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또 다른 이름
내게 집밥은 단순히 집에서 먹는 한 끼 식사의 의미를 넘어선다. 그것은 내게 아내의 따뜻한 손맛이며, 가족이라는 정겨운 울타리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깊고 은은한 사랑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집밥의 의미를 가장 절실히 깨달았던 순간은 군 생활 초급장교 시절이었다.
그 시절엔 외식이라 해봤자 자장면 한 그릇조차도 마음 편히 먹기 힘든 형편이었다. 동료들 대부분 부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지만, 나는 유난히 도시락을 자주 싸들고 다녔다.
처음엔 그저 외부음식들이 입맛에 맞지 않거나 불편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도시락 속 아내의 손맛에 깊은 애착이 생겼던 것이다.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마다 나는 다른 이들이 느낄 수 없는 소박한 행복과 위안을 맛보았다.
어느 날, 함께 근무하던 동료가 도시락을 보며 장난스레 말했다.
“아니, 자네 도시락은 무슨 매일 잔칫상이야? 그렇게 맛있어?”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에게는 평범한 도시락일 뿐이겠지만, 내게는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귀한 보물이었기 때문이다. 찰밥이며 콩밥, 오곡밥 같은 다양한 밥들과 부침개, 소고기뭇국, 미역국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반찬들이 돌아가며 내 도시락 속에 담겼다. 때로는 화려하고 때로는 소박했지만, 언제나 변하지 않는 건 아내의 정성과 마음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는 집밥보다는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서 가끔은 그 시절 도시락을 싸주는 일이 아내에겐 혹시나 부담이 아니었을까 미안해진다. 요즘도 가끔 아내와 마주 앉아 그때 이야기를 꺼냈을 때 말한다.
“사실 그때는 도시락을 싸주는 게 당연한 일인 줄만 알았지. 내 손으로 싸준 밥이 당신한테 그렇게 특별한 줄 몰랐어.”
“특별하지. 당신이 아니면 그런 맛이 안 나니까.”
내 말에 아내는 조금 쑥스러운 듯 미소 지었지만, 그 미소 안엔 오랜 세월 함께 쌓아온 깊은 애정과 보이지 않는 믿음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아내의 손맛은 내 입맛에 안성맞춤이었다. 그 손맛을 떠올리기만 해도 여전히 마음 한편이 따스해진다.
오늘 점심 도시락 메뉴가 삼계탕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뚜껑을 여는 순간 피어날 그 따뜻한 향기와 부드러운 고기의 맛, 그리고 그 모든 것들 속에 담긴 아내의 정성 어린 마음을 상상하면, 마치 옛날처럼 다시금 내 옆에서 아내가 함께 식사하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이제 나는 안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은 그저 한 끼 식사를 넘어 인생의 위로이며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세월이 흐르고 환경이 달라져도 아내의 집밥은 내게 언제나 힘과 사랑을 주기에 충분하다.
"집밥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