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산책 Oct 05. 2020

프랑스는 문화 강국이다?
식민지로 일군 '예술의 나라'


"프랑스 가수들은 형편없어. 도대체 들을만한 노래가 없어" BTS 광팬인 프랑스 조카가 한 말이다.
 
 중학생인 조카는 K-팝을 듣기 전에는 미국 팝을 들었다고 했다. 프랑스에는 좋은 노래들이 없다는 이유였다. 고등학생인 다른 조카에게 물었다. 남학생인 조카는 프랑스 청소년들은 대부분 미국 팝을 듣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유명한 팝 가수들을 줄줄 읊는다. 왜 프랑스 팝을 듣지 않냐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은 같았다. 청소년들뿐이 아니었다. 시누이와 아주버님 세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좋아한다는 프랑스 노래는 오래전 유명했던 옛날 샹송 몇 곡이 다일 뿐 대부분 영미권의 팝과 록그룹들 노래였다. 
 
 아이가 유튜브에서 한 동영상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프랑스 최고 인기 가수’라고 했다. 조악한 패션으로 치기 어린 랩을 읊어 대는 힙합 가수. 프랑스 최고 가수라는 그들은 노래와 패션은 물론이고 뮤비 퀄리티부터 수준이 한참 떨어져 있는 게 한눈에 보였다. 어떤 메세지도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는 감흥 없음. 그들 모습을 보고 바로 알 수 있었다. 프랑스 아이들이 미국 팝을 듣고 BTS에 빠지는 이유를 말이다.
 
 실제 프랑스는 샹송 인기가 시들해져 프랑스 가수들은 영미권으로 진출해 영어로 앨범을 내고 젊은 세대들은 더이상 샹송을 듣지 않는다. 그들에게 샹송은 정체된 느낌을 주는 ‘지루한 노래’기 때문이다. 위기를 느낀 프랑스 정부는 1996년 ‘샹송 쿼터제’를 도입하여 프랑스 모든 라디오 방송에서 40%는 반드시 샹송을 틀도록 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라디오들은 난색을 표한다. 40%를 채울 노래들이 없을뿐더러 청취율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자 음악 시대에 샹송 고수 정책이라니. 확실히 시류에 역행하는 마인드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와 그녀의 삶과 샹송을 찬양한 영화 '라비앙로즈'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2019년 6월 BTS 프랑스 스타디움 공연 "BTS가 stade de france를 점화했다". 프랑스 십대들은 BTS와 미국팝을 듣는다

 

 음악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일본 문화에 광범위하게 노출된 채 살아간다. TV에서는 일본의 유명 애니들을 정기적으로 방영하고 서점에는 ‘망가’라 불리는 일본 만화책들이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프랑스 십대들은 망가에 푹 빠져 지내며 자연스럽게 일본을 동경하며 자란다. 일본 만화가 ‘아스테릭스’ 같은 진부한 프랑스 얘기들보다 훨씬 ‘트랜디’하고 ‘세련된 문화’로 받아들여지며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프랑스 아이들은 미국 팝을 듣고 일본 만화를 보며 자란다. 가장 민감하고 예민하게 흡수하는 시기인 청소년기에 정작 ‘프랑스의 자국 문화’가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아이들만의 현상이 아니다. 당장 시댁 가족들부터 모두가 ‘미드’ 팬이다. 새로 나온 미드 시리즈에 눈을 반짝이며 서로 DVD를 돌려볼 만큼 프랑스인들은 미국 드라마에 열광한다. 프랑스 드라마는 그만큼의 탄탄한 스토리와 독창성이 떨어지기에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어서’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세계 최초로 스크린 쿼터제를 도입한 ‘영화를 발명한 나라’다. 그러나 '누벨바그'라는 영화 황금기를 보내며 세계 영화를 견인했던 프랑스 영화는 현재 초라하게 연명하는 수준이다. 한국의 스크린 쿼터제보다 훨씬 강력한 지원과 보호 정책에도 오래전부터 활력을 상실해 있다. 프랑스내 자국 영화 점유율이 형편없이 떨어지자 한국의 ‘제도’를 벤치마킹하겠다고 나선다. 한국의 자국 영화 점유율이 50%인데 반해 프랑스는 37%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 영화사 MK2 창업주 말처럼 "영화의 질이 따라가지 못한다" 

프랑스의 모든 서점에는 한쪽벽면 통째로 '일본 만화' 코너가 있다. 프랑스 웹툰(BD)시장 1위를 차지하는 일본 만화(38%)
철저히 일본적 시각으로 만들어진, 프랑스 누벨바그 거장 알랭 레네 영화 <히로시마 내사랑>, 힘이 넘치고 독창적인 한국 영화의 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황금종려상


  프랑스 영화의 추락은 ‘컨텐츠 질의 하락’에 있지 제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프랑스 영화는 참신함이 떨어지고 재미가 없어진지 오래다. 그것은 청소년들을 일본 만화와 미국 팝에 빼앗긴 이유와 같다. 바로 ‘컨텐츠의 부재’이것은 프랑스 문화 전반의 쇠락과 닿아 있다.

 
 아무리 칸 영화제를 개최하고 미술 비엔날레를 주최하여도, 그들 자신이 축제의 주인공이 되어 화려한 조명을 받는 시기는 지난 것이다. 이러한 ‘문화 파워의 축소’를 체감하는 프랑스인들은 전혀 기쁘지가 않다. ‘세계 최고 문화대국’이란 수식어는 언제나 자신들에게만 해당하는 특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때 세계를 호령하는 초강대국이었고, 유럽의 모든 왕실과 사람들이 너도나도 그들을 모방하기에 바빴던 달콤함을 누렸기 때문이다. 
 
