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산책 Oct 12. 2020

프랑스의 일본 사랑, 자포니즘과 두 제국의 불편한 우정


 프랑스 친구네 파티에 초대받은 저녁이었다. 함께 정원을 둘러보던 중 친구가 말했다. "저 나무는 '일본 나무'야. 일본에 다녀온 친구가 구해다 줬지. 내년엔 '일본 꽃나무'를 심을 거야" 다른 친구가 유머를 친다. "일본 정원을 만들 작정이야? 아예 일본 다리도 만들지. 멋질텐데" 친구들은 한바탕 웃었다. 잠시 후 한 일본 친구가 도착했다. 프랑스 친구들은 저마다 눈을 반짝거리며 일본인 친구 주위로 몰려들었다.
 
 프랑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동양에서 온 모든 좋은 것 앞에는 늘 ‘일본’ 수식어가 붙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한 ‘일본 사랑’ 말이다. 잠시 후 나는 친구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왜 일본 나무니? 저건 단풍나무고 그건 벚나무야. 일본에만 있는 게 아니고 한국에도 있어. 더구나 벚나무 원산지는 한국이거든? 이럴 때마다 참 당황스럽다"
 
 사실이었다. 너무도 편향적인 프랑스인들의 일본 인식과 편애는 불편함을 넘어 늘 거부감으로 다가왔고 커다란 의문을 낳았었다. 아무리 일본문화에 대한 서구의 환상이라 해도 프랑스인의 반응에는 언제나 그 이상의 ‘동경과 찬양’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한술 더 떠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는 ‘일본을 사랑하는’ 사촌언니 영향을 받아 망가에 푹 빠져 있다. 일본 도시들 이름을 줄줄 외우고 언젠가 꼭 언니와 일본 여행을 할 거라며 친구들과 망가 주제가를 매일 듣는다. 서점이든 도서관이든 일본 만화책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프랑스 환경 때문이다.


1875년 모네 <기모노를 입은 까미유> 아내를 그렸다(좌) 1887년 고흐 <오이란> '게이사이 오이센' 작품 모사(우)
1904년 만들어진 푸치니 오페라 <나비 부인> 원작은 프랑스인이 쓴 <국화 부인>. 이국적인 일본 풍광과 화려한 기모노로 도배된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 작품이다


 참으로 이상하였다. 타문화에 완강한 봉쇄정책을 펴는 프랑스가 왜, 유독 일본문화만큼은 이토록 관대하고 적극적으로 개방하였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가 유럽 최고의 일본문화 소비국인만큼 일본 역시 가장 선호하는 서양 국가가 프랑스다. 프랑스에는 유도, 검도, 합기도 같은 일본 무술도 국민체육으로 자리 잡혀 있으며, 지브리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배경이 프랑스 마을이었을 만큼 일본 역시 다양한 작품에서 프랑스를 선택해 사용한다. 프랑스 전 대통령 ‘자크 시라크’는 재임 시절 일본을 44번 방문하였고 양국 교역량은 50% 증가했으며, 일본 문학의 거장 ‘시가 나오야’는 한 때 일본의 프랑스어 공용어를 주장하기도 하였었다. 이처럼 두 나라 사이엔 각별한 애정 기류가 흘렀다.

 
 알려졌다시피 유럽에는 ‘자포니즘(Japonism)’이라는 문화현상이 있다. 말 그대로 일본문화를 동경하는 시선이다. 19세기 일본 열풍은 미술, 건축, 사진, 정원, 음악 등 전 분야에 걸쳐 유럽 문화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일본 사랑이다. 거기에는 ‘우키요에(Ukiyo-e)’라는 일본 목판화가 중심에 있었다. 모네의 수련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고 고흐"내 모든 작품은 일본 미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했을 만큼 자신의 화풍 자체를 일본 미술에서 차용했었다. 고흐와 모네는 평생 일본 판화를 수집했으며, 모네는 부인에게 기모노를 입힌 채 그림을 그렸고 고흐는 일본 화가들의 그림들을 모사했었다.
 
