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안은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가에 대해 생각했던 때가 있다. 그것에 대한 궁금증이 극에 달했을 때, 내가 선택한 방법은 나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나의 불안을 알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나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가장 최근의 기억까지. 나는 그에게 그때의 내가 갖고 있던 '나'에 대한 기억들을 하나하나 토해냈다. 슬프게도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은 슬픔과 불안을 품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버려진 적이 없으면서도, 문득 버려졌던 것은 아닌가 의심했던 순간들. 단 한 번의 실수에도 지옥을 맛보았던 기억. 생의 앞으로 향할 때마다 새로운 절망이 또 다른 얼굴로 기다리던 순간까지. 그때 내가 쏟아낸 것들은 그런 이야기-불행과 불안이 엉킨 기억들- 뿐이었다. 나는 그런 기억들과 싸우고 있었다.
지친 마음은 불안을 끌어당겼고, 나는 늘 그런 불안에 휘둘렸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기억들이 눈앞에 아른거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애썼을 것이다. 그건 일종의 투쟁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쳐 있었다. 죽어버린 마음은 더 이상 싸울 힘을 남기지 않았다.
말을 한다는 것에는 한 가지 장점이 있다.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다 더 이상 끄집어낼 수 없게 되면, 비어버린 그곳을 새로운, 혹은 잊힌 기억들이 채우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비어버린 자리에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들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긴 골목을 뛰어다니던 순간, 날아가는 풍선을 보며 울음을 터뜨렸을 때 누군가 대신 풍선을 잡아다 주었던 기억,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 서 있을 때, 앞집 할머니의 방에 누워 있었던 일. 할머니가 건넸던 따뜻한 보리차와 달콤했던 귤. 그런 온기로 가득한 기억들이 뉴런을 타고 머릿속에 퍼져나갔다.
그때 나의 생에도 분명 온기가 존대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나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는 것을. 그날의 거리는 오늘처럼 파란 하늘을 머금고 있었다. 나는 새롭게 태어난 것 같은 감각을 느꼈고, 좀처럼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 감각은 오래된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군의 마음에 가까웠을 것이다.
요즘 부쩍 나는 지금을 견디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리 따뜻했던 기억을 떠올려도 불안은 틈을 타고 다시 찾아왔고, 그럴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휘청였다. 나는 스스로를 붙잡아야 했다. 그리고 나를 구하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결국 스스로 휘청이는 발을 한 번 더 앞으로 내딛는 수밖에 없었다. 견딘다는 것은 거창한 승리가 아니라, 아주 작은 균형을 하루하루 다시 찾아가는 일에 가깝다.
그 균형을 맞추는 것은 방학 숙제처럼 느껴진다. 미루고 미루다가 더는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그 과정은 예상치 못한 우당탕거림이 섞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어설프게라도 균형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런 불완전한 균형의 모습이 나라는 사실을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