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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Aug 14. 2024

미래의 한 조각, 오늘

아나바다 좋아요


친애하는 다정다감이들께,


그동안 안녕히 잘 지내셨나요? 어느덧 8월 한가운데에 이르렀습니다.


'입추매직'이라는 말처럼 그늘 아래 달라진 바람 한 줄기를 피부로 느끼며 열대야가 한풀 꺾이나 보다 했는데, 말복인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마치 보란 듯이 무더위가 맹렬히 그 위세를 떨치는 중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은 말 그대로 쏜 화살처럼 돌이킬 수 없이 지나갑니다. 저는 여전히 사회복지 기타 종사자로 가족센터에 꾸준히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친절과 다정함을 세밀히 관찰하고 발견하고 줍고 모으고 옮기고 나누면서요. 좀 나눠 드릴까요?호호-


두 달 만에 전하는 소식인가 봅니다. 그 사이 많은 변화들이 있었네요. 6월 상반기를 마감하며 결산서류 중간점검으로 회계를 맡은 담당 선생님들이 또 한 번 몹시 분주했고, 저 역시 바지런하게 곁에서 손을 보탰답니다. 그 사이 정들었던 선생님이 옆 사무실 타 부서로 옮겨가고 새로 뽑힌 두 명의 팀원이 다행히 무사히 잘 적응하는 모습입니다. 제 바로 뒷자리에 앉아 저에게 자주 업무지원을 요청했던 아이돌봄지원팀 선생님도 퇴사를 하셨네요. 부서마다 소리 없이 꽤나 사람이 자주 바뀌는 풍경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변화는 함께 격일로 일하던 선생님이 그만두면서 8월부터는 제가 하루 더 출근을 하게 된 점이겠지요?


주 이틀과 주 사흘은 비록 하루 차이지만 체감적으로는 꽤나 무게감이 다릅니다. 월, 수만 일하고 목금토일 나흘은 책임감을 내려놓고 연달아 쉬다가 월수금을 출근하려니 주중 내내 긴장감과 책임감을 유지해야 하는 본래의 성향은 어디 가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선생님들과 소통하며 그때그때 좀 더 필요한 날에 맞춰 아직은 유연하게 조정해가고 있습니다.


참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일은, 지난달부터 아파트 대출금 고정금리가 풀리면서 이자가 두 배쯤 올랐는데 딱 그 금액만큼 더 일해서 벌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랍니다. 분명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기막힌 타이밍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얼마 되지 않은 파트타임 월급으로 대출금을 갚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분은 묘하게 뿌듯하고 감사합니다.


 켜켜이 쌓인 시간만큼 사람들 사이에서 유대감도 자연스럽게 두터워집니다. 제가 좀 더 도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도 기쁘고, 제가 출근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도움을 요청하며 손을 번쩍 드는 선생님도 고맙고 어여쁩니다. 환경미화원 여사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더니 "나도 좀 그렇게 반갑게 맞아주지!! 일한 지 몇 년 됐어도 나는 한 번도 그렇게 기쁘게 안 맞아 주던데!" 하시며   웃으시면서 귀여운 질투를 하십니다.


잠시 옆 사무실로 옮겨 앉아 있는 사이에는 마침 궁금했던 가족상담팀 선생님들과 나란히 앉게 되었지 뭐에요. 정식으로 나누는 인사는 거의 처음인데 마치 서로 이미 익숙하고 오래된 듯이 친근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컴퓨터 업데이트도 도와 드렸답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소리 없이 바쁜 손이 선생님들의 정확한 이름도 눈치껏 금세 익히고, 무엇보다 상담 전화를 어떻게 받고 응대하는지도 보고 듣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지요. 저는 옆에서 듣기만 해도 조마조마하고 콩닥콩닥한데, 정말 한결같이 차분하고도 침착한 선생님들의 모습이 가히 존경스러웠습니다. 아참, 그때 만난 상담 선생님께서 얼마전 쇼핑을 했는데 제게 더 잘 어울릴 만한 블라우스가 있다며 새 옷 한 벌을 선뜻 챙겨다 주셨답니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예쁘게 잘 입고, 저는 답례로 거즈행주와 티 코스터를 직접 만들어서 선물드렸지요. 커피쿠폰은 너무 쉽잖아요. 여자들은 소녀 때나 지금이나 이런 거 좋아합니다. ! 서로 껴주고 눠주고 지런하정하게 챙겨주기!  


자리가 바뀌고 거리는 멀어졌어도 이제는 오며 가며 서로서로 잊지 않고 꼬박꼬박 눈맞춤하고 바쁜 틈에도 여전히 인사를 나눕니다. 곳곳에 계시는 여러 환경미화원 여사님들과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먼저 반갑게 인사와 안부를 나눕니다. 주고받은 말은 그리 많지 않더라도 한 공간 안에 함께 머무르며 손길로 눈빛으로, 존중과 배려의 행동으로 채운 시간의 힘입니다. 지나온 8개월의 시간과 앞으로 남은 4개월의 시간이 어쩌면 얼마 되지 않는 정말 사소하고도 짧은, 별것 아닌 하찮은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이 일 년이라는 시간을 잘 채우고 완주한다면 언젠가 미래에 저를 이루는, 저를 완성하는 데에 꼭 필요한 한 조각이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저는 지금을 귀하게 어루만져서 미래를 빚겠습니다.





근무일이 늘어서 월급도 늘고, 그래서 한 편으로는 조금 덜 참는 일도 늘었습니다. 그 어느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폭염 탓도 있겠지만, 저는 요즘 회사 1층 카페에 전보다는 자주(?) 갑니다. 지금도 여전히 아침에 나오면서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오는 저는 혼자서는 카페에 잘 가지 않는 편입니다. 금전적인 이유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대로 넘치게 막 하는 것보다는 조금 덜 하고 삼가려는 마음가짐의 한 방편이랄까요? 그런데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점심을 먹고 나면 깨끗이 씻은 텀블러를 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카페에 가서 딸기스무디를 한가득 받아 들고 옵니다. 이곳은 노노카페입니다. 카페의 수익금이 지역 시니어분들의 일자리창출에 유용하게 쓰인다고 하니 카드를 긁으면서도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게다가 텀블러 할인도 되고, 지역화폐 할인도 됩니다. 무엇보다 뚜껑이 안 닫힐 만큼 넘치게 담아주시는 시니어 바리스타님들의 넉넉한 덤을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3500원어치의 행복입니다.


요즘 여기저기 코로나에 냉방병에 기침에 목통증에 결근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다시 마스크를 끼고 일하는 분위기입니다. 여사님께서도 저에게 와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마스크를 다시 껴야할지 넌지시 묻습니다. 이제는 코로나가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착용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여름이라 에어컨 냉방때문에 환기를 거의 못하는 데다가 좁은 공간에 밀도도 높으니 덥더라도 얇은 덴탈 마스크라도 챙기는 게 안전한 예방책이 될 듯 싶습니다.


아무리 무더운 오늘이라도 이 또한 지나가겠지요. 엊그제 겨울이었는데 벌써 여름이듯이, 곧 가을도 오고 겨울도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에서도 여름은 조금 덜 덥고, 겨울은 조금 덜 춥게 서로 더불어 지혜롭고 다정하게 넘겨 보아요. 지금껏 늘 그래왔듯이요.    


오늘도 당신의 안녕을 빌며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2024년 말복 더위에

햇살나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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