 드가, 고갱, 로트렉, 르누아르, 클림트, 나비파나 아르누보 사조 역시 일본 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기준과 공식에 맞춰진 아카데미 미술과 전혀 다른 일본 미술의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와 구성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러나 인상주의 화가들이 유명세를 타게 된 이유가 순수한 예술에만 있지 않았기에, 그들이 앞장서서 일본 미술을 흉내 내고 널리 알린 것이 단지 예술적 영감이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 의문은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더욱 짙어진다. 2차 대전 후 일본 게이샤와 미군 장교의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일본의 이국적 풍광과 화려한 기모노로 매혹하며 노골적인 ‘오리엔탈리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829년 가츠시카 호쿠사이 <카나가나의 큰 파도>에서 영감을 얻은 고흐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 구도와 색감 뿐만 아니라 파도의 형태와 움직임까지 놀랍도록 흡사하다
1888년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 나무 형태와 기울기와 잔가지가 뻗어나온 모습은, 1857년 히로시게 <카메이도의 매화나무>를 거의 모방했음을 알 수 있다
1834년 가츠시카 호쿠사이 <피리새와 벚나무>의 나무 형태와 하얀 꽃은, 1890년 고흐 <꽃 피는 아몬드 나무>와 매우 흡사하다

 

 나비부인이 만들어진 때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가 한창이던 1904년이고 원작은 ‘피에르 로티’의 소설 <국화부인>이다. 그는 프랑스 군인으로 원작을 1887년에 썼고, 그의 대표작들은 타히티 바닷가, 세네갈 사막, 아이슬란드 같은 ‘오리엔탈리즘’에 맞춰진 작품들이었다. ‘자포니즘’이란 말은 1872년 프랑스 비평가가 만들어낸 용어이며, 같은 시기 유럽의 예술가들은 일본 미술을 찬양하고 모방하였다. 이 모든 것이 과연 우연일까. 당시의 프랑스는 적극적인 식민지 팽창과 공격적 경제 정책을 펴고 있었고 그 무기로서 문화와 예술을 전면에 내세웠었다. ‘오리엔탈리즘’을 이용한 프랑스에게 일본 예술은 최적의 아이템이었을 것이다.
 
 프랑스의 일본 사랑은 20세기 내내 이어져왔다. 특히 일본 요리는 ‘누벨 퀴진’이라는 프랑스의 새로운 요리 사조를 탄생시켰다. 1970년대 프랑스에는 간소하고 담백하며 산뜻한 조리법이 도입되는데 그 모델이 일본 음식이었다.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고 장식에 치중한 음식들이 그것이다. 프랑스에는 모든 동네에 일본 식당이 있으며, 대형 마트에서 포장된 일본 도시락을 팔만큼 스시는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이국 음식’이다.
 
 1978년 <열정의 제국>이라는 일본 감독의 영화가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일이 있었다. <감각의 제국>이라는 문제작을 만들었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동일 영화 2편이었다. 프랑스에서 제작한 이 영화가 퇴폐적인 성적 욕망을 삶의 고뇌라는 가치로 격상시킨 것은 자포니즘 배경이 된 ‘우키요에’를 떠올리게 했다. 우키요에를 관통하는 중심이 ‘춘화’였기 때문이다. 우키요에는 에도시대 수도였던 에도에서 통용된 그림으로 에도는 유흥가와 가부키 극장이 많았으며 성적으로 방탕하였다. 기생과 미인이 나오는 노골적인 성적 주제. 이것은 ‘우키요’란 말의 ‘덧없고 허무한’이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1978년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오시마 나기사' 전작 <감각의 제국> 장면들은(우) 우키요에 '춘화'(좌)들의 종합 실사판이었다
1863년 마네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와 1864년 세잔 <주신제>. 19세기 상류사회의 방탕함을 표현했다


 그 바탕에는 삶의 불안과 두려움 앞에 굴복한 염세주의가 깔려 있으며 그것이 극단적 쾌락으로 표현된 것이 우키요에 춘화다. 처음 우키요에가 소개되었을 때 프랑스인들이 열광한 지점은 사실 이것이 아니었을까. 당시 프랑스 지성들 사이에 가장 넓고 깊게 퍼져 있던 사상이 바로 허무주의였기 때문이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중세의 생존 공포와 억압의 반작용 산물인 이것은, 극단적 방종과 방탕을 ‘자유로 인식’하게 했고 유럽에 매독이라는 질병을 가져왔었다.
 
