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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고바른 Nov 19. 2023

나의 열두 살

나라는 최고의 적

1. 까만 밤의 기억


오래된 기억 속, 나의 모습은 대체로 밝고 활기찼습니다. 마치 삐삐롱스타킹이 된 것처럼 쉼 없이 집 안팎을 돌아다녔더랬지요. 당시에 살 던 집은 <응답하라 1988>에 나올 것 같은 전형적인 단독주택이었지만 곳곳에 마음에 드는 장소와 기억이 가득해서 추억만으로도 책 한 권은 쓸 수 있을 겁니다. 한 살부터 일곱 살까지 그곳에 살았으니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요.

  

극 중 정환의 엄마(라미란) 만큼이나 호기롭고 걸걸했던 나의 엄마는 육아관이 확실해서 그 시골에서 '애 잡는다'라는 욕을 먹으면서까지 '프랑스 육아'를 실천했습니다. 금방 잠에 들어버리는 동생과는 달랐던 나는 까만 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죠. 밤이 되면 유독 크게 들리는 시계소리와 어쩐지 달리 보이는 인형들, 치워도 자꾸만 생기는 벽 구석의 거미줄까지 훑어보았고, 즐겁게 놀았던 오늘을 회상하고 낮에 들었던 동요를 마음속으로 부르며 가사의 뜻을 곰곰이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밤이 도저히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은 침대에서 일어나 머리맡의 창문으로 올라갔습니다. 널찍한 공간은 차가웠지만 포근했습니다. 가까이 보이는 나무들은 바람 소리를 내며 흔들렸지만 저 멀리 보이는 별과 은하는 신비로웠어요. 무엇보다 그들이 나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이 밤, 너는 혼자가 아니야. 

사진: Unsplash의Adam Mescher


2. 취미는 몽상, 특기는 잊기


잠이 오지 않는 밤을 견디며, 잠에 들지 않고도 꿈을 꾸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열두 살의 나는 한창 사춘기였고 엉뚱한 상상과 생각은 한계를 모르고 확장했지요. 상상은 때와 장소 구애 없이 내 머릿속에 이야기를 펼칠 수 있었고, 사실 한번 시작한 생각은 끊기 어렵기도 했습니다. 특히 버스를 타고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 옷차림, 행동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과거와 미래를 추리하거나, 멀리 지나가는 풍경들을 보며 자주 생각에 잠겼습니다.

 

진작에 잃어버리기 대장이었던 이유는 아마도 나의 이런 취미와 관련이 있었을 겁니다. 잠이 오지 않아 겨우 잠들었던 밤도 마찬가지죠.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노트에 옮겨 적게 되었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어 적으니 실제로 머리가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았고요.


글로 옮기니 그 세계를 더 견고히 만들 수 있었고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반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뭔가를 배운 적은 없지만 채워지는 글자들 보며 자연스럽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사진: Unsplash의drown_ in_city


3. 나라는 최고의 적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기에,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은 금세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유난히 밝고 씩씩했던 아이는 불행하게 눈치가 없었거든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지자 이럴 다할 이유도 모른 채 점점 빛을 잃어갔지요. 일상적인 대화를 알아듣는 것도 어려울 때가 많았고,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내게 흔한 일인 만큼 상대방의 말을 서로 오해하는 일은 모두에게도 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해받고 유쾌하지 않은 기분도 다들 느끼는 감정이라 생각하고 그냥 견뎠어요.


그 때에 할 수 있던 해결책은 별로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불필요한 말을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소극적인 사람이 되었고 마음을 열어 다가서지도 못했어요. 당연히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되어만 갔습니다. 세상을 배우려 아무리 애를 써도 가장 낮은 장애물조차 넘지 못하는 사람이요. 깜깜한 세상 속 생각들은 작은 등불과 같았습니다.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 건 같지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지요.

사진: Unsplash의Leon Contreras

까만 밤의 기억

여러 까만 밤,
창 밖에 빛나는 별.

환해진 방,
마음을 비추는 글.

오늘 밤은
무엇으로 잠에 들까?


모두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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