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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머물다 간 자리

따뜻한 집

by 서담

오랜만에 딸이 집에 온다는 소식에 집안이 잔잔한 설렘으로 물들었다. 시집간 딸은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지만, 주말부부라는 현실 속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얼굴을 보지만, 그것도 늘 짧고 바쁜 시간 속에 스쳐가는 만남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무려 4일, 그것도 모처럼 받은 휴가기간 동안 딸이 집에 머문다는 소식에, 우리 부부는 은근한 들뜸을 감추지 못했다.


“밖에서 맛있는 거 먹을까? 지난번 먹었던 소고기집 어때” 하고 내가 말하자 아내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번엔 내가 집에서 해줄래. 딸도 좋아할 거야.”


그 말에 이유가 따로 필요 없었다. 식탁은 금세 딸을 위한 정성으로 차올랐다. 여느 날보다 많은 반찬은 아니지만, 딸이 좋아하기도 하고 가족이 가끔 함께 즐겨 먹던 소고기 샤부샤부였다. 직접 만드는 소스가 일품인. 딸은 한입 한입 천천히 음미하며 말했다.


“엄마, 이건 언제나 한결같이 맛있는 것 같아. 너무 좋아~역시 엄마 음식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아내는 미소 지으며 딸의 그릇에 고기며 야채를 얹어주며 대답했다. “맞아. 넌 입맛이 없다고 하더니, 결국 마지막까지 음식을 남기지 않고 모두 비웠었지.”


그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엄마의 요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딸을 향한 기억과 사랑이 오롯이 담긴 시간의 그릇이라는 걸.


밤이 깊어질수록 집 안은 더 따뜻해졌다. 딸과 아내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살짝 방문을 열어 보았다. 딸이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엄마, 나 요즘 아이들 그림수업 하면서 가끔 엄마 생각이 나.. 우리 키우면서 쉽지 않았겠구나 하고.”


아내는 딸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조용히 말했다.

“살다 보면 힘든 날도 많고, 외로운 날도 있지. 집에 오고 싶고, 보고 싶을 땐 언제든 집에 와. 네 자리는 항상 여기 있으니까.”


그 말에 딸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문틈으로 보였다.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나는 참 많은 위로를 받았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단지 먹이고 재우는 일이 아니었다. 아이의 마음이 지칠 때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부모의 몫이었음을, 아내는 말없이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네 식구가 한 지붕 아래에서 밥을 먹고, 늦은 밤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는 일이 이렇게 따뜻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아내는 말없이 손끝과 눈빛으로 사랑을 전하고, 딸은 그 사랑을 오래도록 간직한 듯했다.


시간은 흐르고, 딸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떠난 자리엔 남은 사람들의 아쉬움이 스며들었지만, 함께 보낸 4일은 우리 마음속에 길게 여운을 남겼다. 언제든 돌아와도 좋을, 따뜻한 ‘집’을 지켜주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역할임을 다시금 느꼈다.



한 줄 생각 : 사랑은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지켜주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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