 19세기 말 파리 인구의 15%가 매독 환자였을 만큼 데카당스를 부르짖던 유럽의 지식인들은 방탕한 삶을 살았었다. 그들이 외친 자유에 염세주의와 쾌락주의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이나 세잔의 <주신제> 같은 그림들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매춘과 난교는 19세기 유럽 상류사회의 공공연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프랑스 사회의 성적 분방함은 그들 무의식 깊이 자리한 역사이며 ‘자유와 같은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그러한 프랑스인들에게 우키요에 춘화들은 신선함과 동시에 뼛속까지 동질감을 느끼는 무엇이었을 것이다.


유럽, 미국과 함께 '동등한 위상의 나라'로 일본을 소개하고 교육하는 프랑스 학교. 일본에 대한 견고한 환상을 심는데 일조한다


 프랑스의 노골적인 일본 찬양은 아이들의 학교 교육에서부터 시작된다. 프랑스 아이들은 학교에서 세계 초강대국에 '유럽, 미국, 일본'이 있다고 배우기 때문이다. 2차 대전을 배울 때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배우지 않으며, 일본이 왜 핵폭탄을 맞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핵폭탄 피해국의 눈부신 비상'으로 일본을 그리기 때문이다. 공식적 권위를 가진 학교 교육에서 일본을 미화하고 특별한 나라로 분류시켜 놓은 프랑스. 그렇기에 프랑스인들에게 일본은 '아시아가 아닌 고유명사 일본'이며 유럽과 미국과 '같은 벨류를 가진' 환상 속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배경에는 19세기의 상황이 있었다.


 식민지배 정당화와 콜베르티즘 확장이 필요했던 프랑스와 새롭고 강한 나라가 필요했던 일본. 그것은 서로의 국가 경제와 국가 비전을 공유하는 ‘특별한 동맹국으로서의 발견’이었다.   







프랑스 사회의 '제국주의 폐해'


* 참고 자료 : 고흐와 호쿠사이 그림 상관 관계 <Starry Night: Van Gogh at the Asylum> Martin Bailey http://asq.kr/uGVdxYToMLV8, 고흐의 일본사랑 http://asq.kr/EjmYVfhrZUD8, 자포니즘이 유럽 예술에 미친 영향 http://asq.kr/G65JUAmt6bJ3, 우키요에 주요 흐름은 춘화. 허무와 쾌락주의 http://asq.kr/g5abscHK2EM0, 우키요에 시작과 함께 춘화 시작 http://asq.kr/zSpVZwd5p33s, '자포네스크' 나무위키 http://asq.kr/xzKYDzbLpDoE, '춘화' 나무위키 http://asq.kr/xUJ8s5f65onD, <나비 부인> 원작 프랑스인 '피에르 로티' http://asq.kr/NnJsOA7GHK6b, 우키요에 그림들 일본인 모습은 실제 일본인 모습과 달랐다 http://asq.kr/Xt1BCHflFPGf, 오리엔탈리즘과 제국주의 합리화 http://asq.kr/tO65dUU14s, 유튜버 '프랑스 여자 로어' 프랑스의 일본 환상은 학교 교육으로부터 온 무지' http://asq.kr/WKevRtlZ0xEU3, <문화와 제국주의> 에드워드 W. 사이드. 서구 위대한 대작들은 어떻게 정치에 협렸했는가 http://asq.kr/qSiRS3TopJoM, http://asq.kr/KzGWVM1J3hv4



이전 19화 프랑스의 거대 정치 프로젝트, '문화와 예술의 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