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수가 바라는 궁극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일까? 잠시 빌려 입은 조끼가 본래 자기 옷인 듯 안성맞춤이다.
의뢰받은 작업을 진행하러 갔다가 잠시 유니폼을 함께 입고 현수막을 들고 인증사진을 같이 찍어달라는 요청이었다. 민관이 협력하여 진행하는 주거환경 개선 프로젝트라고 한다. 홍보지에도 게시된다고 하는데 이대로 이 길로 쭈욱 가는 걸로 할까요?
사진도 찍고, 수리하는 동안 또 그곳에 살고 계시는 이웃분과 이런저런 인생이야기를 나누며 덤으로 그분께서 직접 담그신 장뇌삼주까지 받아왔다.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살 귀한 술이다. 이야기를 술술 들어준 값이라고 해야 하나? 귀한 인연의 값이다. 돈도 좋지만 이런 덤이 왠지 더 좋더라.
되로 주고 말로 받아온다는 게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사수는 시트지 실습 끝판왕이다. 하나를 붙들고 집중하기 시작하면 곧바로 달인의 경지에 이르는 사수의 내공이 무섭다.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지다니 가성비가 참 좋기는 하다. 조수는 그저 열심히 잡아주고 프라이머를 바르고 시트지가 고르게 잘 붙도록 곁에서 열처리(드라이기)를 담당한다. 하다 보니 시트지 작업이 그래도 폐기물 처리나 뒷정리가 깔끔하고 비포어 에프터가 명확해서 작업할 맛이 난다. 체력적으로도 덜 부담되고.
요즘은 정말 무릎이며 어깨 허리,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신다. 날이 차가워지니 아침에 몸뚱이를 일으켜 이불 밖을 빠져나오기도 점점 더 쉽지 않다. 아침 일찍 나서서 밤이 되어 돌아오는 요즘 일상이 좀비가 된 기분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가 이번에 안마의자를 새로 들였다는데 몹시 부럽다. 그런데 농부 친구는 정말 그럴만하다. 그럴 자격이 있다. 사시사철 끝도 없는 농사일! 김장철을 앞두고 절임배추로 겨우내 허리 한 번 못 펴고 일할테니 말이다. 몸노동은 정직한 만큼 숭고하다.
집수리를 다니다 보면 위생과 미화의 문제를 넘어 안전의 문제도 함께 포함되는 경우도 많다. 환경 개선이 곧 안전 개선이 되는 경우라고 해야겠다. 오래된 전등들은 어쩜 그리 크고 두껍고 무거운 유리갓으로 된 제품들이 많은지 이게 천장에 매달려있다고 생각하면 살짝 무섭기도 하다. 가장 힘든 건 본작업보다도 오히려 분리수거와 폐기물 처리다. 전등 교체 작업은 욕실장이나 변기에 버금가는 힘듦이다. 이 작업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앞서 오랜 시간 여러 작업을 거쳐오는 동안 체력을 모두 소진했는데, 끝난 게 끝난 게 아니었다. 돌아서면 낡은 잔해들이 한가득 기다리고 있다. 저녁 설거지가 하기 싫은 기분과 같다.
온통 두껍고 무거운 유리! 폐기물처리도 큰 일이다.
문을 떼어내거나 들 수도 없는 거대한 새시도 마찬가지다. 세월 속에서 내려앉거나 처음부터 시공에 조금 하자가 있는 경우 그 두껍고 커다란 유리새시문이 흔들린다. 이 정도면 새시를 새로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사수는 몇날며칠이 걸리더라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그걸 또 해결해내고 만다. 좀 못 한다고 하면 안 돼요?
"남들처럼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
신기한 건 찾고자 하면 필요한 자재나 부속품들이 다 있다는 사실이다. 상상할 수 있는 건 이미 존재한다던 피카소의 말은 진리였다.
새시틀 보강 레일? 놓치지 않을 거에요! 그러고 보니 우리집도 보강해야 한다. 돈 안 된다고 우리집은 안 해주시는 사수님!
아주 오래된 현관 앞 매립형 센서등을 떼어 낸 자리에 메꿈 작업이 필요했다. 이건 또 목공 작업에 속한단다. 과정을 안 봤으면 전혀 생각지도 못할 방법이었다. 이 정도면 예술을 넘어 마술의 경지라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우리는 부부사기단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