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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May 08. 2024

하늘 외출권

엄마가 하늘에서 외출을 나온다면


하루는 남편이 녹음 파일을 보내왔다. 운전을 하고 가던 중에 라디오를 듣다가 차를 세우고 녹음을 했단다.


재생 버튼을 누르니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TV에서 시를 자주 읽어주시던 정재찬 교수님의 목소리였다.


이번에 라디오에서 읊어주신 시는 바로 정채봉 시인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이었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 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 보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마침 그 시를 듣게 된 행운

그 시를 들으며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나를 떠올린 남편의 마음과

그 시를 들으며 엄마를 떠올린 내 마음과

나와 같은 바람을 품었던 시인의 마음까지

한 날 한 시에 만나 포개어진다

이쯤 되면 하늘에서도

휴가까지는 아니어도

몇 시간 외출이라도 내어줄 만하지 않을까.


만약 엄마가 하늘에서 외출권을 받아서 나온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세 시간 정도만

 함께하는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다.

(5분이라니 정채봉 시인님은 참 욕심도 없으시다.)


만약 그런 기적이 정말로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랑 밥 한 끼 하고 싶다.

내가 손수 차린 밥상을 대접하고 싶다.


처음 만나는 장모랑 사위랑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마주앉아 

내가 갓지어준 밥 한 끼 함께 나누며

도란도란 정다운 이야기꽃 피우는 풍경을

딱 한 번만 눈에 마음에 담고 싶다.


그럼 또 그 추억으로 남은

행복으로 사랑으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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