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아직 아침이라 부르기에도 이른 시간, 어김없이 위층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윙~윙~, 드르륵드르륵. 진공청소기의 일정한 굉음이 천장을 타고 방 안 가득 퍼져 나온다. 이제는 알람처럼 몸에 익어버린 소리. 눈꺼풀 위로 얹힌 피곤함을 애써 붙잡아 보지만, 청소기의 진동은 더 이상 꿈속의 방해물이 아니다. 완벽히 나를 현실로 끌어올린다.
시계를 보면 아직 6시가 채 되지 않았다. 아침이라기보단 새벽, 어둠이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은 그 시간. 어김없이 시작되는 그녀의 아침 루틴은 우리의 하루를 잠에서 깨운다.
30분쯤 지속되는 이 소리에, 이제는 나도 익숙해져 버린 듯하다. 그러나 익숙해졌다고 해서 덜 피곤한 것은 아니다.
청소기 소리와 함께 이어지는 또 하나의 소리.. 마치 성악을 하는 듯한, 때로는 노래교실에서 배운 것을 복습하는 듯한, 당당하고 거침없는 노랫소리. 그 높은음이 마치 내 머리맡에서 울리는 듯하다. 처음 들었을 때는 웃음이 나왔다. 이른 새벽부터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이 있다니. 하지만 그 웃음도 잠시, 매일같이 반복되는 소리에 어느 순간부터는 피곤함이 짙게 배어들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쓰이는 것은 아내다.
아내는 평소 잠에 예민한 사람이다. 작은 소리에도 금세 잠을 깨고, 한 번 깨어나면 다시 잠드는 데 오래 걸린다.
나는 아내가 오늘도 이 소리에 잠에서 깨 뒤척이고 있을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자기야, 또 깼어?”
작은 목소리로 아내를 부른다.
“응, 뭐… 그냥.”
아내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대답한다.
“내가 윗집에 한번 말해볼까? 한두 번도 아니고.. 이건 좀 심한 거 같아. 이제 좀 조용히 해달라고 해야겠어”
나는 속이 답답해서 꺼낸 말이었다.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냥 놔두자. 말해도 바뀔 것 같지도 않고, 괜히 우리도 더 신경 쓰이게 될 거야. 아침에 잠깐 그러는 건데… 참으면 되지, 뭐.”
아내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나 같으면 벌써 올라가 정중히라도 요청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언제나 그렇듯 조용히, 묵묵히 넘긴다. 그런 아내의 마음을 나는 종종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오늘은 그 조용한 배려 속에 담긴 마음이 조금은 느껴진다.
아내는 말한다.
“누구나 자기가 사는 방식이 있잖아. 저 사람도 그게 습관이고, 일상이겠지. 물론 우리가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화내서 달라질 게 없다면 그냥 마음을 다스리는 게 낫지 않을까?”
아내의 말은 쉽지 않은 결심이었다. 나 같으면 이미 불쾌함을 드러내고, 방법을 찾으려 했겠지만, 아내는 그저 그 시간만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나를 더 생각한다.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견딘다. 어떤 이는 목소리를 내어 세상을 바꾸려 하고, 또 어떤 이는 조용히 자신을 바꿔 세상을 견뎌낸다. 아내는 후자의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내의 방식을 조금씩 배워간다.
층간소음, 그 흔한 일상이 오늘도 나를 깨운다. 하지만 오늘따라 그 소리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아내의 말이었다.
삶은 때때로 참아야 할 일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참음이 무작정 억누름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배려라면, 그 시간은 덜 고통스럽다.
오늘도 위층의 소리에 눈이 떠졌지만, 아내의 묵묵한 인내 속에서 나는 또 한 번 배운다. 참는다는 것은 약한 것이 아니라, 더 큰 사랑을 품는 또 다른 방식이라는 것을.
한 줄 생각 : 때로는 세상을 바꾸기보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더 큰 용기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