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아직도 나는 아내가 궁금하다
사랑
흔히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한다. 정작 손 닿을 듯 가깝고 매일 함께 숨을 나누는 사람이라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나 역시 30년을 함께해 온 아내의 마음쯤은 능히 알 거라 믿었다. 아내가 기뻐할 일과 슬퍼할 일, 좋아하고 싫어하는 모든 것이 손바닥처럼 분명히 느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착각이었다. 어느새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했어도 아내의 마음은 여전히 아리송하고, 가끔은 멀리 느껴져 오히려 더 그리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
아침마다 내가 내어주는 따뜻한 차 한 잔. 아내는 여전히 깊은숨으로 그 향을 음미한다. 찻잔 너머로 내게 무언가 말하려는 듯 눈길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생각의 끝을 나는 알지 못한다. 눈앞에 앉은 아내의 모든 것이 손에 닿을 듯 선명한데, 그 마음만큼은 아득하게 멀다. 그녀의 고요한 표정을 보며 문득 떠올린다. 혹시 그녀는 무엇을 애써 감추고 있지는 않을까, 어떤 이야기를 혼자 품고 있는 건 아닐까.
아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함께 보며 나도 모르게 아내의 눈빛을 읽으려 노력한다. 기쁨이 번지기도 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순간마다 어쩌면 그 작은 감정의 파동은 그녀의 지나온 시간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알지 못했던 아내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진 않을까. 3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도 여전히 그녀의 표정과 마음결 하나하나가 낯설고, 그래서 더 애틋해진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매일 다른 얼굴로 내 곁에 있는 아내를 바라보는 순간, 일상이라는 이름 속에 그녀의 세상과 꿈들이 숨어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오늘은 무심코 걸친 스카프에도 아내의 추억이 스며 있고, 아무렇지 않게 내어준 한 끼 식사에도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느낀다. 그 모든 것이 사소하게 스쳐 지나가는 듯하지만, 그 속에 깊이 녹아든 아내의 마음을 다 알아가는 데엔 아마 평생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결국 아내가 궁금한 이유는 단순히 함께 살아온 세월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내게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늘 그래왔듯, 아내를 사랑하기에 더 알고 싶고,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깊어지는 걸까. 내 곁에서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나의 손을 잡아주는 그녀의 손길조차 매일 다른 감정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무심히 지나칠 뻔한 순간들이 모여 나의 하루를, 나의 인생을 더 부드럽고 깊게 채워주고 있음을 느낀다.
서로의 곁에서 오래 함께하며, 우리는 더 많이 이해할 거라 믿어왔다. 하지만 사랑은 다 알기에 더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알아가려는 끝없는 궁금증 속에서 자라나는 것임을 깨닫는다. 아직도 아내가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에 눈물짓는지, 그 한 걸음 너머에 있는 그녀의 속마음이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이 궁금함이 내 마음에 스며들어 매일 새로운 아내를 발견하게 하는, 또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는 사랑의 힘이라는 것을 느낀다.
“우리가 함께 걸어온 길이 길수록, 사랑은 더 많이 이해하는 것이 아닌, 서로를 더 알고 싶어 하는 끝없는 호기심에서 자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