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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추천하는 집수리 항목

밥그릇 나누기? 키우기!

by 햇살나무 여운


친구를 많이 안아주고 다독거려 주고 왔습니다. 앞서 지난 연대의 글에 함께 해주신 귀한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갑작스레 아버지를 떠나보낸 친구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매일 우리는 누군가를 잃고 떠나보내고 또 만나고 또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삽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그저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이 순간의 인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善을 다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은 더 친절한, 조금은 더 너그러운, 조금은 더 인간다운 선택을 하는 쪽으로 걷는 길 뿐. 우리는 아직 온기를 지닌 살아있는 생명이기에.






하룻밤 사이에도 폭풍우 같은 꿈을 지나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겪고, 또 돌아서기 무섭게 떠밀려오는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 꿈속을 헤매고 있을 여유도 사치도 없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휩쓸려가지 않도록 삶에 두 발을 굳건히 디디고 허상이 아닌 실체를 살아야 한다.



욕실 바닥 타일이 들뜨고 그 밑으로 물이 스며들어 밟을 때마다 꿀렁거리고 물이 배어 나온다. 타일 보수를 해야 하나 살펴보았지만,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았다. 우선 최대한 물기를 제거하고 틈새 사이로 압착시멘트 반죽을 치밀하게 밀어 넣어 좀 더 단단히 붙도록 며칠 충분히 말리기로 한다.



사흘 후 다시 방문해 지저분하게 삐져나온 압착시멘트의 잔해들을 갈무리한 후, 그라인더와 스크래퍼를 꺼내든다. 사수는 납작 엎드려 바닥과 최대한 가까이 몸을 낮추고 미세한 틈과 틈 사이를 갈아내고 또 갈아내고 끝없이 갈아내기를 반복하는, 조심스레 세공을 하는 치과의사라도 된 모양새다. 조수는 사수의 옆뒤에서 제때 위치를 옮겨가며 석션의 달인이 된다. 직접적인 작업부위를 쫓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애물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는 사수의 어깨 움직임을 미리 읽고 앞서 움직여야 한다. 돌을 갈아내는 소리에 왜 내 이가 갈리는 느낌이 드는지, 신경이 곤두서고 치과에서의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번에는 줄눈이다.

조수로서는 직접적으로 본작업을 할 일은 없고, 보양작업을 하거나 실리콘을 벗겨내고 이물질을 제거하는 정도의 선작업에 손을 보탤 수는 있다. 그때그때 적절한 도구를 신속 정확하게 찾아 전달하는 것은 이제 기본이다. 그라인더 작업은 소음도 소음이지만, 미세먼지가 넓게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보양비닐을 치고 반드시 집진기(진공청소기)를 함께 구비해야 한다. 맨손으로 직접 톱질을 하거나 스크래퍼로 긁어내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먼지는 덜 발생한다. 실리콘 작업은 벗겨내는 것이 더 오래 걸리고 힘들고, 마찬가지로 줄눈 보수작업 또한 노후된 줄눈을 갈아내는 데에 공력이 많이 소진된다. 줄눈이 조금 더 고난도의 작업인 까닭은 일정한 깊이와 간격으로 세밀하게 타일 사이에 골을 내야 할뿐더러 타일의 네 모서리가 만나는 교차로는 나중에 줄눈제를 도포하면 그곳으로 몰려 쌓여 더 눈에 잘 띄어서 특히 더 고르게 예쁘게 길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칫 잘못하다가 타일을 훼손할 수도 있다.



마지막 줄눈제를 채우는 작업은 앞선 작업에 비하면 훨씬 수월하다. 그리고 요즘은 셀프시공도 많이 할 만큼 DIY 재료들이 다양하게 잘 나와 있다. 예전엔 흰색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타일과 깔맞춤 해서 금맥이 흐르게 할 수도, 은맥이 흐르게 할 수도 있다. 이번 현장 작업은 초콜릿 폭포수에 퐁듀를 담그는 느낌이었다. 참고로 우리 집엔 얼마 전까지 은맥이 흐르다가 지금은 금맥이 흐른다. 그것도 마치 강원도 정선 병방치를 휘감아도는 물줄기처럼 변기를 감싸며 금빛이 번쩍인다. 지난번 변기 사건에서 설치했다가 다시 뜯어온 새 변기는 갈 곳을 잃어 결국 우리 집에 앉혔다. 새 변기로 바꾸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이참에 제대로 느껴봤다.


