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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Apr 20. 2024

휠체어에게 서점의 문턱은?

손님이 알려준 시선과 눈높이


"베르나르 베르베르 새로 나온 책 뭐 있나요?"


아직 조금 한가한 평일 오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베르나르의 엄청난 팬이시구나 첫마디에서 느껴졌다. 저는 <타나토노트>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리고 전화 목소리에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더 알아챌 수 있었다. 아마도 그 손님은 뇌성마비 장애가 있으신 듯했다. 그분의 말을 좀 더 명확하게 잘 알아들으려면 집중력도 조금 더 필요했다. 그러나 발음 이외에는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는 한쪽 귀에 수화기를 댄 채로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씀드린 후 빛의 속도로 알라딘 홈페이지에서 베르나르의 책을 최신순으로 검색했다. 그와 동시에 서점의 입출고를 한 번 더 확인한 후 <제3인류>와 <신>이 인기가 많다고 알려드렸다. <개미>는 이미 읽으셨겠지? 베르나르는 이름 있는 작가답게 외국소설 서가에 자신만의 자리를 명확하게 차지하고 있었고 최근 책도 베스트 서가 위에 수시로 채워지고 있었다.


"이번 주말에 들를게요."


통화를 마친 후 나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멈춰 있었다. 처음이었다. 그 전화를 받기 전까지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장애가 있으신 분도 어쩌면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서점에 오고 싶은 마음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고 당연한 건데. 본 적도 없고 떠올린 적도 없었다니 이토록 단편적인 나 자신에게 새삼 놀랍도록 실망스러웠다.


나는 얼른 다시 정신을 차린 후 그분이 우리 서점까지 찾아 올 동선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다행히 주차장에서 서점까지는 엘리베이터로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솔직히 보통의 우리들 같으면 그냥 오고 싶을 때 아무 때나 들르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굳이 전화로 한 번 묻고 주말에 들르겠다고 미리 알려주신 건 오히려 우리들에 대한 그분의 배려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저나 주말에 나는 근무를 안 하는데 어떡하지? 일단 다른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미리 알려 두었다. 베르나르 팬이시라고 하니 아주 가끔 오시는 손님이라고 알고 있는 직원이 있었다.


손님은 무사히 잘 다녀 가셨을까? 서가 여기저기 충분히 누비시며 책을 즐기다 가셨을까?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그 전화를 받은 후 나는 늘 보아오던 서가가 이전과는 달리 보였다. 가장 우려되는 건 통로의 폭과 서가의 높이였다. 휠체어가 지나다니기에 통로는 넉넉한가? 벽서가는 역시나 너무나 높구나. 휠체어에 앉은 채로는 평대 위도 겨우 보일만큼 그렇게 낮은 높이는 아니었다. 도서를 검색할 수 있는 컴퓨터 역시 선 자세로만 가능해서 그날따라 유난히 높아 보였다. 그분 덕분에 비로소 나는 나의 부족한 시선과 눈높이를 겨우 한 뼘 더 확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 서로에게 모두.  


그 후에도 휠체어를 타신 여성 손님을 뵌 적이 있다. 그분은 주로 베스트 평대와 예술 디자인 서가를 중심으로 둘러보고 계셨다. 나는 책을 꽂고 정리하는 듯 자연스럽게 그분 곁으로 다가가 혹시 특별히 찾으시는 책이 있으면 편하게 말씀해 달라고 가볍게 넌지시 한 마디를 건넸다. 돕고 싶은 마음이 넘친다고 무작정 다가가서 돕는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또한 일방적인 무례함이 수도 있다. 먼저 도움이 필요한지를 묻고, 도움을 요청해 오는 경우에만 다가가서 돕는 것이 배려라했다. 보자기처럼 펄럭이는 나의 이 오지랖을 단속하기가 이토록 힘들다.


그분께서는 내게 혹시 민화와 관련된 책이 있으면 좀 찾아줄 수 있느냐고 부탁하셨다.  아, 그림을 그리시나 보다. 그래서 예술 디자인 서가 주변을 서성거리셨구나. 그런데 나는 그분의 부탁이 왜 기쁘지? 우선 그분께 테이블 한쪽에 자리를 잡으실 수 있도록 안내해 드린 후 몇 권을 찾아서 가져다 드렸다. 최근에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민화를 많이 배운다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민화와 관련된 책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휠체어를 타든 안 타든 우리는 모두 동등하게 서점에 들러 여기저기 서가를 누비며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고 좋은 책을 발견하는 재미를 충분히 맛보고 싶다. 서점에 다니고픈 그 마음은 같아도 그 문턱의 높이까지 모두에게 같지는 않다는 현실을 그만큼 보기 드물고 만나기 어려운 손님들을 통해서 또 배웠다.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결코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다.


서점에서 볼 수 있는 손님들 중에는 휠체어보다는 유모차와 킥보드를 끌고 오는 손님, 그리고 심지어 카트에 강아지를 태운 손님이 더 많았다. 킥보드는 안전을 위해 서점 입구에 주차해 주세요, 어린이 손님.


베르나르 베르베르 <타나토노트>  / 책표지 출처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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