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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Oct 07. 2020

위대한 프랑스 예술?
카뮈와 고갱의 불편한 진실


 예술을 전면에 내세워 ‘이미지를 구축한’ 프랑스의 전략은 산업 혁명 이후 더욱 공고해졌다. 열강들의 식민지 확대와 산업화는 신흥 부르주아 계층을 탄생시켰고 그들은 ‘귀족처럼’ 예술을 향유하고 싶었다. 상류층들이 고가의 귀족 골동품을 구매할 때 부르주아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미술품을 소비하였고 미술 수집가와 미술 중개상이 생기며 미술 시장이 확대된다. 프랑스 정부는 ‘예술의 상업적 가치’에 더 크게 눈 뜨며 미술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 보다 공격적인 예술 지원 정책을 펼친다.
 
 19세기 프랑스 정부는 미술 아카데미를 전국 26개 지방도시로 확대하고 살롱전에 매진한다. 이는 전 유럽에 광범위하게 생겨난 ‘새로운 고객’인 부르주아들에게 ‘프랑스 화가들의 우수성을 전 세게 알릴 목적’이었다. 중상주의 정책에 따라 살롱전에 입선한 작품들은 국가에서 판권을 보장해 줌으로 ‘프랑스로 금이 유입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1863년 정부는 살롱전에서 거부한 작품들을 모아 '낙선전'을 개최하는데, 이때 고전주의 형식을 파괴한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이 출품되고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다.
 
 이로써 탄생한 화파가 ‘인상주의’였고 그들의 독특한 표현 기법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시류에 꼭 맞아떨어졌다. 1874년 정부 주도로 모네, 세잔, 드가, 르누아르 등의 화가들이 독립전시회를 열었고, 그들 작품은 살롱전뿐 아니라 식민지 확대로 인한 유럽 국가들 간의 상품거래장인 ‘만국 박람회’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다. 밀레의 위상이 하루아침에 달라진 것도 ‘키질하는 농부’ 그림이 1848년 살롱전에 출품된 후, 혁명정부 내무장관이 그림을 구매했기 때문이었다.


클로드 모네의 아름다운 수련 그림들.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일본에 대한 동경'을 직접적으로 구현함으로써 '오리엔탈리즘' 환상에 기여했다
마네의 <올랭피아>. 선명한 흑백 대비로 분명한 제국주의적 시각을 나타내었다(좌) 1867년 그림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우)


 최초의 모더니스트로 불리는 인상주의 화가 마네는 공화주의자였다. 1867년 그린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은 원래 프랑스 공화국이 임명한 황제가 처형된 것에 분노하여 ‘멕시코인들의 잔인함을 폭로하기 위해’ 그려진 것이었다. 후에 나폴레옹 3세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자 초본의 멕시코 군인들을 프랑스군으로 바꾸었고 그것이 현재 알려져 있는 그림이다. 사건의 배경에는 멕시코에 제멋대로 괴뢰정권을 세워 황제를 두었던 프랑스에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의 목표는 ‘공공의 선’이었고 그것은 ‘프랑스적 목표를 관철시키는 것’이었다.
 
 또 다른 유명한 그림인 ‘올랭피아’ 역시 ‘리얼리티를 구현한 모더니티’라는 찬사를 받고 있으나 그것은 유럽인의 관점일 뿐 이 그림은 전형적인 제국주의 구도를 차용하고 있다. 백인 여성이 더이상 귀부인이 아닐 뿐, 하얀 살결의 백인 여성과 까만 피부의 흑인 하녀는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심지어 흑인 여성이 꽃을 바치기까지 한다. 인상주의 대표화가 고갱은 더욱 노골적으로 제국주의 시각을 그림에 반영하였었다. 
 
 그는 ‘문명을 거부하고 인간 본연의 감성을 추구한’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고갱이 타히티로 간 이유는 사실 그렇게 고결하지 않으며 그의 그림은 철저하게 ‘파리를 위해’ 만들어졌다. 식민주의가 한창이던 19세기의 많은 화가들이 그랬듯 그 역시 동양에 대한 환상을 생산하는 ‘오리엔탈리즘’에 적극적으로 기여했으며, 나아가 원주민 여성들을 성적 도구로 바라보는 백인 남성의 왜곡된 세계관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마나오 투파파우>와 <타마테테>가 대표작이다. 


