도 참 바람직하고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물론 수시로 모니터링과 평가를 의식해야 하는 영역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지치지 않고 그 친절과 배려가 오래가려면 자신 안에서 우러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복지는 친절은 기본이고 친근해야 한다. 쉽고 가깝게 느껴져야 한다. 자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마음을 데리고 출근해도 되는 직장도 있다는 걸 나는 이곳에서 경험하고 있다. 뒤늦게 천천히.
- 아이가 없어 이쪽으로 문외한이었던 나는 이곳에 와서 일을 하면서 <아이돌봄서비스>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우리 센터에 등록된 아이돌보미 선생님이 3백 명 가까이 되고 당연히 모두 여성이다. 보육교사, 초중등 교사 자격증이 있거나 의료인 자격증이 있으면 가능하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은 제외된다. 그 외에는 필수교육을 수료해야 하며 정기적으로 보수교육도 받는다. 대부분이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많으신 5, 60대 훌쩍 넘은 여사님들이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부모와 원하는 요일과 시간대에 맞는 아이돌보미 선생님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이 사회복지사의 몫이다. 전화통화로만 소통하며 서로의 니즈와 성향을 잘 파악하고 배려하는 센스가 요구되는 것으로 보인다. 건강 때문에 혹은 자신의 손자손녀를 돌봐야 해서 한 분이라도 그만둘 일이 생기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어떻게든 계속 유지하실 수는 없는지 붙들고 설득해야 할 만큼 돌봄에는 늘 인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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