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나 사람이나 필수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베란다 난간을 스치며 식물들의 하루를 깨우는 시간. 그곳에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자라고 있는 파프리카 한 그루가 있다. 1년 전, 아무런 기대도 없이 심었던 씨앗 하나였다. 처음엔 그저 흙 위에 놓인 작은 생명이 이토록 신기하고 귀할 수 있나 싶었다. 잎사귀 몇 장이 나고, 줄기가 조금씩 자라나면서 매일의 관심이 그 아이에게로 쏠리기 시작했다.
“얘 봐, 오늘은 잎이 더 커졌지? 잘 자라줘서 고마워.”
아내는 늘 아침마다 파프리카 앞에 서서 말을 건넨다. 그 말투는 마치 아이를 다독이는 엄마의 목소리처럼 다정하고도 애틋하다. 아무리 바쁜 날에도 빠지지 않는다. 물을 주면서 손끝으로 잎을 쓰다듬고, 줄기를 가볍게 만지며 이렇게 속삭인다.
“넌 참 예쁘다.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마워. 진짜 대단하다.”
처음엔 그저 웃으며 바라보았다. 식물에게 말을 건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싶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 ‘말’이, 그 따뜻한 ‘기운’이 이 작은 생명에게 힘이 되었던 것이다. 첫해에는 이렇다 할 열매 없이 그저 잎만 무성했지만, 올해엔 달랐다. 파프리카는 스스로를 증명하듯 푸르고 단단한 열매 하나를 내어주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대견하고 놀라웠는지, 한참을 바라보다가 사진도 찍고, 괜히 몇 번 더 칭찬을 해주었다.
“이게 다 당신 덕분이야. 매일 아침마다 칭찬해 줘서 그런 거 아닐까?”
내가 건넨 말에 아내는 웃으며 대답했다.
“식물도 알아듣는다니까. 말에도 온기가 있잖아. 누가 자기를 예뻐해 주고 아껴주는지 모를 리 없지.”
그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삶도 그렇다. 누구에게나 성장의 속도는 다르고, 열매를 맺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꾸준한 관심과 따뜻한 시선, 그리고 믿어주는 마음이 있다면 결국은 단단한 결과를 맺는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정성과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이 파프리카 한 그루가 말해주고 있다.
올해 처음 맺힌 열매는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마치 고요하게 울려 퍼지는 응원의 메아리 같아서, 매일 아침 그 열매를 바라보는 시간이 우리 부부에게도 따뜻한 위로가 되어준다.
한 줄 생각 : 작은 씨앗도, 따뜻한 말 한마디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