고갱의 그림들. 타히티 소녀가 나체로 누워있는 모습. '마나오 투파파우'(좌) 타히티 여성들이 서양복식을 하고 누군가(백인 남성 고객)를 기다리고 있다. '타마테테'(우)
고갱 그림들. 타히티의 이국적인 풍경과 생명력 넘치는 소녀들의 나신을 보여줌으로써 '신비로운 땅'에 대한 욕망을 자극한다.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은 선명한 오리엔탈리즘을 구현한 대표적 화가였다. 그는 하얀 살결의 백인 여성과 까만 원주민 여성을 ‘주종 관계’로 대비시킴으로써 ‘제국주의적 위계’를 각인시켰으며 식민지 여성들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역시 ‘유럽인에 의해 타자화 된 동양’이라는 오리엔탈리즘을 구현한 작품이다. ‘하얀 이집트와 검은 에티오피아’의 대조는 ‘하얀 프랑스와 검은 아프리카’를 떠올리게 해 식민지배 정당화라는 심리에 편승하게 한다. 아이다의 시나리오 작가는 프랑스인이었다.
 
 <고갱이 타히티로 간 숨은 이유>의 저자 그리젤다 폴록은 더 나아가, 19세기 화가들의 ‘관광주의’ 자체가 제국주의 시각이라며 비판했다. 관광이란 일종의 소비로 근대 중산층의 욕망에 부합하기 위한 목적으로서 이국적 호기심을 자극한 모든 그림들이 이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무희’ ‘여자노예’ ‘애첩’ ‘목욕하는 여자들’ ‘식민지 여성에 대한 에로티시즘’뿐만 아니라 '이국적 풍광'이 포함된다. 그렇기에 동양적 모티브를 차용한 모네의 수련 시리즈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프랑스 영화
는 한술 더 떠 노골적으로 식민지배 정당화의 ‘선전 도구’로 기능하였었다. 1895년 프랑스가 영화를 발명하였던 때는 프랑스의 식민 착취가 극에 달했던 때로, 1912년부터 1962년까지 프랑스는 ‘식민지 환상을 심고 프랑스의 문명화 사명을 강조하는’ 900편의 픽션 영화와 2700편의 선전 영화를 만들었다. 그 내용들은 식민지 원주민들을 야만인으로 묘사하고 프랑스의 우월성을 강조함으로써 ‘유럽 중심 세계비전을 선전’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영화가 1939년 ‘칸영화제’에 출품된 <L’Homme du Nigre>다. 프랑스는 ‘전 세계에 프랑스를 홍보하기 위해’ 세계적인 영화제가 필요했고 그해 칸영화제가 출범하였다. 세계 3대 영화제가 모두 유럽 나라들에 있는 이유를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장 레옹 제롬의 그림들. 식민지 여성들의 에로티시즘을 강조하여 '정복의 욕망'을 자극하고, 하얀 백인과 검은 흑인의 선명한 대비로 '주종 관계'를 각인한다
오페라 베르디 장면들. 하얀 이집트와 검은 에티오피아의 대비와 위계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빗댄 것이다. 이국적 풍광을 최대한 화려하게 시각화하여 '관광 상품'을 홍보하는 작품이다


 노골적으로 제국주의를 두둔한 프랑스 영화도 있다. 누벨바그 거장이라는 알랭 래네의 <히로시마 내사랑>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기억과 망각을 차용한 걸작’으로 평가되지만 사실 철저하게 일본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원폭 피해자 일본’이라는 ‘희생 프레임’을 주입시킴으로써 정작 고통을 당한 식민지들은 존재감을 상실하고 일본의 제국주의 만행에 면죄부를 주는 매우 정치적인 영화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도는 영화 끝 내레이션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히로시마는 다시 꽃으로 뒤덮이게 되었다. 강한 생명력으로 잿더미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막상 진짜 잿더미가 된 한국의 고통은 깡그리 무시되는 시선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는 ‘일본과 같은 포지션에 있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일본과의 공동제작으로 만들어졌다.
 
