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루의 여인
의뢰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칭찬은 조수로 하여금 어깨춤을 추게 하는 마법이다.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면서도 엉덩이가 실룩샐룩!
'데모도 (てもと, 테모토)'는 조수도 가끔 들어본 말로, 공사현장이나 노가다(막노동) 판에서 흔히 기술자의 옆에서 손발을 맞춰 돕는 보조공을 일컫는다. 상가에서 단골이 된 태권도 관장님 댁 어머님께서 며칠을 지켜보시더니 조수에게 하신 말씀이다. 말씀을 나눠보니 주식투자도 하시며 국내정세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흐름까지 읽고 파악하고 계시는 숨은 고수이셨다.
요즘은 부동산 사장님들뿐만 아니라 기존에 몇 번 작업해 준 고객들이 주변에 소개해서 연락이 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 형님 동서 사이는 물론이고 함께 운동 다니는 언니 동생 사이에서, 직장 동료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고 있는 모양이다. 광고비를 내야 하는 당근마켓보다 낫다. 이번 태권도 관장님도 상가건물을 몇 번 수리해주고 나니 자신의 집까지 부탁해 올 만큼 신뢰가 쌓인 것이다.
"이런 일 하실 분으로 안 보이시는데?"
다니다 보면 사수나 조수가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렇게 보는 눈이 있는 분들은 그만큼 민감하고 기준이 높다. 작고 단순한 수리건은 그래도 좀 덜하지만, 복잡하고 큰 수리건에는 선뜻 손을 대거나 누군가에게 맡기는 게 쉽지 않아 망설이게 된다. 사수 역시 스스로에게 그렇기 때문에 서로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탐색의 시간을 제법 보내고 단골이 되어 마음먹고 어렵게 부탁해 오는 경우는 그래서 또한 거절하기도 어렵다.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게 뻔히 보이는데도 사수는 결국 그 길을 가고야 만다.
인테리어 필름, 타일, 도배에 이어 마침내 마루까지 다다랐다. 빈집도 아니고 살림이 가득 들어찬,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공사를 하기란 여간 번거롭고 힘든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마루 보수 공사는 소음과 먼지에 워낙 민감하고 세심한 작업이라 사수는 지금껏 가능하면 피해왔다. 게다가 부분 보수라니 같은 자재를 구할 수도 없고, 아주 소량만 구입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번엔 피할 수 없는 요청이라 맡고 말았다.
그 일의 시작은 집에 커튼을 달아달라는 부탁이었다. 따님은 출근하고 어머님이 반려견 몽실이와 단둘이 계시는데 커튼을 달러 방문한 사수가 마음에 드셨는지 이것도 좀 봐주고, 저것도 좀 봐달라고 점점 늘어서 결국 거실 마루와 타일 보수에 베란다 화단 보수까지 이어졌다. 사수는 다시 방문해서 마루의 전체 상태와 면적을 살피고 이곳저곳 필요한 사항들을 꼼꼼히 챙겼다. 각각 가장 적합한 자재를 찾아 여기저기 매장을 방문해 사진을 찍고, 또 그중에서도 의뢰인이 더 원하는 색상을 고를 수 있도록 선택권을 준 후 최종적으로 정해지면 맞춤 주문을 하고 찾아와야 한다. 마루와 타일 자재는 모서리가 잘 깨진다. 화물을 찾으러 갔더니 비싼 타일이 두 장이나 깨져서 왔다. 작업하는 도중에 모자라면 안 되는데. 모자란 한두 장 때문에 한 박스를 통째로 더 사게 되면 비용이 곱절로 든다. 세밀한 작업을 해야 해서 추가로 다양한 도구도 새로 구입했다.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하는 데 소요되는 그 시간과 비용도 헤아리는 마음이 필요하다.
때마침 날도 너무 좋고, 하늘이 보우하사 바로 아랫집이 빈집으로 새시까지 몽땅 올인테리어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마루를 갈아엎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조수는 책과 펜과 꽃을 손에 쥐는 시간과 명분을 벌기 위해 오늘은 손에 빠루와 망치와 빗자루를 들고 사수를 따라나선다. 7대 3! 물론 조수가 7이다.
뿌레카에 납작한 주걱모양의 평노미를 끼우고 드르르륵 전체를 다 갈아엎는 건 차라리 낫다. 그러나 부분보수는 이음새를 톡톡톡톡 세밀하게 말끔히 끊어내야만 무사히 새 마루를 맞물려 이어 붙일 수 있다. 사수는 끌과 망치를 들고 엿장수가 되었다. 이가 서로 잘 맞아떨어지게 속을 꼼꼼히 파고 갈아내기까지 해야 한다. 아무리 봐도 예술하는 엿장수다. 숨 쉬고 생활하는 거실 공간에 쓸 본드이니 황토가 함유된 좋은 재료를 쓴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일인데, 사수는 질을 높이는 투자에 아낌이 없다. 내 7의 지분이 줄어들고 있다.
따님이 출근 후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만 작업을 해야 해서 나흘 동안 매일 몽실이를 만나러 갔다. 기간이 길어지는 큰 작업을 맡으면 거기에 매여서 다른 일들을 모두 미루거나 거절해야 하기도 하고, 큰 일에는 큰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만큼 공력을 더 쏟아붓기도 해야 한다. 매번 어머님께서 간식으로 바나나와 고구마도 챙겨주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 사이 몽실이와도 제법 친해지다 보니 내친김에 또 여기저기 더 손봐달라고 부르신다. 아....... 변기를 또 하게 생겼다. 일단은 여기까지만, 결 지읍시다. 쉼표를 찍을 때입니다.
몽실이네 집 작업을 마무리 짓고, 이번엔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 욕조 수리를 맡았다. 전셋집이라 욕조를 마음대로 교체할 수는 없고, 아이는 어리고 욕조는 낡아서 아이 엄마가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지난번 견적을 보고 온 후 고민 끝에 이 또한 거절할 수 없어 한 번 해보자고 나섰다. 욕조를 뜯어 속을 보니 잘 맡았다 싶었다. 내 아이가 있었더래도 이대로는 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구석구석 말끔히 청소를 하고 잘 말린 후 낡은 배수구와 호스를 교체해 주었다. 물 한 방울 샐 틈 없도록 실리콘으로 말끔히 세공까지 해주었다. 욕조와 씨름하느라 사수는 엄지발톱 하나를 내어주고 피를 보긴 했지만, 아이를 구하고 엄마의 마음을 구했으니까 그걸로 되었다. 아이가 웃으며 나를 안아주었다. 특급 뽀너스다!
손에 칼을 들든 망치를 들든 꽃을 들든 펜을 들든! 그 무엇을 들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든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그것을 어떻게 쓸 사람인가가 중요하다.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을 "왜" 하는지 그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 끝까지 사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자세를 잃지 않고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