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어깨, 넓은 마음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한 지 며칠이 지났다. 처음에는 별일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막상 병실의 하얀 천장 아래 누워 있는 시간이면 여러 생각들이 밀려들었다.
‘앞으로 제대로 걸을 수 있을까?’
‘일은 어떻게 해야 하지?’
‘몸이 불편해지면 아내에게 부담이 되진 않을까?’
한 가지 걱정이 들면,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걱정들이 꼬리를 물었다. 평소 같으면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하며 태연한 척 넘겼을 텐데, 병실에 홀로 남아있으면 그 조용한 틈을 비집고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내가 다가와 내 손을 조용히 잡았다. 가늘지만 따뜻한 손끝에서 안정감이 전해졌다.
"괜찮아, 괜찮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흔들림 없는 목소리였다. 마치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하듯, 아주 단단한 확신이 담긴 어조였다.
"이보다 더한 일들도 많았잖아. 이 정도 일 가지고 자기답지 않게 왜 그래?"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그녀일지도 모른다.
평소 같았으면 사람들은 온갖 걱정을 쏟아내며 안타까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스스로에게 온갖 부정적인 상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걱정 대신 오히려 다친 걸 핑계 삼아 푹 쉬라고, 이번 기회에 몸도 마음도 편하게 두라고 했다.
"괜히 걱정해서 더 아프지 말고, 그냥 좀 쉬엄쉬엄해. 일은 도망가지 않아."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어쩌면 아내는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아내는 작은 체구를 가졌다. 길을 걸을 때마다 바람이라도 불면 보호해줘야 할 것 같은 사람. 늘 내가 감싸주고 지켜줘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크고 중요한 일이 닥치면, 그녀는 누구보다 차분하고 넓은 마음으로 그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작은 몸 안에 웅장한 강인함을 품고 있었다.
예전에도 그랬다. 우리가 함께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순간들을 마주했다. 진급에 비선 되어 낙담하고 있을 때, 아이들이 아파 밤을 새우던 날들, 가족을 떠나보내고 깊은 슬픔에 잠겼던 시간들. 나는 언제나 나름대로 강한 척하며 앞장서려 했지만, 그 뒤에서 묵묵히 나를 받쳐주던 것은 아내였다.
"자기야, 내가 걱정하는 얼굴 하면 당신이 더 불안해질까 봐. 그러니까 그냥 덤덤하게 말하는 거야. 당신은 누구보다 어렵고 힘든 일 잘 견뎌내는 사람이잖아. 그리고 나는 그걸 아니까."
그 말이 내 마음을 울렸다.
나는 한 번도 아내를 연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나보다 강한 사람이라고 여기 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아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한 사람이었다. 작은 어깨 위에 커다란 마음을 품고, 어떤 상황이든 흔들리지 않고 버텨주는 사람.
아내는 스스로를 한 번도 ‘강한 사람’이라 말한 적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일상을 살아가며, 삶의 어려움을 담담하게 견뎌내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내게 가장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었다.
그날 밤, 병실의 불을 끄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병원 복도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소리, 희미하게 깜빡이는 가로등 불빛. 그리고 그 옆에서 조용히 내 손을 잡고 있는 아내의 온기.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되뇌었다.
"이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다."
아내는 여전히 내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손끝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은, 단순한 온기가 아니라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힘이 되었다.
나는 이제 알 것 같았다.
진정한 강함이란,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곁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작은 체구에도 넓은 마음을 품고 있는 아내처럼, 삶의 어려움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강인함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참 다행이고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