 프랑스 예술의 노골적인 제국주의 시선의 정점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프랑스인으로 당시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피식민지인 아랍인을 살해한다. 그리고 그의 이유 없는 살인과 죄의식 없는 모습은 ‘현대인의 실존적 고뇌’가 되어 세상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무기력하고 파편화된 인간의 우발적 살인이 어떻게 인간 실존의 대표적 표상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실존적일 수는 있으나 대표적 고뇌가 될 수는 없다. 더구나 소설이 발표되던 1942년은 프랑스가 알제리를 112년째 식민지배하고 있던 해로, 카뮈는 알제리 전쟁의 참상 앞에서 "알제리 독립에 반대한다"는 견지를 분명히 했다.


소설 <이방인> 표지. '현대 지성의 표상'으로 그려지는 알베르 카뮈의 '지적인 이미지'는 그의 수식어를 강화한다
프랑스 화가 '벤자민 콘스탄트' 1879년 그림 <Favorite of the Emir>. 프랑스 영화감독 '알랭 레네' 1959년 작 <히로시마 내사랑>


 책 <오리엔탈리즘>을 쓴 ‘에드워드 W. 사이드’는 <펜과 칼>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소설의 말미에 나오는 뫼르소가 재판받는 장면은 순전히 이데올로기적 허구입니다. 프랑스인이 식민지 알제리에서 아랍인을 죽였다고 해서 재판을 받는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말한다. 


 "제국주의 시대에 집필된 서구의 문학들은 반드시 제국주의에 대한 의식적 정당화를 작품 속에 감추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한 비판적 시선 없이 <이방인>을 무조건 추앙하는 것이야 말로 ‘유럽 중심주의 세계관’에 물들어 있는 현 세상과 우리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프랑스의 '유럽 중심주의' 폐해


 * 참고 자료 : <이방인>의 불편한 진실, 장정일 칼럼 http://asq.kr/qxYfCpyejjLj, <문화와 제국주의> 에드워드 W. 사이드. 서구 위대한 대작들은 어떻게 정치에 협렸했는가 http://asq.kr/qSiRS3TopJoMhttp://asq.kr/KzGWVM1J3hv4, <오리엔탈리즘> 에드워드 W. 사이드. 오리엔탈리즘의 폐해 http://asq.kr/vuJP8r2Rt6sw에드워드 W. 사이드의 <이방인> 비판 http://asq.kr/dES8KFEsKQFV프랑스 중상주의 정책으로 탄생 발전한 '인상주의' http://asq.kr/xKD5BwwDrt45, <고갱이 타히티로 간 숨은 이유> 그리제다 폴록 http://asq.kr/pj8WHvSImsCq, 고갱 작품 근간은 '식민주의' http://asq.kr/eXk6SE0UpuXV, 정부 지원 덕에 스타가 된 '밀레' http://asq.kr/uGFTtWdqQctt, 영화 <히로시마 내사랑> 프랑스 일본 공동제작 http://asq.kr/Tf4YVfXwrWb7, 프랑스 영화의 식민제국 미화와 찬양 영문자료 http://bitly.kr/WecDi9QaGkK, 프랑스 식민지 영화 실체 위키피디아 번역 http://asq.kr/C1h58ON6sbiB, 프랑스 식민영화의 제국주의 정당화 선전 프랑스자료 http://asq.kr/mLtx0zBKAF37, 프랑스 제3공화국(1870년-1940년 제국주의 절정) 식민지 정책에서 '문화 선전은 어떻게 행해졌는가' http://asq.kr/GbCH0JaWiUPR제국주의 시대 그림들 '식민 지배의 정당화' http://asq.kr/JD4FjPulRiCN, http://asq.kr/YR4VCZkxwD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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