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며칠 전부터 아내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허리 한쪽이 불편한지, 걷거나 앉을 때마다 작은 신음이 섞인다. 몸을 가누는 그녀의 표정에서 참는 듯한 인내와 익숙한 체념이 비쳐 보인다.
조심스레 묻는다.
"많이 아파?"
아내는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조금 불편한 것뿐이야. 금방 나아질 거야.”
그 말이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나는 안다. 허리 통증이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 걸. 한때 나도 허리 디스크로 병원 신세를 지며 오랜 시간 통증과 싸웠던 기억이 있다. 몸을 구부리는 것조차 겁이 났고, 침대에 누워 끙끙 앓던 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내는 하루 종일 약국에서 서서 일한다. 약조제를 보조하고, 손님을 맞고, 짧은 틈에도 앉아서 쉬지를 않는다. 그 작은 체구로 하루의 무게를 온전히 견디는 일상. 그런 아내에게 허리는 생명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허리가 흔들리고 있다.
나는 여러 번 말하고 싶었다.
"병원에 가자"라고. "제대로 진료를 받아보자"고. 하지만 아내는 매번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약 먹으면 나아질 거야.”
“그냥 파스 붙이면 괜찮아.”
그런 아내의 모습은 어릴 적 봤던 우리 부모님 세대와 닮았다. 자기 병은 스스로 잘 안다며, 괜히 병원 가서 대수롭지 않은 걸 키우지 말라던 그 모습.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견디던 그들의 삶.
아내도 그렇게 살아왔다. 힘든 일도, 아픈 몸도, 가끔은 숨겨두고 가볍게 넘기려 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 웃음 뒤에 숨겨진 아픔을. 그 무심한 말 뒤에 꾹꾹 눌러둔 고통을.
저녁이 되어 침대에 누워 조용히 허리를 두드리는 아내를 바라본다. 나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혹시…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아내는 여전히 웃는다.
“응, 정말이야.
조금만 더 쉬면 괜찮아질 거야.”
나는 더 묻지 않는다. 아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섣부른 권유보다는 조용히 곁에 머물러주는 것. 그게 지금 아내에게 가장 필요한 일일 테니까.
아내의 아픔을 바라보는 하루는 길다. 묻지 않아도 느껴지는 불편한 몸짓. 표정에 드러나는 미묘한 일그러짐. 한 손으로 허리를 감싸 안으며 터트리는 깊은 한숨. 나는 매 순간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지금은 말보다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억지로 끌어내려하지 말고, 묵묵히 아내 곁에서 지켜봐야 한다고.
그리고 필요할 때는 가장 조용한 목소리로 건네야 한다. "힘들면 말하고, 참지 않아도 괜찮아."
아내가 다시 맑게 웃는 그날까지. 통증이 멀어지고, 그녀의 하루가 다시 가벼워질 때까지. 나는 그렇게 오늘도 아내의 아픔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낸다.
한 줄 생각 : 진짜 사랑은, 말하지 않아도 아픔을 알아보는 것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