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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ghtly Mar 15. 2022

33주 0일, 양수가 터졌다

아가야, 우리 며칠만 더 버텨보자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투성라지만,

설마 내가 양수가 터져서 조산을 하게 될 줄 정말 몰랐다.


검진 때마다 아무 이상소견 없었고, 부족한 영양분도 없었고, 유일한 걱정이라고는 아가가 역아라는 것뿐이었는데. 우리 순둥 착하게도 주수에 딱 맞게 잘 크면서 건강하고 활발했고, 엄마인 나 역시 배뭉침도 붓기도 없고 자궁경부 길이도 양수 양도 괜찮았고... 잘 먹으며 빨빨거리고 돌아다닐 정도로 컨디션 좋았는데...


33주 0일이 되던 새벽 한 시,
예고 없이 양수가 터져버렸다.
마치 막힌 댐이 열린 것처럼 콸콸콸.


생각해보면 그날따라 유독 몸이 무겁기는 했다. 그저 9개월이 되 하루가 다른가 보다 하고 생각하면서, 발차기 여러 번에 온몸이 진동하는 것에 깜짝깜짝 놀라면서, 막달에는 정말 장난 아닐 것 같다고, 태동에 갈비뼈가 나갈 수도 있겠다고 신랑이랑 농담하며 웃었다.


그리고 그날따라 왜인지 갑자기 그런 마음이 들어서, 그간 게으름에 방치해두었던 초음파 사진들도 싹 정리해서 다이어리에 곱게 붙이고 밀린 일기를 적기도 했다.


(아, 그리고 그날따라 유독 밤에 소고기가 먹고 싶어서 급히 마트에서 한우를 사 와서 냠냠 맛있게 먹었다. 마지막 만찬이었나.)


그러고 잠자리에 누워 뒤척이는데, 한시쯤 무언가 주룩 흐르는 느낌이 들어 급히 화장실로 갔더니, 소변이라고 보기 어려운 맑고 투명한 액체가 똑-똑- 떨어지는 거다. 이건 양수다, 라는 예감이 들어 신랑을 불렀다.


오빠, 양수가 새나 봐.
우리 병원 가야 할 것 같아.



다행히 신랑도 잠들지 않았던 터라, 우리는 급히 옷만 챙겨 입고 원래 다니던 집 근처 산부인과로 향했다. 그래도 큰 곳이라 응급진료가 가능서 다행이었다. 사실 차를 탈 때만 해도, 나는 양수가 조금 새는 정도라고 생각했기에 병원에서 조치를 하면 될 거라고 안심했었다.


그런데 위급상황이 발생해버렸다. 병원까지 차로 고작 5분 남짓한 거리를 가는 도중에 갑자기 다리 사이로 양수가 콸콸콸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치 막힌 댐이 터진 것처럼.


그 상황이 되자 더 이상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어떡해- 어떡해-'를 연발하며, '양수가 이렇게 다 쏟아져버리면 우리 아가는 어쩌지? 괜찮을까?' 하는 생각으로 울 지경이 되었다. 신랑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찮다고, 우리 순둥이가 엄마 아빠 빨리 보고 싶은가 보다고, 나를 안심시키려 하였지만 신랑 역시 당황한 건 매한가지였을 거다. 준비도 없이 난생처음 겪는 상황. 속옷도 원피스도 카시트도 흠뻑 젖을 때쯤 병원에 도착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서 우왕좌왕하, 엘리베이터에 양수를 또 한가득 쏟은 후에야 겨우 분만실을 찾아 들어갔다. (코로나 때문에 신랑 밖에서 대기해야 했다.)


선생님, 양수가 갑자기 터져서 다 쏟아졌어요.
어떡하죠?



당직 선생님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셨는지, 울먹거리며 양수를 뚝뚝뚝 흘리 나를 침대에 눕히고 태동검사를 시작하셨다. 태동이 느껴지면 누르라고 하셨는데 너무 놀란 나머지 내 맥박이 너무 세게 뛰어서 태동을 느낄 수가 없어 나는 더 패닉 상태가 되었다. 온통 아가가 무사할지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그렇게 십 분쯤 지난 후 나는 방을 옮겨서 초음파 검사에 들어갔다. 선생님께서 양수가 거의 다 빠져서 출산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주차가 33주밖에 되지 않아서 이곳에서는 아기가 위험할 수 있으니 신생아 중환자실이 있는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하셨다. 렇게 십오 분쯤 대기하며 급히 수액과 자궁수축 억제제와 폐 성숙 촉진제를 맞은 후, 나는 신랑과 의사선생님 한분과 함께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채로 흠뻑 젖은 옷과 신발만을 갖고) 구급차를 타고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향했다.


