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What You See!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다시 쓰여져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는 만큼 보인다. 사는 대로 보인다. 내 눈에 들어오고 내게 보여지기 시작하는 것이 지금의 나를 말해준다.
열아홉스무 살, 주경야독 주독야경을 하던 시기에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매주마다 해태, 크라운, 롯데, 오리온, 농심을 만났다. 죠리퐁, 에이스, 웨하스, 산도, 사브레, 버터링쿠키, 빠다코코넛, 콘칩, 새우깡, 신라면, 칠성사이다, 하이트, OB맥주, 참이슬 등등! 그때부터였다. 버스를 타고 가거나 길을 지나다니면 분홍 탑차, 노랑 탑차, 초록 트럭, 파랑 트럭들이 그렇게나 많아 보였다. 이전에는 하나도 보인 적이 없었다. 없었던 게 아니라 분명 이전에도 늘 원래부터 있었으나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일 게다.
20여 년 전, 그땐 편의점이 생기기도 전이었다. 아주 작은 서민 아파트 단지 입구에 있던 작은 슈퍼마켓에서 주말 이틀 동안 술이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 걸 보고 우리는 진정 음주와 고성방가를 사랑하는, 흥도 많고 한도 많은 민족이구나 새삼 깨달았다. 짙은 파란색 플라스틱 상자에 초록빛으로 출렁이는 소주 한 상자는 가로 5칸 세로 6줄로 서른 병씩 들어 있었고, 주말이 다가오면 열 상자 가까이 카운터 옆 창고에 재고를 쌓아두고 냉장고 쇼케이스가 비는 족족 서둘러 쉼 없이 채워 넣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대낮에도 깡소주를 맨입에 원샷하는 아저씨도 있었고, 슈퍼마켓 문턱이 닳도록 매일같이 틈틈이 들러 한 잔씩 잔술로 홀짝홀짝거리는 아저씨도 있었고, 깡소주 원샷에 아이스크림을 안주로 까서 드시는 매우 위태로워 보이는 키친 드렁커 아주머니도 계셨다. 우리 동네 집집마다 숨어있는 알코올의존증이 의외로 흔하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만큼 술을 사는 것이 너무 쉽고 가까웠다. 또 그만큼 받기 어려운 오래된 외상값이 고질적인 시절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웃프고 억울하게도 나는 이미 그때부터 아줌마 소리를 들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의 통칭! 좀도둑 역시 참 많았다. 그때는 CCTV가 제대로 되어있던 시기가 아니어서 일일이 추적하거나 잡을 수도 없었다. 분유값이 없어 훔친다는 말은 정말이었다. 분유는 꽤 비쌌다.
25년을 지나온 요즘에 나는 거리를 지나면서 철물, 공구, 배관, 자재, 부속, 타일, 인테리어만 보인다. 전에는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이렇게나 많았단 말인가!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됐지. 사수는 조수를 제대로 물들이고 길들였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나는 끝까지 이것만 보고 싶지는 않다. 내 세상이 온통 이것만으로 채워지길 바라지 않는다.

You are What You See!
You are What You Love!
둘이서 함께 대기업에 다닌다는 젊은 부부 집에 다녀왔다. 막힌 싱크대 배수구를 뚫어주고 전체 부속을 모두 교체해 주었다. 꽤 오래 단단히 막혀있었는지 주변에 누수의 흔적이 여기저기 물들어 있었다. 밝고 친절하고 세심한 새댁은 곁에서 오며 가며 그때그때 필요한 비닐봉지며 소독티슈며 쓰기 좋게 꺼내서 우리 옆에 가까이 놓아주고, 부엌 타일 바닥이 차갑다며 방석도 내어주었다. 작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너무 오래 고생하셨다고 음료는 물론이고 넉넉히 담은 햇복숭아와 함께 여분의 쓰레기봉투까지 챙겨주었다. 우리는 늘 하던 대로 작업 후 발생한 쓰레기를 모두 가지고 나오는데, 자신이 치워도 되는데 챙겨주셔서 감사하다고 문 앞까지 나와 인사를 한다. 참 싹싹하고 어여쁘다. 뉘 집 따님이신지 참 잘 키우셨다. 그녀의 센스가 더욱 덧보이는 한 순간이 있었으니, 복숭아를 담아준 봉투 안을 열어보니 향기로운 차량방향제가 함께 담겨있었다. 오랜 시간 싱크대 안에 엎드려 하수구 냄새와 씨름하고 온 사수를 위한 배려였지 싶다.
짐을 챙겨 나오는데 벽에 걸린 달력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비싼 동네 비싼 브랜드 아파트에, 젊은 부부가 사는 집과는 어울리지 않게 숫자가 큼지막하게 쓰인 여수수협 달력이 걸려 있었다. 공간 인테리어와는 동떨어져 보이는 것이 꽤 인상 깊어 물어보니, 새댁의 고향이 여수에서도 배를 타고 10여분 들어가야 하는 섬이라고 한다. 아버지가 여전히 그 섬에 살고 계셔서 물때를 챙겨 볼 일이 있어 일부러 구해서 걸어두었다는 것이다. 그 마음이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남들 눈에는 충분히 성공했다고 보일 만한 대기업 회사에 다니고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마음 한 켠은 늘 저 멀리 고향 바다에 걸쳐 둔다니. 역시 사는 만큼 보인다. 살아온 만큼 본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날마다 생존을 다투는 삶의 현장은 모두에게 매한가지이겠지만, 그래도 우리 마음의 고향 같은 낭만 한 조각은 간직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남들과 조금은 다른 것을 보는 시선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