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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댈 곳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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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Jul 28. 2023

집념: 뭐든 해낼 사람



집념(執念):
한 가지 일에 매달려 마음을 쏟음.
또는 그 마음이나 생각.

 

호제가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앞으로 쓸어내리며 다가왔다. 뭔가 즐거운 표정이다. 나는 중문을 열고 들어와 화장실로 직행했다. 호제도 나를 따라들어왔다. 나는 핸드세정제를 펌프질 해서 손을 씻었다. 호제는 내 옆에서 화장지를 덮은 스테인리스 커버에 비치는 자기 얼굴을 뚫어지게 본다. 손은 여전히 앞 머리카락을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리느라 분주하다. 그러고는 나를 쳐다보며 웃으며 얘기한다.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양쪽 입 꼬리가 하늘로 솟구쳤다.

 

“엄마! 내가 앞머리 잘랐다!”


(윙? 뭐라고?) 그러고 보니 앞 머리카락 가운데 부분이 짧아져 있었다. 어떤 기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댕강은 아니고 나름 숱을 친 느낌도 났다.

 

“학교에서 종이를 대고 가위질을 하면서 잘랐어.”


머리카락을 잡고 잘랐던 행동을 보여주며 말한다. 나중에 생각하니 종이 자르는 가위로 잘랐다는 말이었던 듯하다. 아닌가, 도면을 그렸나? 호제만이 알고 있는 순간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응? 종이를 이마에 댔다고? 종이 자르는 가위로? 어디서? 집에서? 학교에서? 언제?” 나도 모르게 폭풍 질문을 쏟아냈다.

 

“아, 급식시간에 잘랐어. 밥 먹고 남은 시간에 교실에서. 이렇게.”


호제는 변기 뚜껑을 덮고 그 위로 무릎을 꿇고 올라갔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며 어떻게 잘랐는지 시연했다.

 

“머리카락 자르면 머리카락이 떨어졌을 텐데, 그거 다 치웠어?”

“응, 다 치웠어. (히히)”

 

“나 어때?”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멋져. 그런데 가위 쓸 때 좀 위험하지 않았을까? 눈도 가깝고.“


위험이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호제는 화장실 밖으로 나가 기쁨의 몸짓을 시작했다. 두 발을 쫙 벌리고 양손을 하늘로 찌르기도 하고, 엉덩이를 양옆으로 위아래로 흔들기도 하고, 소파 위로 번쩍 뛰어오르기도 했다. 많이 기쁘구나, 우리 호제.

 

 


 

 

다음 날, 이번에는 호제 앞머리가 바가지 머리로 변해있었다. <검정고무신> 만화 주인공 같았다. 호제 취향은 아닐 듯했다. 조용히 말랑 할머니에게 물었다.


”호제 앞머리 잘랐어?”

”응, 내가 오늘 아침에 호제가 소파로 나와 누워 잠들었을 때, 앞머리 옆 부분 살짝 다듬었어.”


말랑 할머니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얘기했다.


“머리는 조금 더 있다가 깎으러 가면 될 것 같아. 너무 귀엽지?”

“응, 너무 귀여워. 사랑스러워.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호제는 본인의 앞머리가 다듬어진 줄 모르고 있었다. 어제 본인이 자른 앞머리에 여전히 만족하며 검지 손가락부터 새끼손가락까지 네 손가락을 가지런히 붙여 힘을 딱 주고, 앞머리를 반복해서 쓸어내렸다.


여전히 각자 만족 중이다.

호제는 호제대로.

말랑 할머니는 말랑 할머니대로.


이 모습을 바라보는 나도 즐거웠다.




작년에는 정국이처럼 한쪽 앞머리를 길게 자르고 싶댔다. 무수히 많은 머리 중 한쪽 더듬이 머리라니. 그 머리는 붙임 머리일 거라고 얘기랬다. 올초부터는 앞머리를 ㅅ 시옷 모양으로 자르고 싶어 했다. 5:5 가르마를 해봤으나 만족하지 않았다.


두 달에 한 번씩은 앞머리 이렇게 하는 게 어때?라고 물었다. 이번 달 머리 깎기 전에는 본인이 앞머리 가운데가 짧은 시옷 모양의 앞머리를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냐고 물었다.


난 솔직하게 대답했다. “호제는 2:8 가르마 해서 이마를 훤히 드러내는 게 멋져보여.” 그리고 하고 싶은 머리가 있으면 선생님께 직접 말씀드리라고 말했다.


호제는 머리를 깎으러 가서 선생님께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방학식을 하루 앞둔 2023년 7월 24일, 스스로 앞머리를 잘랐다.






내가 시옷 모양의 앞머리를 갖고야 말겠다는 마음. 그래서 기어코 해보는 행동. 아주 만족스러워하는 모습.

 

호제야, 난 이 모습을 보며 우리 호제가 뭐라도 해내겠다! 싶었어.

 

엄마니까 당연히 그렇게 보는 거 아니냐고?

그럼, 당연하지! 내 자식이니까 콩깍지가 당연히 씌었지.

 

그렇지 않더라도 “어떨까? - 하고 싶다 - 해볼까? - 해보자! - 했다! - 오! 감정을 느끼는 고리를 거쳐본 호제는 해낼 수 있어.


사람은 집념이라는 게 있거든. 다만 익숙함에 익숙해져 있어 집념을 잊고 있거나, 외면하기도 하지.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행동을 못하기도 하고.


그런데 호제는 행동을 했어!

앞머리를 스스로 잘라왔어!


모든 시도가 기쁨을 가져다주진 않을 수 있어. 그래도 해본 것과 안 해본 건 1과 0의 차이니까 혹시 지금 무언가 망설이고 있다면 우선 질러봐! (물론 지르는 것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생각해봐야겠지?! 이건 차차 얘기해보자.)


시작하면 뭐라도 해낼 호제니까.




해본 것과 안 해본 건
1과 0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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