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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Apr 27. 2024

서점 내 수공업

도서관 바코드의 비밀

서점 내에 아무도 모르는 공장이 하나 있다. 가내수공업이 아닌 서점 내 수공업 공장이다. 일명 마크팀! VIP를 경호하는 그런 마크는 아니고, 책을 마크하긴 한다. 하긴, 우리에겐 책이 VIP지. 아, VIB라고 써야 하는구나.


사전을 검색해 보니 MARC(Machine Readable Cataloging)라고 나온다. 기록학용어사전에 포함된다.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색다른 신세계를 만났다. 물론, 앞으로도 여전히 몰라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은 없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책을 자주 빌려 읽는 이들에게는 작은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크 작업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숫자가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지고 싶어 하는 13자리의 주책등록번호! 우리가 로또보다도 더 간절히 바라는 바로 그 꿈의 숫자가 ISBN(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 국제 표준 도서 번호이다. 책 뒷면에 바코드와 나란히 적혀 그냥 리더기로 찍으면 되니 자세히 볼 일도 외울 일도 없겠지만, 국립중앙도서관에 책적(冊籍)을 남기는 그날까지 우리는 일단 계속 쓰기로 합니다. 투고! To-go! 못 먹어도 고!  




서점의 모든 업무는 이 ISBN 바코드로 이루어진다. 바코드 개발하신 분께 새삼 감사를 드리고 싶다. 바코드 리더기가 없던 이전에는 어떻게 일했을까? 나 스무 살 적에 편의점이 되기 전 동네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실제로 가격을 외워가면서 일했다. 물론 라벨기로 가격을 찍어 붙이기도 했지만, 특히 냉장고에 들어가는 술과 음료 등 소비자 가격이 적히지 않은 모든 상품은 암기영역이었다. 여전히 남아있는 암기영역은 아마도 빵집이 아닐까? 바코드 없는 빵의 모양과 이름을 다 외워야 하니까.


기술이 꽤 발달해서 명세서에 찍힌 바코드만 읽어도 그 상자 하나에 든 책이 다 업로드되어 입고업무가 제법 수월해졌다. 한 상자 당 보통 스무 권 안팎인데 책을 일일이 찍지 않아도 된다. 그 상자가 매일 최소 한 곳에서만 열 상자가 넘게 들어온다. 물론 이 또한 극히 일부분이고, 대부분이 여전히 밴딩 끈을 자르고 박스를 뜯고 사람 손으로 한 권 한 권 목록을 확인하며 작업해야 하는 양이 더 많다.  


다행인 건 외우지 않아도 되고 책을 전혀 몰라도 된다는 점이다. 편의점에 물건을 살 때도 그냥 바코드만 찍으면 되듯이 서점에서 책을 살 때도 역시 바코드만 찍으면 된다. 아무리 오래 일해도 관심이 없으면 어떤 책인지 제목을 볼 일도 금액을 외울 일도 없다. 그저 기계처럼 반사적으로 계산만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나랑 같은 작가를 좋아하고 내가 샀던 같은 책을 사는 손님을 만나면 막 반가워서 한 마디라도 더 걸고 싶지 않나? 나만 그런가?


우리가 흔히 부르는 일반 대중도서, 즉 단행본의 대부분 매출은 도서관이 차지하고 있다. 서점에서 새 책을 바로 빌리고 그 도서들을 도서관이 구매해 주는 희망도서바로대출 서비스를 포함하여 학교 도서관이나 일반 공공 도서관, 작은 도서관들도 서점을 통해 견적을 요청하고, 몇 백 권의 도서목록에 기본편목작업이라고 부르는 마크(MARC) 작업이 추가되어 최종 납품된다. 서점의 외부 영업과 납품의 세계이다. 당신이 낸 세금으로 도서관이 서점에서 책을 산다. 당신이 책을 읽지 않아도 덕분에 다른 사람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을 수 있으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종이책 수호자가 된 셈이다. 이 사실을 알았으니 이참에 납세자의 권리를 톡톡히 누려보는 건 어떨까?


이 마크 작업에는 컴퓨터 전산화 등록 작업과 함께 우리가 흔히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찍히는 바로 그 바코드 라벨 작업까지 포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외주작업을 많이 맡긴다. 도서관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책등에 붙은 그 분류번호와 저자기호, 책 앞면에 붙은 등록번호와 바코드 스티커 작업이 모두 하나하나 사람 손으로 이루어진다. 살짝 깊이 들어가서 MARC 프로그램 전산 작업을 한 번 살펴볼까? 책에 관련된 데이터를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는 형식으로 변환시켜 일정한 태그에 정확한 정보가 배열되도록 하는 도서목록 코딩 작업이다. 그러니까 스티커를 가지런히 예쁘게 붙이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도서관 전산에 책 정보가 정확하게 등록될 수 있도록 하는 MARC 프로그램 작업이 메인인 것이다. 여기서도 역시 ISBN 바코드가 한몫을 제대로 한다. 한 권 한 권 바코드를 읽으면 기본 정보는 모두 불러올 수 있다. 이 정보를 서지(書誌) 정보라고 한다. 사람이 읽는 문헌 목록 정보를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는 데이터 형태로 변환시켜 주는 작업인 셈이다. 진짜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 기본 정보 작업 이후에 각 학교나 도서관별로 원하는 스타일과 규칙을 지켜서 분류번호나 저자기호 등을 확인하고 만들어 넣어주어야 한다. 스티커 작업도 요청해오는 취향이 각양각색이다. 데이터는 일관된 규칙이자 약속이다. 우리는 그걸 지켜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내가 공부하고 이해한 건 여기까지이다. 아무리 봐도 눈이 핑핑 돌아간다. 보면 볼수록 어렵다. 여기서 또 필요한 게 바로 도서관 십진분류표와 십진분류사전이다. 작업을 하면서 복기하고 복기해 봐도 컴퓨터의 언어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혀 몰라도 되는 아는 사람만 아는 서점 내 창고 한 구석에서 이루어지는 미시의 세계이다. 다만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이 책에 닿았을 누군가의 수고로움을 한 번쯤 떠올려봐 주기를.




사람손으로 직접 작업해야하는 서점 내 수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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