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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Aug 22. 2024

칸트의 시계, 가족의 한계

정신장애인 돌봄 가족의 무게


하루에 두 번 비슷한 시각에 남편의 휴대폰이 울린다. 아침 8시 반, 저녁 8시 반이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1년 365일 휴일도 없이 매일 어김없이 울린다.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샤워를 하거나 심지어 똥을 싸면서도 그 전화는 받는다. 받아야 한다. 한 번에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울린다. 구슬땀을 흘리며 새벽까지 일을 하고 있을 때에도, 지인들과 식사를 하던 중에도 전화가 걸려오면 남편은 일을 멈추고, 또는 자리를 피해서 통화를 한다. 남편은 밥까지 거르면서 일은 해도 이 통화는 거르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8시 반이 다 되었나 보다. 우리는 이제 이 전화를 '칸트의 시계'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 전화는 다름 아닌 남편의 형에게서 걸려오는 것이다. 정신장애를 앓으며 망상과 환청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남편의 형은 그렇게 매일 전화를 걸어 자신의 동생에게 불안과 불만과 어둠을 쏟아낸다. 그에게는 동생이 세상으로 연결되는 유일한 핫라인인 셈이다. 남편은 또 매일같이 그 모든 '말도 안 되는' 형의 하소연들을 꾸역꾸역 다 들어주며 욕받이 콜센터가 된다. 그리고는 마찬가지로 늘 같은 말로 형을 달래고 다독인다. 이것으로 남편은 자신의 형의 안전과 무사함을 확인한다.


"또 전화해요."


이 말이 제일 무섭다. 옆에서 듣는 나는 이미 지친 오래다. 듣기만 해도 진이 빠지고 두통이 생긴다. 밥맛도 떨어진다. 같은 내용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하루이틀이라는데, 온갖 부정적인 극한의 어둠뿐만이 아니라 듣기에 민망할 정도의 별의별 이상한 상상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어떻게 저런 상상을 지어낼까? 듣도보도 못한 말들을 창조해 낸다. 인간의 뇌란 신기하다 못해 기이할 지경이다.


상대방의 상황이나 처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도저히 사람이 곁에 있을 수 없게 만든다. 이러다 남편이나 내가 병원에 가야 할 지경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미화시켜 본다고 해도 비집고 나오는 현실이다. 더 큰 괴로움은 이 현실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서 온다. 어릴 적에는 이유도 모르고 형으로부터 억울한 욕설과 폭력에 시달려 온 동생이 이제는 평생 그 형을 등에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아픈 사람인데 어쩌겠는가. 이미 한계를 넘어선 지도 오래다. 이건 사랑이 아니다. 사랑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사라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라 역시 늘 손에 휴대폰을 쥐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그녀 역시 무조건 그 전화를 받아야 한다. 아픈 남동생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다.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오래도록 짝사랑해 오던 동료와 크리스마스를 맞아 마침내 꿈에 그리던 데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피할 수 없는 이 전화로 인해 망치고 만다. 그리고는 결국 사랑을 포기하고 아픈 동생과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그녀 역시 얼마나 많은 걸 망치고 포기해야 했을까. 나의 남편 역시 그래 왔겠지.


세상에는 참 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다. 아직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내 도량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종류의 사랑도 있다. 십자가의 모양과 크기는 다 제각각이어도 그 무게는 다 같다고 누군가 말했다. 한때는 그 말이 위로가 되기도 했었는데... 그런데 정말 그 무게가 다 같을까? 설령 같다고 해도 모두가 똑같이 그 십자가를 짊어지며 살지는 않는다. 내가 부딪히는 현실은 그렇다.


오늘도 그의 뒷모습이 한없이 무겁다. 한 번도 내색할 줄 모르는 그의 어깨가 슬프기 그지없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



https://youtu.be/7Nvlo--AHd8?si=yj4c_amfTKI1ed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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