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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Sep 15. 2024

집 한 채, 밥 한 끼

즐거운 나의 집


추석 명절을 앞두고 뜻밖의 곳에서 갈비찜을 얻어먹고 왔다.


오랜 외국생활에서 돌아와 세를 내주었던 집을 수리해서 들어가려고 한다고 연락이 왔다. 정년을 넘기고 새로이 직장을 얻어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뢰인은 통화만으로도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파른 언덕 좁은 골목에 자리 잡은 오래된 빌라에 방충망을 좀 교체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몇 사람이 다녀갔으나 손도 못 대고 결국 포기하고 돌아갔노라고. 블로그를 한참 찾아서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연락했으니 어떻게 좀 안 되겠느냐고 간곡히 요청해 오셨다.


대략적인 자초지종만 들어도 어려움이 예상되는 작업이었다. 지역도 멀었다. 한강을 넘어가는 서울! 과연 할 수 있을까?


의뢰인과 한참 통화를 이어가던 사수는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고심 끝에 한 번 방법을 찾아보겠노라며 넉넉히 여유를 두고 약속을 잡았다. 조수 역시 출근해야 하는 근무일을 피해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작업은 예상대로 어려웠다. 기존에 방충망 틀을 뺄 수도 없고 뜯기도 힘들었다. 실제로는 3층이 넘는 높이에 주변 공간이 없어 사다리를 댈 수도 없는 데다가 방범창 창살이 감옥보다 야무져 보였다.



두 번은 올 수 없었기에 밤을 새워서라도 끝을 봐야 했다. 우리가 작업을 하는 동안 이것저것 챙겨주시면서 '내 집처럼' 뭐든 편하게 하라고 배려해 주신다. 해결만 해주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고 하신다. 사수는 새 방충망을 버려 가면서까지 여러 가지 방법을 거듭 시도한 끝에 결국 어떻게든 해내긴 해냈다. 그 사이 시간은 밤을 향해가고 있었다.


서울은 서울이었다. 주차할 곳이 없어 저 멀리 공영주차장을 찾아 어렵사리 주차를 하고 장비와 짐을 들고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공사 중이라며 중간에 차를 빼달라고 하질 않나, 그날따라 어찌 알고 다 같이 날을 잡은 것마냥 문의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오기도 했다. 중간에 필요한 부품을 찾아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늦은 저녁 작업을 겨우 마무리 짓고 주변 청소를 하고 있는데 의뢰인께서 이왕 늦은 김에 밥을 먹고 가라고 하신다.


갈비찜이다. 사연 깊은 갈비찜이다. 의뢰인께서 명절에 쓰려고 주문했는데 이사하면서 정신없는 통에 택배를 예전 주소로 시켰다고 하신다. 이 무더운 날씨에 그것도 러시아워에 장바구니와 배낭을 챙겨 들고 저 멀리까지 그 택배를 찾으러 가신다고 하신다.


"퀵서비스 시키세요. 병원비가 더 드세요."


사수님, 땡큐!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이런 일이 생기면 돌봐 줄 자녀분들도 모두 외국에서 살고 있고 혼자 지내신다고 하신다. 왕복 세 시간은 더 걸렸을 갈비가 30분 만에 집 앞에 당도했다. 덕분에 얻어먹은 갈비찜이다.


밥 한 끼를 나누는 동안 그분의 역사를 듣는다. 안정된 미래를 뿌리치고 마흔일곱에 유학을 떠나셨단다. 지금까지도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자신의 힘으로 노력해서 일궈나가는 게 무엇인지 그 가치를 아는 분이셨다. 더불어 도란도란 우리의 역사도 나눈다. 이야기가 통한다는 기분은 이런 것이구나. 자신의 노고와 상대방의 노고를 동등한 잣대로 존중해 주시는 그분의 언행일치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내로남불하지 않는 그분의 태도가 우아하게 느껴졌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우아함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정말 속 편히 내려놓고 밥 한 끼 나눌만한 '내 쉴 곳, 그 작은 집'이라고 부를 만 한 식구가 없었구나 싶을 때가 있다. 식구라고 해서 다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부디 해피 추석!


https://youtu.be/vfDb8uTp2DU?si=aNZVPujoi5Qiwm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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