빗길을 달리고 달려 도착한 병원에서 또 코로나 문진표를 작성하기 위해 대기를 했고, 겨우 들어간 응급실에서 초음파를 보고 혹시 모를 수술에 대비해서 피를 왕창 뽑았다. (공포감 때문인지 미주신경성 실신 증상이 그때 재발해서, 나는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초음파를 보시더니 양수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아기가 역아라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33주에는 폐가 아직 완전히 성숙되지 않았을 수가 있어서

34주까지는 채우는 게 지침이라고 하셨다. 내진 결과 자궁 입구가 1.2센티정도 열려있긴 하지만 수축 억제제를 맞고 조금 기다려보자고. 그렇게 태동 검사기와 수축 검사기를 배에 채운채로 누워있는데, 아기 태동은 왜 이리 안 느껴지는지. 그리고 원래는 느끼지 못했던 진통은 또 왜 느껴지는지. 그네슘과 라보파를 맞고도 수축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자 선생님은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당시 생각을 떠올리니 또 배가 아픈 기분이다...) 다만 수술 전에 8시간은 금식을 해야 하는데, 전날 밤늦게 먹은 한우 때문에, 의논을 해보시겠다고. 


그런 아마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의견이 우세했던 것 같다. 수축도 다행히 조금 잡히는 모양새였기에, 아기 폐가 좀 더 자랄 수 있도록 입원해서 상황을 보자고. 에서 기다리던 신랑에게 카톡과 전화로 상황을 공유하고, 우리는 아무것도 없이 급히 입원할 준비를 했다. 신분증도 없 쫄딱 젖은 옷과 신발만 지닌 채로.


내가 입원한 곳은 고위험 산모 관리실이다 보니, 보호자 상주가 불가했다. 하루 한 번 30분, 저녁 6시 ~ 8시 사이에만 면회가 가능하다고. 래서 좀 쉬고, 이따 저녁에 필요한 짐 좀 챙겨 오라고 신랑을 집으로 보냈다. 콸콸 쏟아져버렸기에 나올 양수도 거의 없었건만... 이미 양막이 터져버렸기에 아기 소변으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수는 계속 새고, 라보파(자궁수축 억제제) 부작용으로 맥박은 120을 계속 넘어가고... 그 와중에 아가에 대한 걱정으로 병실에 있던 나도 집에 간 오빠도 거의 한숨도 자지 못했다. 급하게 양쪽 집과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하며 아기 상태를 지켜봤다.


그렇게 입원해서 일주일 같은 하루를 버텨서 폐 성숙 주사를 한번 더 맞았고, 일단 일차 목표(?)는 넘겼다. 이제 이차 목표는 24주가 되는 토요일까지 버티는 것인데... 다행히 염증도 없고 아기 상태도 괜찮지만 양수가 는 상황이라 고민이 된다. 의사 선생님께서도 버티자 하셨다가 낳자고 하셨다가... (주수를 채우기 위해 양수가 없이 몇 주 버티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다.)


그래도, 엄마 자궁 속 하루가 인큐베이터에서의 7일과 같다니까... 폐도 조금 더 자라고 살도 조금 더 붙도록, 하루라도 더 품고 있고 싶은 마음이다. (원래 아가가 너무 살찌지 않게 과일 당분 자제했었는데, 부디 2킬로는 넘었으면 하는 마음에 초콜릿 우유랑 과일을 계속 먹고 있다..)


아가야, 갑자기 양수가 없어져서 놀랐을 텐데

엄마랑 같이 조금만 더 버텨보자.

우리 씩씩하고 착한 아가, 정말 고마워...!

엄마도 무섭고 떨리지만 엄마니까,

우리 아가는 엄마밖에 의지할 데가 없으니까

좀 더 힘을 내볼게...!







보통 조기양막파열은 양수에 감염이 있거나 배뭉침(조기진통)이 동반된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경우가 아니어서 (검사결과 피 소변 양수 모두 깨끗하고 배뭉침도 전혀 없었다..) 아직도 파열 원인을 알 수가 없다.


대학병원 실력 있고 좋으신데, 자꾸 정신없을 때 인체 부산물(혈액, 양수, 조혈모세포 등) 연구결과 활용 동의서를 받으려고 하셔서 부담스럽다. 설명은 부족하게 하시고 서명만 받으시려 하고... 내용 읽어보게 사본 달라고 수차례 요청드려도 주지도 않으시고... 환자의 인체 부산물은 엄연히 환자의 것인데, 마치 공유재처럼 쓰려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건 제발 개선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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