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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Oct 23. 2022

공부하기 싫을 때는 기도하듯이

자기주도학습 연재를 마치며

*자기주도학습(Self-directed learning) : 학습자가 배움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인지, 정서, 행동을 점검하고 관리하며 학습 과정을 주도해 나가는 학습활동.


지금까지 자기주도학습을 위한 정서, 상위인지, 행동조절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글을 통해 단순히 방법론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스스로 방법을 찾고 싶다는 마음,   해볼만 하겠다는 마음 들게 하고 싶었다. 만약 글을 읽으면서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었다면, 지금까지 시간을 내어 기도하듯이 글을 썼던 의미를 만들어준 것이므로, 당신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


이렇게 적고 보니, 기도하듯이 글을 썼다는 말에 대해서 조금 설명할 필요성을 느낀다.


우리는 곧잘 기도를 한다. 종교가 있든, 없든, 인간은 기도를 하곤 한다. 우리는 기도를 하면서 감사함을 생각하기도 하고, 미안함을 생각하기도 하고, 과거를 되짚기도 하고, 미래를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누군가가 듣고 있기라도 한듯이.


그렇게 생각하면 한 자리에서 가만히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속으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행위만이 기도인 것은 아니다. 내가 내 삶의 유한한 시간 중에 일부를 내어서 무언가를 염원하는 것, 마음을 모아서 무언가를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이 기도라면 청소를 하는 행위도, 요리를 하는 행위도, 운동을 하는 행위도, 열심히 게임을 하는 행위도, 어떤 것을 공부하는 행위도, 내가 시간을 쓰고 마음을 모으고 있는 그 모든 순간들도 사실은 기도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중요한 건 기도의 내용이다. 나는 무엇에 내 시간과 마음을 온전히 쓰고 있는가? 즉, 나는 그 행위를 통해서 무엇을 기도하고 있던 것일까? 그보다도 나는 무엇을 기도하고 싶은가? 이 땅에 무엇이 많아지길 바라는가? 어떤 마음이, 어떤 기도가 넘치는 사회이길 바라는가?



나와 세상을 연결하고

배움에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자기주도학습이다.


그동안 우리는 '가르치는 자의 책무'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강조하면서 '배우는 자의 책무'는 쉽사리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교에서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다양한 경험과 자료들은 학교 밖에서, 수업 외의 시간에서, 내가 나를 마주하고 있는 그 시간 동안에 진짜 내 것이 된다.


결국 물가에 데려가도 물을 마시는 것은 자기 자신이듯이, 나 스스로 배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배움에 대한 무책임함은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나와 연결된 공동체에게 어떠한 결과로든지 돌아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내가 무언가를 공부하는 행위 자체가, 누군가에게 공헌하는 행위인 셈이다.


공동체, 즉 남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것. 타인으로부터 '좋다'는 평가를 받을 필요 없이 자신의 주관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그러면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네.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중에서


물론 우리는 '행위' 이전에 '존재'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 자체로 이미 가치가 있다. 하지만 때로는 공부가 곧 '나'를 위한 것이자, 나와 연결된 모든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고 확장하여 생각할 필요도 있다.


나무는 독립적인 존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관계의 그물 속으로 녹아들어가 버립니다. 잎사귀에 떨어지는 비와 나무를 흔드는 바람과 그것을 받쳐주는 땅이 모두 나무의 한 부분을 이룹니다. (...) 궁극적으로는 우주 속의 모든 것이 나무를 나무로 만들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립될 수 없습니다. 그것의 본성은 순간순간 변합니다. 그건 한 순간도 똑같지 않습니다. 이것이 공(空)의 의미입니다. 사물이 독립된 존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중에서


이처럼 혼자 고립되어서 혼자 공부하는 것이 자기주도학습이 아니라, 나를 세상과 연결하면서 내 배움에 책임을 지는 적극적인 행위가 바로 자기주도학습이다. 나, 그리고 나와 연결된 모든 것들을 위해서,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나 자신의 성장과 변화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바라보고, 지금 상황을 점검하고,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고, 잘 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나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시 나아가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바로 자기주도학습인 것이다.