 프랑스어는 영어가 부상하기 전까지 오래도록 ‘세계공용어’ 자리를 차지했었고 세상의 모든 법전들은 ‘프랑스 민법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모든 유럽이 프랑스 왕실 패션을 따라했고 프랑스 문학은 ‘세계 고전’의 자리를 차지했으며 프랑스 미술은 ‘세기의 작품’으로 인식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소유하고 자국 언어와 문화가 지구 구석구석까지 뻗어 있던 시기. 르네상스 시절부터 20세기 초까지의 400년간, 프랑스인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임무’라 믿었고 그러한 스스로의 모습에 도취되어 있었다. 태평하고 풍요롭고 ‘아름다운 시절’, 벨에포크(Belle Epoque)라는 말은 그들이 얼마나 그때를 그리워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계의 중심'이라 믿었던 절대군주 루이 14세 때부터 시작된 '프랑스 문명화 사업'. 프랑스는 세계 곳곳에 '프랑스를 심고자' 했다
풍요롭고 평화로웠던 '벨에포크' 시절의 프랑스. 그들이 누린 '부와 예술'은 식민지라는 거대 시장으로부터 왔다

 

 그러나 프랑스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시절의 ‘부와 영광’은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닌 ‘식민지 침탈의 결과’였다. 절대 왕권으로 시작된 강력한 권위주의 통치와 중상주의 정책은 결국 ‘남의 것을 빼앗아 내 곳간을 채우는’ 콜베르티즘이었고 그것이 줄곧 이어져온 것이 프랑스의 문화 예술 정책이었다. 프랑스는 자국의 모든 예술과 문화의 확대를 '왕실의 부'를 채우는 ‘산업 전략’으로 보았으며, 루이 14세의 공격적 예술 정책과 19세기의 상업자본으로 더 큰 국가 개입을 가져왔다. 그 결과 프랑스는 ‘예술의 나라’라는 명예를 획득했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엄청난 문화적 정체성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프랑스는 어떠한 문화를 가졌으며 어떠한 예술이 있는가. 세계 만화 시장은 한국 웹툰이 견인하고 한국 드라마가 넷상의 세계를 점령했음에도 철 지난 일본 만화와 미드가 여전히 ‘최신 문화 아이템’인양 보급되고 소비되는 나라. 프랑스가 얼마나 변화에 둔감하고 시류에 뒤떨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을 정확히 보여준 척도가 ‘BTS를 받아들인 순서’였다. 세계 트랜드 지표인 그들을 가장 먼저 ‘알아본 곳’은 서구 사회 중 가장 개방적인 미국이었고, 그 다음이 보수적인 영국이었으며, 유럽 국가들 중 가장 늦게 받아들인 나라가 프랑스였다. 자국 문화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과 ‘강력한 문화 쇄국 정책’ 고수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이 ‘타문화에 관심이 없고 무지한’ 우물 안 개구리인 것도 이런 ‘폐쇄적인 문화 정책’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들이 ‘프랑스 문화 확산’에 주력하던 시절에도, 타문화에 대한 동경을 오로지 ‘제국주의 정당화 야욕에 이용’하였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1906년과 1931년 프랑스 '식민지 박람회' 포스터. 132년간 지배했던 알제리인의 '프랑스 동경'을 보여주고, 86년간 지배했던 캄보디아 여인을 '성적 대상'으로 표현하였다
프랑스의 식민역사는 16세기부터 시작되었으며 2차 대전 종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시절'은 식민 지배를 당하던 나라들에게는 '착취와 학살의 시대'였다

 

 프랑스의 미술이 문학이 패션이 영화가 한 시절을 풍미한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그들은 ‘앞서 나갔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하게 한 동력은 ‘자본’이었으며 그것은 식민지라는 거대 시장, 그들의 식민지 수탈로부터 왔다. 배가 부르기에 할 수 있었던 것. 예술의 발전 역시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벨에포크(아름다운 시절)’의 시작과 끝은 정확히 그들이 식민제국을 소유하고 있던 때와 일치한다. 수탈이 끊긴 자리의 프랑스 예술과 문화가, 더욱 초라해 보이는 이유다.
 

 
 











* 참고 자료 : 루이 14세 문화예술 정책, 정치 헤게모니 잡기 위한 콜베르 전략 http://asq.kr/rGLBj77Zotra, 프랑스 미술 발달은 콜베르티즘 결과  http://asq.kr/xKD5BwwDrt45, 제국주의 시대 그림들 근간은 '식민주의' http://asq.kr/eXk6SE0UpuXV, 식민지화, 제국주의 환상 심어주는 도구 http://asq.kr/YR4VCZkxwDop루이 14세 국가주도 문화사업 http://asq.kr/4S4OVl1wI7dgD, 콜베르, 예술가들을 조직화하다 http://asq.kr/e45vKA3lJsyl, 일본 만화 프랑스 웹툰시장 점유율 1위 http://asq.kr/r5iexw0rMIQC프랑스 샹송 쿼터제 도입 기사 http://asq.kr/vA5Xc12TOGr5, 난감한 프랑스 라디오들 http://asq.kr/1ZKMLGAHfqQu, 한국 스크린쿼터제 배우자는 프랑스 http://asq.kr/FetwM4diS7nl, 추락하는 프랑스 영화 http://asq.kr/wqOI0EYJaXd6, 주요 영화산업국가 자국 영화 점유율 현황 http://asq.kr/pD1HmP5KwZV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