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단히도 애를 쓰는구나.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분은 어땠는지, 왜 슬펐고 왜 기뻤는지 같은 것들을 천천히 되짚는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버스를 타야 한다. 너무나 익숙한 길이다. 경복궁역 3번 출구를 지나 스타벅스를 스쳐,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그 길.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고향을 오갈 때마다 지나쳤고, 친구들과 전시회를 찾을 때도, 가을과 봄이 올 때면 오래 걸어 다녔던 그 길이다.
버스는 부암동을 지나치는 것과 곧장 달리는 노선이 있다. 부암동을 거치는 버스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지만, 나는 가끔 그 풍경을 보기 위해 일부러 그 길을 선택한다. 부암동으로 올라가는 언덕길, 거기서 바라본 서울의 전경을 처음 봤을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나는 이 도시에 대해, 그리고 이곳에서의 나날에 대해 부풀어 옳은 기대를 가득 품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주말마다 비가 내렸다. 지난주에는 비가 온 뒤 갑자기 날이 추워져 패딩을 꺼내 입어야 했다.
우박이 떨어지던 순간엔 헛웃음이 나와, 그냥 길모퉁이에 서서 가만히 비를 맞았다. 벚꽃이 피고, 지는 동안에도 함박눈이 내렸고, 강한 바람에 몸이 흔들리기도 했다. 오락가락하는 날씨 덕분에 내 마음도 오락가락해 버려서 아주 사랑을 하는 사람처럼 지냈다. 마음은 하루에도 행복했다 슬퍼졌다, 잠시 날이 개면 상쾌해졌다가 비가 내리면 금세 우중충해지는 마음. 내 마음은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지 혼자만 아주 바쁘게 산다.
'이번 주말에도 비가 온대요.' 지인과 일상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그가 말했다. 자기는 이번 주말엔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을 거라며, 비 오는 날에는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나는 나 역시 침대에 꼭 붙어 있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오늘이 되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침대 위에서 하루를 보낼 작정이었는데, 눈을 뜨자마자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먼지를 눈앞에서 마구 흔드는 것처럼, 화장실 벽에 퍼져가는 곰팡이처럼 답답하고 지저분한 기분. 하는 수 없이 침대와 이별하고, 낮 동안 몸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쌓인 빨래를 돌리고, 화장실에 락스를 뿌리고, 문지르고, 쌓인 먼지를 털어냈다.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려왔다. 이따금 강한 바람이 들어왔다. 그렇게 방 안은 비 냄새와 락스 냄새가 섞이고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창밖을 보다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몸을 움직인 거, 해치울 것들을 모두 끝내야겠다는 마음에 미용실을 예약했다. 이정도 날씨라면 움직이기 불편하진 않겠다 싶었다.
잠시 외출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나는 이런 순간에도, 나름대로 잘 살아내고 있구나.' 비가 오든, 눈이 내리든, 바람이 불든. 해야 할 것들을 끝내면서, 그렇게 지금을 살아낸다.
(Photo by Nur Andi Ravsanjani Gusma: https://www.pexels.com/photo/selective-focus-photography-of-corrugated-metal-sheet-of-house-during-rainy-daytime-1915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