심리학자 아들러에 의하면,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자는 자신밖에 없다. 변화를 만드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리고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그것을 위한 최소한의 용기를 낼 수 있는 순간은 언제나 지금-여기이다.



밤나무를 생각하면서

각자의 수련을 하기


길었던 글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정말 다 관두고 싶을 때, 아무 것도 하기가 싫을 때, 모든 것이 너무나 막막해보일 때 도움을 받았던 글 하나를 공유하고자 한다.




  성 안에 있는 집에서는 밤나무를 심는 사람이 적은데, 윤 공은 집을 구할 때마다 밤나무 있는 곳을 선택했다. 그는 일찍이 나에게 말했다.


“봄에는 잎이 무성하지 않아 가지 사이가 성글어서 그 사이로 꽃이 서로 비치고, 여름이면 잎이 우거져서 그늘에서 놀 수가 있으며, 가을에는 밤이 먹을 만하며, 겨울이면 밤송이를 모아 아궁이에 불을 땔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밤나무를 좋아한다.”


  나는 말한다. 불이 마른 것에 잘 붙고 물이 축축한 곳으로 흐르는 것은, 성질이 같은 것끼리 서로 찾아가는 것이니 이치에 있어서 반드시 그러한 것이다. 대게 그 숭상하는 것이 같으면 물건이나 내가 다를 것이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왜 그런가 하면 하늘과 땅 사이에 나는 풀이나 나무가 모두 한 기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뿌리와 싹과 꽃과 열매가 어려운 것, 쉬운 것, 일찍 되는 것, 늦게 되는 것 등 가지각색인데, 오직 이 밤나무는 모든 나무 가운데서 가장 늦게 나며, 재배하기도 어렵고 기르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러나 자라기만 하면 쉽게 튼튼해지며, 잎이 매우 늦게 돋지만, 돋기만 하면 곧 그늘을 쉽게 만들어준다. 꽃이 매우 늦게 피지만 피기만 하면 곧 흐드러지며, 열매가 매우 늦게 맺히지만 맺히기만 하면 곧 수확할 수 있다. 그러니 이 밤나무는 모든 사물에 공통되는 차고 이지러지고, 줄어들고 보태는 이치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윤 공은 나와 같은 해에 과거에 합격했는데 그때의 나이가 30여 세였다. 그러다가 나이가 40세가 넘어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벼슬에 나아갔으므로 사람들은 모두가 늦었다고 하였으나, 공은 직무에 더욱 조심하며 충실히 했다. 그러다가 임금의 인정을 받아 등용되었는데, 하루 동안에 아홉 번 자리를 옮겨 대신의 지위에 이르게 되었으니, 이것은 별로 손질을 하지 않았는데도 무성하게 뻗어 나간 밤나무와 같다. 그 기틀을 세우는 것이 처음에는 어려웠으나 그 성취하는 것이 뒤에는 쉬웠으니, 이것은 밤나무의 꽃과 열매의 성질과 같은 바가 있다.


-백문보(1303~1374), <율정설(栗亭說)>

*EBS 수능완성(2016)




생명의 속도는 가지각색이다. 당신은 당신의 시간을 살아간다. 당신이 경험한 모든 것은 당신만의 나이테가 되어 쌓일 것이다. 한편 당신은 무엇을 숭상하여, 무엇을 기도하며, 무엇을 찾아가고 있는가. 자기주도학습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다. 공부는 언제나 '전보다 더 나은 나'를 바라고 바라보는 일이다.


꽃은 소리없이 핀다는 말이 있다. 꽃이 피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존재하며, 적절한 시기에 주어지는 물과 바람 그리고 햇빛도 필요한 것이다.


어쨌거나 인간은 희망 없이 살 수 없다. 동시에 인간은 자꾸 잊어버리는 생물이라서, 주기적으로 상기시켜줘야 한다. 이 글이 그런 역할을 하기를 바라며, 길었던 연재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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