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수는 벌써 나가고 없다. 지난밤에 다급히 변기에 물이 샌다고 수리를 요청해 오는 의뢰인이 있었다. 휴일에도 언제나 아침에 딱 한 건만 처리하고 오겠다고는 한다. 지켜진 적은 없지만, 뭐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주 7일을 모두 일하는 데에 이제 너무 익숙해져 버린 우리는 아무래도 '좀비 집수리'로 이름을 바꿔야 할 것 같다고 농도 짙은 진담을 던졌더랬다. 조수는 더 이상 잔소리하거나 속상해할 힘도 남아있지 않다. 그만큼 지나치게 열심히 일한 8월 한 달이었다.
하필 오늘은 사수의 생일이기도 하다. 며칠째 돌보지 못한 살림이 결국 나를 일으킨다. 사수가 돌아오면 늦은 아침이라도 미역국은 먹여야지. 일 년에 한 번인데. 사수는 존경의 영역이지만, 남편은 사랑의 영역이니까. 누가 더 사랑하나 증명하는 데에는 지고 싶지 않다. 냉장고를 아무리 탈탈 털어도 미역 밖에 없다. 미원도 없어서 마음만 넣고 끓였다. 참기름과 국간장으로 달달 들들 볶았다. 미움은 안 넣었다. 짤까 봐. 불을 줄이고 뭉근하게 좀 더 끓도록 둔다. 아차, 말린 표고버섯이 있었는데! 소고기 대신 그거라도 넣을 걸. 뒤늦게 생각이 난다. 사수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설거지와 빨래를 마저 한다. 국물이 맛있게 깊어간다.
집에 거의 다 오고 있다고 예상보다 일찍 메시지가 왔다. 노쇼란다. 찾아갔는데 아무도 답이 없더란다. 설마?! 아니, 급하다며?! 이게 끝이 아니다. 집에 다 돌아와서 주차 중인데그 의뢰인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단다. 소리를 못 들었다고, 지금 다시 와달라고. 시간약속을 해놓고 왜 못 들었을까? 사수는 하는 수 없이 그대로 다시 출발했다. 미역국이 찌개를 넘어 조림이 되어 짜다.물을 한 사발은 더 부어야겠다. (심의기준을 준수하여 자체 필터링으로 험한 말은 생략하겠으나, 우리의 상상력은 알아서 음성지원이 가능하다. 참고로, 흥분하면 전라도 버전이다.)
당신의 휴일과 아침이 귀한 만큼 우리의 휴일 아침도 똑같이 귀하답니다.
8월 한 달 동안 살인적인 폭염 속에서 극한의 육체노동을 해내며 거의 유체이탈의 경지까지 다다랐다. 더위를 먹었는지 현기증이 계속되었다. 고된 일에 잘 먹어야 한다는데, 그나마도 없는 식욕에 입안이 온통 다 헐어서 일주일 가까이 뭘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일이 제대로 안 풀리거나 작업 중에 자재나 도구가 필요하면 또 네다섯 번이라도 왔다 갔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다. 달리는 차 안에서도 여기저기서 전화문의가 오면 또 상담을 하고, 시간을 쪼개서 방문예약을 하거나 도저히 시간이 안 되면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좀비 집수리를 넘어 이 정도면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집수리 기동대 아닌가? 그런데 도대체 왜 적당히 좀 쓰러질 줄을 모르는 거야? 사수는 좀비가 확실하다.
하루는 새벽까지 사수와 나란히 작업을 하면서 물었다. 도대체 왜 이걸 다 이 정도로 이렇게까지 해 줘야 하느냐고.
사수는 돈은 더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돈에 얽힌 피 땀 눈물, 욕망, 원한과 비겁을 상쇄시키고 멸하기 위해서는 직접 몸으로 겪으며 그에 상응하는 만큼 고생의 값을 치러야 한다고.
이꼴저꼴 드러운 꼴 많이도 겪고 보고 했지만, 새삼 돈은 참 더럽기도 하지만 어렵기도 하구나. 그런데 그 사수에 그 조수 아니랄까 봐 왜 그 길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자기 팔자 자기가 꼰다더니 편하게 살기는 글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