강원도 정선 병방치 한반도 지형을 닮은 동강 주변 , 사금 채취지로 유명했다던 이야기? / (사진 출처 네이버)


사수가 가끔 가깝게 지내는 조수의 친구들 중에 열정과 관심이 있고 손기술 괜찮은 몇몇을 스카우트해서 충분히 가르치고 전수할 의향이 있다고 종종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조수 역시 가끔 생각한다. 이 정도는 우리도 배우고 연마하면 할 수 있겠다 싶은 경우가 있다. 아이를 제법 다 키운 친구들에게 한 번쯤 같이 배워보자고 권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평소 살림하던 솜씨로 시트지도 하고, 줄눈도 하고, 가구도 조립하고, 페인트도 칠하고 이것저것 셀프로 집안 구석구석을 꾸미는 내 또래의 여성들을 자주 만난다. 어느 정도 야무지고 말끔한 손끝을 가졌다면 이 바닥에 뛰어들어 봐도 괜찮지 않을까 조심스레 권해보고 싶다. 집수리도 결국 살림의 확장된 영역이라고 본다. 넓고 다양한 모든 항목을 다 다루지 않더라도 한두 종목만 특화하면 살고 있는 동네 기반으로 소소하게 부업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현장에서 그렇게 뛰고 있는 여성분들도 제법 만난다. 변기 전체를 교체하기는 힘들어도 변기 물탱크 속 부품 교체만 전문으로 하는 분들도 있고, 수전이나 전등만 전문으로 하는 여성분들도 있다. 집에 셀프 조명 설치는 워낙 많이들 하고 있기도 하고.


그동안 따라다니며 지켜보니 실리콘, 줄눈, 그리고 조금 더 보태면 필름 시트지 정도까지는 해볼 만하다 싶다. 여기서 줄눈은 타일 작업이 아닌 줄눈 재시공 및 보수만을 가리킨다. 인테리어 필름은 아파트 전체 시공은 어렵겠지만, 싱크대나 몰딩 등 부분 작업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여성들의 꼼꼼하고 세심한 손길이 더 빛을 발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일이 있을 때만 가끔 뛰며 쉴 때는 쉬며 휴가도 다니는 도배기능사분도 물론 있다.


실리콘과 줄눈은 도구가 단출하고 무엇보다 무겁지 않다. 재료와 부자재가 잘 나와 있고, 초기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 그라인더를 쓰지 않고 스크래퍼를 쓴다면 시간은 좀 더 걸리지만, 다칠 위험도 적고 상대적으로 큰 힘이 덜 요구된다. 작업 중 또는 작업 후 발생할 수 있는 사고로 감당해야 하는 위험도 적다. 출퇴근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선택해서 할 수 있다. 욕심부리지 않고 일주일 또는 한 달에 이 정도까지만 하겠다 마음먹고 조절할 수 있다. 요즘은 플랫폼이 워낙 잘되어 있어 간판을 내거는 매장이나 물리적 공간이 별도로 없어도 그 시장에 곧바로 뛰어들 수 있다. 하는 만큼 그래도 곧바로 현금을 손에 쥘 수도 있다. 다만 노력과 실력을 갖추고 끈기 있게 기다리며 내공을 쌓는 것은 기본이다. 그 시간을 잘 버티고 넘기고 숙련되고 실력으로 검증되고 나면 여성들의 생활력과 정보력, 연대의 힘을 통해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가끔 맘카페에 언급되기도 한다. 그리고 집수리의 특성상 아무래도 내 집에 낯선 아저씨를 들이는 것보다 나와 비슷한 여성들이 찾아오는 것이 좀 더 환영받는다. 무엇보다 실리콘과 줄눈을 추천하는 이유는 특출한 힘이나 기술을 요하기보다는 혼자서 집에서 작은 공간만 있어도 조용히 얼마든지 반복해서 연습하고 꾸준히 연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당 최저시급에 비하면 더할 나위 없는 것은 물론이고.


육체노동은 당연히 힘들다. 고되고 거칠고 지저분하고 더러울 수 있다. 그런데 사는 게 본래 그렇지 않은가? 그 힘듦과 더러움을 땀으로 정화시키고 승화시켜 경제력까지 손에 쥘 수 있다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굳이 육체노동이라고 가르고 폄하하지만 않는다면, 그 어떤 일보다 한 만큼 나오고 인풋과 아웃풋이 일치하는 더없이 정직하고 숭고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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